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人]dependence - 의지하되 의존 없이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저 자신에 집중하련다!!', 선언(?)에 정당성 부여하는 장치로써 ①상처(品으로 다듬어 생산)를 전시하고 ②이를 감상/관람한(그러니까 소비한) 공중公衆은 후기(넓게 잡아 리뷰는 물론 리트윗/리그램 등 퍼 나르기부터 좋아요 등으로 표하는 모두) 재:생산. 이런 시류時流, 마치 공인公認 절차의 전형처럼 자리한 듯. 그런데 세상은 이로써 모습을 달리하나? 아니면 그저 관심이라 일컫는 동정 수혜자 몇몇의 생활수준만 바꿀 따름인지. 당초 가해/피해를 양산하는 구조로, 성찰은 옮아가야 하지만. 그래야 개선을 요하는 목소리로 뭉쳐 힘을 발할 테지만. 그에는 미치지 못하고. 주저앉은 채 몇몇의 생활수준만 격상시키는 정도로 관리되는 '개선'이라면 소위 '가난-포르노'와 같은 유형 아닌지. 품品으로 다듬어진 타자의 일상을, 비참을 시청각으로 유사 체험하며 그에서 이는 감정을 배설. 실상 자위와 다를 바 없는 행위를 연속하는 것이야말로 기득권 구조 고착에 봉사하는 형국이겠다.




이슈 소비에만 치우쳐 검증에서 판단까지의 소화 과정을 가벼이 여기는 데서 초래되는 문제. 자본제 내 순환 속도를 기준 삼으면 검증은 더딘 데 반해 부화뇌동은 순식간. 피해를 주장하는 측에서 제기하는 서사에도 개입되게 마련인 과장/가공/편집을 필터링하며 팩트의 순도를 확보하는 과정을 천착하는 끈기를, 소비 기능과 역할 수행에 충실할 뿐인 절반의 존재에게서 기대하기란 점점 더 어려워지는 형편. 적의敵意를 미러링 하며 대립 구도만 재:생산하는데 그치고 마는, 合을 도출하는 생산성으로 따지면 0에 수렴할 뿐인 다중多衆. 이의 역습이라면, 휩쓸린 채 적의를 양산할 뿐인 무익한 행위를 '여론'으로 뭉뚱그리며 대립 구도에 편승, 그때까지 저지른 무임승차에 책임 묻는 '여론'에는 '아몰랑' 무시, 죄다 '묻고 더블로' 실리 계속 취하는 존재 기승. 다중은 제 본의와 무관하게 돕는 식이 되니 더 큰 문제 아닌지.


물론 SNS 그러니까 Social Network Service가 이를 부추기는 형편이긴 하다. 그러나 Service가 System으로 자리하여 굳기까지, 이용자 또한 책임 소재 분명! 다소 간 논리 비약을 무릅쓰고 이르면, 인류 역사 중 가장 활발하게 주장되는 바 다름 아닌 개성個性인 시대, 남이 마련한 운동장에서 mass-game 펼치는 갤러리&들러리. 실상 1 or 0으로 양분된 선택지 가운데 택일하는 거수기와 다를 바 없는 인류라니. 이런 아이러니조차 불편 느끼지 못함은 자본제 하 자기 소외가 너무도 익숙하여 표리부동조차, 마치 부조리 가운데 처한 불완전한 인간 실존의 불가피한 이율배반으로 번역하기 때문이려나. 그러면서도 정작 '불가능한 꿈'을 겨누는 '리얼리스트'의 시각은 비현실로 치부하니. 하면 그 입에 올리는 '현실'이야말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이 마련한 도피처 아닌지.


저를 위하겠다고 담쌓고 '나나랜드' 구축, 뭐 그럴 수 있겠는데. 그렇다고 자명한 책임과도 결별 불사하겠다는 막무가내로 그 손바닥 제국이 온전할쏜가?! 당연하다 싶은 게 옅어지니 희박/희소해지는 만큼 외려 다시금 부각되지 않을 수 없을 것. 이기利己에 봉사할 뿐인 수단으로 전락한 갖가지 -ism이 본디 가리키는 바를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 없는 게 또한 인간種. '나나랜드'의 지긋지긋한 '갬성'으로 영역을 국소로 좁혀 자기모순을 마치 해결이라도 한 것처럼 구는 정신승리. 하지만 이로써 끝끝내 피할 수 없으니 그것이 오리진 찐-현실인 것. 가상의 승리, 내 뇌 피셜 방구석 승리감에 도취된 채 그렇게 부딪치면 좀 덜 아픈가?! 그럴 리 없지. 그런 척에 지나지 않을 따름.




그러니 나를 중심으로 담을 쌓아 올리며 '나나랜드' 구축은 정답 아닌 외려 오답에 가까울 것. 오히려 세웠던 기존의 벽마저 스스로 허물어 저마다의 '나나랜드'를 해체하는 것이야말로 상처 치유의 참 근간일지 모른다. 저를 중시하겠다고 스스로 상처傷處 곧 상傷의 처소處所인 자기 속에만 머물려 들수록 구조맹構造盲으로 화할 밖에.*




독립獨立 : [人]dependence


엽전 푼에 조아리는 형세로 -감感이니 -심心이니 구별한들 무슨 소용에 닿을까. 아무리 자존自尊을 주워섬겨도 무관한 모양새로 겉돌 밖에. 의지하되 의존 없이. '나나랜드' 해체와 함께 구조맹 탈출, 의존 최소화를 가능케하는 안전망 구축이야말로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는 건강한 의지처로 기능하지 않을까.



* 물론 '우리'는 이래야지 저래야지 따위의 당위, 남발하는 인사들도 문제이긴 하겠다. 제 소속 결여를 채우자고 죄다 인정투쟁의 전장으로 끌어들여선 이전투구 판을 키우니 하는 말. 외려 그런 본인들이야말로 제 울타리 넘지 말고 그 깜냥 내에서 놀 것이지. 엄한 양반들 '우리'로 묶지 말고 말이지 ~~;; 기왕 벌일 요량이면 역시 바깥 넓은 세상에서 좀 그럴싸하게 제대로 놀 일이고. 저를 뽐내자고 되지도 않는 걸 그러모아 '우리'를 앞세우며 떠들어봐야 우스워지니 '꼴'이요 폭락하니 그 '값'이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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