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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Nov 14. 2021

중2 눈높이에 맞추어 써야 마땅하다? 진부하거든~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번외편


유시민 선생 曰 : 어려운 글, 소통 생각 없는 사기꾼이 그런 글 쓴다는 게 요지




먼저 첨부 이미지, 이런저런 커뮤에 수 번 짤로 등장한 내용이다. 그러니까 유시민 선생 曰 : 어려운 글, 소통 생각 없는 사기꾼이 그런 글 쓴다는 게 요지. 중학교 2학년도 이해할 수 있게 써야 마땅하다는 말과 함께 마르고 닳도록 회자되는 짤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그 자체도 진부하다 느낀다.


대체 이게 뭐라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하나 마나 한 말글 양산이 당연한 것처럼 더하여 마치 정도正道인 것처럼 호도하는가 모르겠다. 어이없을 따름.

우선 중2 수준 작성 운운의 배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육하(5W1H)를 원칙으로 팩트 전달에 총력 기울이는 기사 작성에서 비롯하였다. 틀린 말 아니다. 다만 이 시대나 또 모든 영역에 들어맞는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


아울러 유시민 선생이 언급한 바 '어렵게 쓴다'든지 '설득할 생각 없는' 그래서 '사기'치려는 데에나 알맞춤이니 고치는 게 마땅하다는 글이라면 어떤 글일까. 외려 보험 약관부터 금융상품 관련 계약서를 비롯한 문건에서 법 조항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은 걸 먼저 짚어 이르는 것으로 받아들임이 보다 적확한 이해 아닐까?


그런데 정작 이런 데로는 뻗지 못하는 소견으로, 제 몰이해를 무조건 말글이 그릇된 것처럼 짤 끌어대니 아전인수 이만저만 아닌 것. 이런 자세, 제게 어떤 도움이 될지 나는 짐작조차 못하겠다. 차라리 달리는 문해력을 우선 점검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자구自救/자발自發 없이 견인만 바라는 처지야말로 한심하잖나?!


설득에서 공감까지, 필요하다. 물론이다. 그러나 모든 글 아울러 모든 방편이 반드시 그에 무게중심 두거나 초점을 맞출 수도 없다. 쉽게 설명하자고 아닌 걸 대강 그렇다 할 수도 없는 노릇. 양극으로 나뉘다시피 된 현실을 평균하여 보편으로 왜곡하는 함정도 경계해야 하지만, 모두를 설득하자고, 또 공감 끌어내려다 이도저도 아닌 상태에 처한 것을 중립적 태도인 것처럼 꾸미려는 태도 또한 경계 대상이다.




기왕 끌어 앉힌 선생, 붙잡고 이야기 좀 더 이어보자.


그이가 속한 그룹을 일반화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다. 다른 입지, 뚜렷하건만 경중 가늠하는 잣대를 동일시? 어불성설이고 애당초 그리한다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선생의 화법을 아전인수한 그대로 뒤집으면, 다음과 같은 의구심 또한 가능할 거다. 그러니까 쉽게 쓴다는 치들 역시 대중성에 조아리며 뒤로 호박씨 까는 인기영합주의에 불과하다는 혐의에서 자유로운 형편, 얼마나 되겠나? 제 이름으로 추수하고 저를 경배하는 신도를 모집하는 따위로, 사기 치려는 축이 그야말로 급증인 시대! 이런 시대야말로, 헤세가 『유리알 유희』 통해 표현한 '잡문시대'. 


한편 만일 선생이 언급한 대로의 '소통'을 잣대로 삼으면, 실제 유시민 선생이 지어 내놓은 책은 또 얼마나 읽히고 그렇게 읽은 이들 가운데 이해하는 축은 또 얼마일까(팩트 여부 판단 등 비판적 읽기 포함). 과연 믿고픈 그대로, 실상 또한 소위 '소통' 이루었다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유사한 질문 하나 더.

베스트셀러 판매량과 이해/문해력을 동일시할 수 있을까? 역으로 어려우니 적게 팔리는 것이라며, 부러 어렵게 썼노란 혐의 둘러씌우고 비판(태반이 비난이겠지만) 함이 마땅한가. 나아가 사기 치려 든다며 단죄하듯 몰아세우는 대중의 처우, 과연 타당할까. 외려 이같은 폄하야말로 작자에 대한 폄훼로 모욕하는 행위 아닐까.

그래서인지 거듭 생각하면 할수록 '글쎄올시다' 하며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오히려 무지가 빚는 오류에서 비롯된 횡포, 이것이 국지 넘어 전국 확산하며 횡행할 때 중국식 '문화대혁명' 되잖나 싶고. 당시 피살된 지성인들 죄다 인민 상대로 사기 치려 했다는 게 죄목 아니었나. 테스 형도 그렇게 독배 마셨고, 예수 또한 그렇게 삼도천 건너로 보내드린 인류. 도대체가 진화를 모르는 인간 종種 아닌가;; 오, 주여. 발라먹어도 시원찮을 이 씨-종자를 어찌 하올깝쇼~~;; 시방도 시답잖은 짤 퍼옮기는 한편 하나 마나 한 말글 짓는 작자들로 넘치니 정작 즤들은 즤들이 뭔 짓을 저지르는지 주옥도 모르고 관심도 없어라~~;; 아, 정말이지 지옥같군(욕설로 비치는 건 기분 탓이다).


아무래도 요사이 문해력 폭망 수준이라는 아이들이 느는 데에는 이처럼 맑지 못한 윗물, 부화뇌동으로 열화 카피 일삼는 고인 물 때문이지 싶다. 어른의 몸으로 어린아이처럼 떼쓰는 한편, 무익하고 무용할 뿐인 짤이나 말글 퍼나르며 숙고를 가장하니 문제. 정말이지 '쉬운-'무새는 지옥가세요!!(욕설로 느끼면 그 마음에서 비롯한 것. 일체유심조). '_'




 골머리를 썩이지 않고 느긋하게 친숙한 말의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은 친근감과 접촉을 위한 기호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표현에서 의사소통에 신경 쓰는 대신 실상을 주시하는 것은 의심의 눈길을 받는다. 기존의 익숙한 도식에서 따오지 않은 특수한 것은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며, 독선이나 혼란의 징후로 간주된다.
스스로 명료하다고 자부하는 일상의 논리란 사실은 일상어의 범주 속에서 그러한 도착 상태를 순진하게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호한 표현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 자신이 생각한 것만을 대충 상상하는 것을 허용해준다.
반면 엄격한 표현은 분명한 입장이나 개념의 긴장을 강요하며─사람들은 그러한 긴장이나 확고한 태도 정립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싶어하는데도 불구하고─다른 어떤 내용에 앞서 통상적인 판단의 정지, 그리고 고립을─사람들이 온몸으로 거부하는─ 요구한다.
이해할 필요가 없는 것만이 사람들에게는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정황만큼 지식인의 탈도덕화에 기여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탈도덕화에 빠지지 않으려는 사람은 전달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충고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한 배반임을 꿰뚫어 보아야 한다.

_아도르노, 『미니마 모랄리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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