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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May 05. 2021

서점일기 2021.05.05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0505

설합舌盒에 담긴 말 출력 중. 우리말 '서랍'이 맞다. 다만 혀 밑에 쟁여두었단 의미로 음차로 표한 설합舌盒을 다시 빌어본다.


0330

업무 차 차량 수배, 승차 후 미추홀로 향함. 접객 종사야말로 사람책 독자. 눈 밝은 독자는 어디에나 있다. 당일 택시 기사분과 나눈 사담에 동한 진심이 절로 얹힘. 평소 어떤 자리에서 쉴 새 없이 떠들기도 하는 데 그럴 때 심경의 실상은 '여러분도 지겹지만, 저도 못지 않습니다. 어서 이 지경을 마무리 짓고 자기 밀실로 돌아가시자'는 것. 대개의 보통인이 그러하듯.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 희박/희소하니 귀한 순간들을 생각지 못한 데서 마주하기도(그러하기에 더욱 깊은 인상). 이런 순간들로 인물 빚으면, 『싯다르타』에서의 '사공'으로 등장하겠지.


0330-2

 일 마친 후 국철 승차. 서점 복귀 중 들은 이야기.

2-4칸 들어서서 우편에 앉은 나. 좌측, 중앙 통로를 사이에 두고 배치된 노약자석에 각각 할머니 세 분, 할아버지 두 분 앉아계심. 내가 앉은 사선 방향 좌석 할머니 두 분(사이 공석)이  진지하게 나누시는 말씀인즉


 "아니 그러니까 그 여편네가 그렇게 베X밀만 처마시더라니까?"


 "그까짓 콩 씻은 물로 뭔 병이 나아요, 낫기를."


 "아, 내가 그랬나? 지가 그러더라니까!? 내 보기에도 발발거리며 잘 쏘다니더라고. 쥐뿔도 없는 집구석, 쌀도 정부에서 타다 먹는다고. 내가 알지. 그게 뭐 보험으로도 턱도 없는 약값이라 뭣도 못하고 그랬다고 했거든. 그러고 몇 개월 뵈지도 않더니 요전날 만나선 그러는 거야~"


 건너편 할아버지 가운데 앉은 할머니를 쳐다보며 曰

 "여봐, 가다가 마트 들러 베지밀 하나 사가자고."


 듣던 할머니 曰

 "이냥반이 돌았나;;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씨부리고 앉았어. 아유, 정신 사나운 게 조용히 가쇼 "


 건너편 베X밀 전도사 할머니 曰

 "저기, 나라고 믿겄어요? 그냥 밑져야 본전이다 싶으니 달아두고 마셔요."


 그러고보니 할머니 힙색 열린 틈새로 베X밀이..


 "내리시는 역은 부평, 부평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환승 위해 내리면서까지 여쭤볼까 고민했다. 대체 어떤 병을 앓고 계셨을까.

서점 복귀 전 굴포천 지하 역사 내 편의점 들름.


040X

업무 차 이동 간 지하철 승차. 거리의 상인 함께 탐. 50대 중후반, 짧은 스포츠 머리, 굵은 선은 아니고 날카로운 인상. 175㎝ 미만 키, 그러나 간난신고의 세월을 몸으로 부대끼며 버텨낸 중년의 완력이 느껴지는 체형. 무언가를 팔려는지 자세 잡으며 좌우 살피다 왼편에 시선 고정. 성큼성큼 걸어간 후 큰 소리 나기 시작.


 "너 이 새끼, 바닥 기어다니며 장애인 흉내내지 말라고 했지?!"


 얼결에 쫓겨온 듯싶은 20대 초반 남성(185㎝는 족히 되어 보이는 키에 덩치도 컸지만 다부진 체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임). 노약자석 한쪽에 몸을 구기며 찌그러지듯 주저앉았다.


 "네, 잘못했어요."


 "너 같은 새끼 때문에 내가 돈 오만 원(?) 물고(아마 상행위 범칙금 얘긴 듯).." 오블라디 오블라다 ~ 청년은 "아이고, 네 제가 잘못했어요" 연발. 하지만 정말 죄송하다는 건 아닌 듯싶고 그저 비굴하다고 느껴질 법한 웃음을 얼굴에 띄워놓고 어떤 연기를 펼치는 것처럼 보였다. 거리의 상인 역시 그럴수록 기세등등이었지만, 꾸짖기보다 자신이 펼치(려)는 상행위의 정당성(?) 같은 걸 객들에 표하는 게 주목적인 듯. 마치 시끄럽다며 경멸을 숨기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좌중을 향해 제 맨주먹, 무력을 바탕으로 압도할 수 있는 것처럼.


 일순, 서로 다른 처지의 두 사람이 무언의 공생 협약이라도 맺은 듯 보였다. 주고 받는 합을 바탕으로 펼치는 극을 관람하는 기분. 계속해서 청년은 웃음을 흘리며 죄송하다 했고, 언성을 높이던 중년은 연신 '너 때문'이란다.


 '너'는 누구일까. 난 그저 망연한 기분으로 지켜보다 고갤 돌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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