서점일기 2021.02.11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서점일기


■ On Season 【동네서점(동네책방) 오디션】


▶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

▶ 주관 : OO/XX문화진흥원을 비롯하여 ##작가회의 등


- 여러 주관사發 지원사업 공모 공지 잇따라 게재.


- 취지인즉 동네마다 자리한 서점(책방)이 지역의 문화 거점이자 사랑방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며, 또 그럴 역량이 충분함을 지역민이 직접 경험/체험 → 널리 구전口傳 → 독서를 비롯한 문화 활성화를 기대.




But 실상(여러 서점주/책방지기가 토로하는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한 바를 정리. 나라고 별 다를 수 없어 직접 겪은 바를 겹치면 대동소이.)


- 마중물 용도로 지원받은 예산이나 마중은커녕 밑 빠진 독 아래 무료 프로그램 소비자만 기를 뿐이라는 여러 서점주의 한탄. 음.. 그렇지. 그러니 실제로 그리 느낍니다, 맞아요. 그럴 수 있죠.


- 그러지 않아도 희박한 지역민의 관심을, 기획 단계부터 공 들인 프로그램으로 겨우 그러모아 가까스로 치름. 하지만 잠재 독자 지역민은 언제까지고 잠재 상태. 책 한 권 들여가는 바 없이 참여 하노라 들였던 제 몸만 쏙 빼내니 운영 거듭할수록 실속은 없어 기운 빠지는 경험만 누적이라는 책방지기의 원성. 어 ~ 맞어유 ~ 그래요, 그래. 저도 번번이 겪는 바입니다. 일리 있어요(끄덕끄덕).


- 그런데 이상의 소회를 종합하면, 기저에는 '내가 이런 데서 이럴 사람이 아닌데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리해 있건만 ~ 이런 나를 말이지, 어!? 주목하고 말이지!! 어?!! 알아주긴커녕!! 이렇게!!! 어!?!?'와 같은(? 뭐 크게 다르지 않은) 정서가 짙게 깔린 듯도 하다. 네, 맞아요. 그럴 수 있죠. 게다가 다들 대단하고 훌륭하시니 ~


- 그도 그럴 것이 서점주/책방지기로 임하기 전, 산업 전사로 복무(혹은 산업예비군으로 준비태세 갖추고 있든 간에)하며 도시 정글에서 서바이벌 게임 치르는 동안은 그래도 '나'의 지위와 또 그로써 행사하던 위력이 미치는 범위도 지금 같진 않았겠고. 때에 따라 어느 누구에겐 갑甲으로 군림할 기회도 심심찮았을 테니. 그 호好시절 향수鄕愁에 취해 '내가 한때는 말(이야~)'에 안장 얹고 올라타고만 싶고. 어 ~ 어 ~ 그래요 ~~ 저도 이마빡! 치며 성대 열고 차크라 가득 얹은 사자후, '이런 CX ~ 야 이 삐-이이이ㅣㅣㅣㅣ!!!!!' 뽑고 싶은 상황-ing입니다. 그럼요 그럼요(끄덕끄덕).


- 계속해서 을乙로 자리하여, 자기보다 모자란(!?) 형편에 매 회차 물 끌어대느라 기氣 빨리건만 취하는 몫이라곤 서점/책방 운영조차 힘들 지경이라니!! 아, 정말이지 딥빡! 권하는 사회가 아닐 수 없겠어요. 차라리 물심양면 '과로사'는 따놓은 당상이던 이전 시절이 그리울 지경. 왜 아니겠습니까? 이해합니다.


- 사실 그 번-아웃 피하자고 뛰어든 자영이건만. 이건 뭐 '독립'은 둘째 치고, 소진 정도를 그래프로 그릴라치면 기울기랄 것도 없는 급. 전. 직. 하. 그러니 더욱더 '우리 집 귀한 자식이자 아내이자 남편인,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내가 이걸 왜 하나?' 싶고. 그쥬?? 그렇게 울고 싶은 찰나 서점주/책방지기의 고생(!)을, 저를 알아주는 듯싶은 소관 부처 담당자에게 넋두리, 한풀이. 소위 프로그램 기획과 운영에 따르는 노력에 대한 보상(!),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써의 자기 몫을 조심스레 주장. 이쯤 되니 저도 울컥, 어흙 ㅜㅡㅜ 잠깐 눈물 좀 닦을게요..


1028612757_NmESgqnF_4933ffac9d3890b3c23cc28a7f8108e4cec179e2.jpg 하아- 할말하않-


- 한편 이런 상황, 관전 중엔 '안타깝다' 혀는 차더라도 정작 관중석 아닌 플레이어로 함께 드리블하며 Goal 취할 생각은 없는, 그저 어디까지나 '독자'라는 가능성만 열어두고 '잠재'로 지속할 뿐인 (지역)民. 이런 상황 모르지 않으니 행정이 나서서 작든 크든 좌충우돌 연속하는 점주/지기의 몫을 보전하는 형태로까지 지원 사업 내용, 탈바꿈되기에 이름.




