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1. 어쩌다보니 이 시각. 오늘자 일기는 신새벽에 남겨본다.
앞서 부려놓은 '개과 이후 천선'. 보기에 따라 '니체'를 '도로 아미타'로 유배, 연금軟禁 시킨 꼴이랄 수도 있겠다. 그도 그럴 것이, 써놓은 내가 다시 읽어도 사람인 너희 자유를 옥죄는 그 '원죄'의 사슬 끊기를 도모하라는 메시지를 거꾸로 세워 다시금 그 '원죄' 아래 복속시킨 것처럼 보이니. 음.. 그런데 사실 나로서는 '니체'든 '루터'든 겹쳐 보여서. 이를테면 그리스도를 물구나무 세운 적敵그리스도의 오도誤導를 충격하는 메신저 상은 대체로 대동소이, 아닌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또한 노른자-흰자 흘릴 각오로 달걀 밑둥을 까부수는 '콜럼버스'적 똘끼와 상통할 테니.
2. 그나저나 이렇게 새우는 밤. 그야말로 서점주主로 누리는 몇 안 되는 도락 가운데 하나. 어찌 되었든 아니 이것이야말로 진정 '내돈내산'.
일요일을 휴무로 잡은 지는 좀 됐다. 영업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나와 있기도 한다. 달리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오면 그래도 책장도 들추니 좋다. 세탁과 청소는 물론이거니와 먹어 없애는 끼니를 준비한다고 먹거리를 사들이는 것도 죄다 품을 들여야 하는 일. 솔직히 이게 제일 지겹다. 오전 10시 열어 오후 9시 닫는 일과를 홀로 감당하면서 개인 정비를 비롯한 가사 노동을 리드미컬한 루틴으로? 그러면 좋겠지만 마흔 중반을 지나친 남자라면, 게다가 독거인이라면 지루함을 참아가며 꾸역꾸역 해야만 하는 일 따위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지겹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라면 최소화하는 편이 최선!! 하다못해 가라앉는 감정 고양에라도 이바지하는 생산성 향상에 열과 성을 다하는 편이 낫다. 아니 백번 옳다(여기서 진리에 이끌리는 나침으로써의 이성의 개입이 중하다 하겠다. 이게 부재이거나 희박하면 권태를 이기자고 말초의 층위에서 놀다가 새로운 번민에 휩싸이기십상. 이를테면 드라마 <부부의 세계> 현실판 찍는 것. 불륜으로 '중년의 위기'를 건널 멘탈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 따로 있다면 그이에겐 꼭 불륜이 아니어도 그만. 이를 깨닫는 과정의 총체로 나름의 '심우도'를 제작하게 될 수도 있겠다만. 나름의 심우도, '아니 에르노'라면 예로 적합할지? 아무튼 대개는 거꾸로 '중년의 위기'만 초래할 뿐).
그건 그렇고. 그런데 요즘 그 책장 들추는 게 전과 같지 않으니 답답하다. 뭘 진득하게 읽어 내는 자체가 힘겨우니 정말이지 못해먹겠다;; 왜냐하면, 몇 자 읽을라치면 문장마다 접이라도 붙으려는 것처럼 연하여 떠오르니 책 한 장 넘길 동안 연상된 분량은 그 몇 배 되는 일이 다반사. 전에 부려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이 거듭하여 떠오르는 경우도 태반인데 각도를 달리하여 등장하니 배열/배치 또한 다시! 한번 이리 새로운 조립 과정에 들면 뇌는 벌써 정리 삼매, 혼자 열일. 와중에도 새로운 생각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일의 우선순위까진 아니어도 중요도가 뒤바뀌니 남은 몰라도 나홀로 한 생각에 그야말로 꽂힌 바 되어 연속. 바쁠 땐 이렇게 복잡다단 머릿속 사정 그대로 이고 지고 다른 일부터 처리. 하지만 예의 그 생각 연속하니 몇 날 며칠 변비 앓는 사람처럼 끙끙댄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무언가 들어차 단단히 막고 있는 듯 느껴질 정도. 자괴감까진 아니어도 좁은 머릿속 들일 곳 없어 좀처럼 읽어내지 못하나 의구심 솟기도. 그러지 않아도 노화이든 습벽 때문이든 난시에 부등시까지 겹쳐 집중에 들이는 노력을 배로 들이는 판이니 정말이지 스트레스. 때문에 뭉텅이로 끊어 이런 식으로라도 따로 부려놓는 것. 이렇게라도 비우면 그래도 잠시일지언정 후련하다. 금세 들어차지만 -_-;;
3. 오늘 들춘 몇 장. 최근 번역 출간된 숀 비텔의『서점 일기』에 수록된 내용 일부를 옮겨 심는다.
