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돌아온 상원은 사라진 상원이 아니다. 반성한다는 것은 반성하는 주체가 있음을 뜻한다. 나를 자책한다는 것은 나를 부정하는 또 다른 내가 있음을 뜻한다. 지금 상원은 지난 28년의 삶을 부정하고 있다. 상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유를 일기는 이렇게 적었다.
좋은 생각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자신에 대해 명확히 엄격할 수 있어야 되겠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보다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는 어떻게 실천하고 있느냐가 문제일 것이다.(77.5.26)
(…)
내가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나태는 아니더라도 너무 평범하고 안일하게 지내고 있는 요즘의 생활이 반성된다.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을 생각해본다면 소위 지식인들의 생활이란 허황하기 짝이 없는 것일 거다.(77.5.29)
사유와 실천의 불일치, 그 한 가닥이 드러나고 있다. 1970년대 노동자들은 극악한 저임금과 견디기 힘든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박정희 독재 체제가 상부구조라면, 노동자에게 저임금을 강제하는 성장주의 경제 체제가 하부구조였다. 그런데 대학생 윤상원이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나 건설 노동자와 같은 블루칼라 만을 노동자로 간주하고, 교사와 기자, 은행원과 회사원과 같은 화이트칼라를 지식인으로 간주한 결과, 대학생 윤상원이 자신을 지식인으로 규정하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면 상원과 그의 벗들은 지식인을 노동자의 피땀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집단으로 규정함으로써 과도한 자기 학대에 빠져 있었다.
_『윤상원 일기』본문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