그런데말입니다.png 그런데 말입니다 '_'

그런데 말입니다 ~


- 이 모든 개선 위한 각 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좀 그런 것이.. 뭐랄까 개운한 맛이 없어요. 글쎄 뭐 이러한 데에 깔끔을 기대하는 정신의 결벽이야말로 평소 병적이라 여기는 바이지만 이런 나조차 무어라 딱! 꼬집어 이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주 없는 건 아니어서 앙금처럼 가라앉으니 석연찮은 느낌 여전합니다. 대체 왜??


- '내가 나인데' ← 이거 '내[我]셔널리즘'의 그림자 아니냐;; 이게 디폴트 값이면, 병렬로 sync-야말로 판타지에 불과;; 소위 문화-가 지향하는 바라면, 저마다의 내면에 미니멀한 '밀실'을 카타르시스 창구로 마련 해소함으로써 이성理性으로 하여금 심연의 리바이어던을 제어하도록 하는 데 있지 않나? 해서 특출 난 '초인超人'이 현자賢者로 등장, 인도하는 게 아니라! '광장'에 접속한 개인 간 이성으로 동기화할 때 비로소 이 병렬 중 곧 우리 가운데서 '일반의지'가 현자의 상으로 구현됨일 터. 곳곳에서의 독립- 주장이 가닿지 않는 것, 잠재 상태를 일깨우지 못하는 건 어쩌면, 이처럼 너무 자기愛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주된 것이라 할, '병렬로 sync-' 상태를 가늠하지 못함은 물론 아예 임의 삭제 지경으로 서사를 편집해버리는 서점주/책방지기의 인식 결여/부재 때문 아닐지. 때문에 저를 주목하라는 저자/출판사/서점(책방)은 넘쳐도 책과 그 속에 앉혀진 말글, 그것이 가리키고 가늠하는 도道/신/진리.etc 이르는 바가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그 자체가 부각되는 현장은 그래서 더 희귀한지 모르겠다. 개신교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니 '하늘 아래 새것 없다'이고, 논어만 펼쳐도 어렵지 않게 마주하는 '술이부작述而不作', 불자 아니어도 나처럼 귀동냥으로라도 얻어들었을 '여시아문如是我聞'이건만. 기껏 '반본환원返本還源' 입력하니 세속의 언어로 번역, 육肉으로 난[生] '나'를 출력할 뿐이라니;; 말 그대로 속물俗物 그 자체. 이러니 보이는 데 집착할 밖에. 때문에 내공 수련은 뒷전, 그저 극 배우처럼 연기만 지속할 따름. '자기 소외'의 처지를 직시하기보다 '진짜 나'를 주조하는 식, 심각한 현실 도피가 아닐 수 없겠다. 그런데 이를 콘텐츠라고 팔아, 먹고사는 이들이야말로 영혼 실족케 하는 '진짜 눈먼 자'일 텐데.. 자본제 하 쏠리는 관심이 수익으로 수금되니 호의호식, 이를 보고 나도 저이처럼 되어 호의호식하겠다고 다시 쏠리고.. 하면 이에서 거리 두며 끝끝내 견자見者로 남아 '일반의지'의 견마犬馬로 노동勞動하든, 공공公共의 꼭두각시/인형 되어 한판 춤사위나 펼치다 가든. 이로써 사즉생死即生의 범례範例로 자리하니 이를 접하게 되는 이마다 심중에 자리한 왕정을 자발적으로 졸업, 그를 떠받치던 '노예의 도덕'을 버리고 민주를 취하여 공화정 꾸리지. 이처럼 내면을 스스로 갈아엎은 이들의 출현해야 비로소 이 바깥 현실 또한 민주가 뚜렷하게 자리하지 싶고.

아니 그런데 이런 소규모 기개는 다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무수한 '나'들보다 먼저 요단강 건넌 겐지;; 서점(주)/책방(지기)은 무늬로 삼고 저만 주목하라는 레퍼토리로 버스킹 연속하는 '홍대 남신/여신' 아류에 불과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 있지 않나 싶다.


도대체 이 '나'는 무엇이며 누구일까? 우리는 우리 몸을 '나의 것'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우리 몸속에서 살지만 몸이 곧 우리는 아니다. 우리 삶에서 내내 확대되고 중심을 이루는 이 '나'는 무엇이며 누구일까? 우리는 삶이라는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는 부분들이다. 유일한 실재는 전체성(oneness)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체로서의 자의식이다. 몇몇 사람들만이 그 자의식에 눈을 돌리지 않거나 무관심하다. 우리는 과연 자기중심(self-centered)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의 세계에서 어떻게 이 자기 중심주의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

_헬렌 니어링,『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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