1936년 발표된 조지 오웰의 수필 (…) 「서점의 추억들」은 당시에는 물론이거니와 오늘날에도 정확한 사실로 다가온다. 게다가 나 또한 그랬듯이 멋모르는 사람들에게 '중고 서점 운영'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안락의자에 슬리퍼 신은 발을 올리고 앉아 입에 파이프를 물고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노라면,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그런 목가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효과적인 경종을 울려 준다. 사실 서점 주인의 일상은 그와는 전혀 딴판이다. 특히 "우리한테 오는 손님 중 대다수는 어느 곳을 가든 민폐가 될 사람들이지만, 서점에서는 더 특별한 기회를 노리는 부류"라는 오웰의 표현은 현실과 가장 딱 들어맞는 부분이다. (p8)
_숀 비텔, 『서점 일기』
'지적인 손님'과 '흥미로운 대화', 게다가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 그렇게 특별한 순간이 상정된 판타지 성애라면 업에 몸 담았던 경력으로써의 세월은 둘째 치고라도 이 연배엔 벌써 졸업해야 마땅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딱히 언감생심이라며 호들갑 떨 일도 아니고 그저 처음부터 이런 건 생각지도 않았다. 때문에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는 매 순간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마음판에 박히는 듯싶긴 하다. 사실 '주인의 일상'이 '전혀 딴판'인 건 특질이라기보다 보편 아닐지. 이 자본제 하에선 말이다. '민폐' 부류를 가늠하는 오웰의 재치라니. 참고로 내가 읽은「서점의 추억」은, 한겨레출판서 펴냈던 에세이 편역본 『나는 왜 쓰는가』에 실린 것(찾아보니 열린책들에서 펴낸 『조지오웰 산문선』도 있고, 「서점의 추억」만 이북으로 등록 되어 있기도).
재인용부 다른 번역도 살필 겸 옮긴다.
우리 가게 오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어딜 가나 성가신 존재이겠지만 서점에 와서 특별한 기회를 누리려고 하는 부류였다.
_조지 오웰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크게 다르지 않다. 하긴 성가시기로 민폐가 창의적이기도 어렵지. 신선하면 지루함은 더니 지겹기까진 좀 더 견딜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옮기는 김에 조금 더 심어 보자.
이 장사는 어느 정도 이상은 천박해질 수 없는 인도적인 사업이다. 독점기업연합은 식료품 잡화상과 우유 배달 점포를 찍어눌러 퇴출시켜버릴 수 있겠지만, 영세 독립 서적상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은 대단히 길다. (…) 게다가 근무환경이 건강에 별로 좋지 않다. 서점은 겨울이면 대개 지독히도 추운데, 너무 따뜻하면 창에 김이 서리게 되고 서적상은 창이 깨끗해야 먹고살기 때문이다. (…) 내가 서점 일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은 진짜 이유는 그 일을 하는 동안 내가 책에 대한 애정을 잃었기 때문이다. 서적상은 책에 대해 거짓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면 책이 싫어지게 된다.
_같은 책
음.. '퇴출'시키려면 시키고도 남는다. 다만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 어찌 되었든 최후의 보루는 '독자' 여러분. 위협으로 상존하면서도 실제로 발휘되지 않는 건 들이는 품에 비해 얻는 박리 구조가 소위 가성비로 따지면 기업 입장에서 고사 불사! 시장 재패!! 전면에 세우고 공격 경영할 만큼 구미 당길 정도는 아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영세 서적상을 들락거리며 알게 모르게 자라난 인성과 함께 자리한 추억의 전래 때문이란 생각도 한다. 이러한 전래가 바탕으로 서지 않았다면, 이 21세기 첨단에 소규모 서점이 들어서긴 곤란했을 것. 장시간 일하는 건 자처한 바이니 패스하고. 따스하게 겨울 나는 서점들도 적지 않으니 이것도 토스(우리 사각공간은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좀 춥게 겨울을 납니다. 난방비 절약은 덤. ㅎㅎㅎ). 그보다 오웰의 애정 상실의 변. 공감한다. 정말이지 팔아서 환원될 수익을 기대하며 쫓자면 거짓말은 차라리 필수 덕목이라 해도 과언 아닐 듯. 팔리는 책으로 그러모은 자본으로 진심 펴내고자 했던 책을 펴내는 출판사도 매일반이지만. 그런데 그게 그로써 끝나는가 어디. 결국 그 나물에 그 밥 되고.. 그래도 밥을 벌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이해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균형이 무너져 너무 저편으로 기우는 느낌이어서 대척으로서의 다소 극단을 연출하는 모습 또한 넓게 보면 자정의 흐름이랄 수 있겠고. 하다못해 본 서점 지기 같은 이도 자꾸 사즉생死即生을 곡조로, 피리부는 사내처럼 구는 걸 보면.
4. 그나저나 전에 일기에도 밝힌 것처럼 서점 오디션 시즌. 응하자는 마음으로 붙들었다가 하기 싫어 계속 딴짓이다(그러고보면 이 때문에 책에 집중 못하는지도). 사이사이 딴짓으로 엉뚱하게 피어오른 뭉게뭉게. 이것만 잔뜩이어서 이렇게 부려놓는 중이니, 이거야 원 ~~;
예의 그 판타지 성애를 향수하고 있음인가. 독자 여러분과 만남 가운데 지펴질 불길, 물론 기대도 한다만. 사실 특별한 조우(이의 연속이라면 오히려 과부하;;)보다 평범 가운데 자리하는 친밀이 더 중하지. 이상적인 만남이라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부카우스키(부코스키)의 글을 옮겨 심는다.
작가는 글만 잘 챙기면 그만이다. 독자가 있어서 발표 지면이 생긴다는 것 말곤 독자에게 빚진 것도 없다. 더군다나, 문을 두드려대는 종자들 중엔 책조차 읽지 않은 것들이 허다하다. 그냥 무슨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최상의 독자, 최상의 인간은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나에게 보답하는 자들이다.
_찰스 부카우스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中
'작가'에만 해당하는 건 아닐 거다. 자본제에 충실할 거면 '보이지 않는 손' 안팎에서 서로 간 내외하며 금전과 상품만 오가도 되는 것이고 말이지. 그래도 이건 아니라 생각한다면, 아아 ~ 정말이지 '차든지 뜨겁든지'* 한 가지만 하입시다 ~ '0'/
*개신교 성경 <요한계시록> 3장 15,16절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