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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Nov 29. 2021

청년동네탐구생활【메타북스】참여 후기─사각공간(思覺空間)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일러두기.

이하 내용은, 인천문화재단 "시작공간 일부" <청년동네탐구생활>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어제 11월28일(일) 인하대학교 인액터스 팀에서 마련한 【메타북스(Metabooks)】 진행 간 느꼈던 바를 나름 정리해본 것.


☞ 프로그램 【메타북스(Metabooks)】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모인 사람들이 익명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책을 추천하며 연결되는 프로그램"


☞ 주제(2회차 사각공간에서 진행)

"ㅌ : 틀과 틈 ─ 틀을 깨고, 틈을 발견하다."


장소 협찬에만 머물지 않고 해당 회차 일원으로 참여하게 됨. 따라서, 청년들이 모임 통해 지향하는 바를 녹인 소개 그리고 주제를 바탕으로 나 또한 참여 전 나름 생각. '끝'을 유예시키려는 '틈'바구니 비집고 들어서선 일대 전환 도모, '틀' 쪼깨는 기획 염두에 둠. '아저씨'를 닉네임으로 하면서, 진보를 자임하지만 꼰대로 치부되기 일쑤인 세대 중 1인으로 소임이라면? 떠올리니 잇닿는 생각 → 세대 갈등 등은 외려 분열과 다름없는 지경의 자아, 간극을 직시하지 않는 데서 비롯하는 게 아닐까? 와중에 이미[旣] 얻은[得] 권리를 지키자고 복지부동 일삼으니 실상 보수. 그러면서 무늬로만 진영 갈음, 실상 동체인데 마음인 것처럼 서로 적대이니 지켜보는 후세 입장에선 그저 끼리끼리 짜고 펼치는 놀음으로나 비칠 법. 하여 '꼰대'라는 도매금으로 싸잡아 넘겨지는 아닐까. 이를 문제라 여기는 데서 비로소[始] 움직이니[動] 반성. 따라서 장성한 세대로 분지경의 자아,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부터 선행. 그래 세대 갈등 또한 극복의 여지를 발견할 수 있으리여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라 여기는 바야말로 '틀'이지 않냐는 의구심, 지나치지 않으니 발견이 되어 기어코 '틈'으로 발전. 이같은 시선 바탕으로 일신우일신 순간들로 일상 일구는 청년. 와중에 겪은 바 경험 자산을 서로 간 나눔. 그 자리에 함께하며 느낀 바를 나름 정리하여 둔다.




술이부작述而不作, 기대어 이루었으니 개입되었다 여기는 우연조차 실상 모두 빚. 때문에 빌어온 데서 비롯한 성취에 불과함을 의식하면 할수록 온전한 자기 성취인 것처럼 자랑 삼는 데서 멀어지게 마련.


과시를 전제한 자기현시욕이야말로 인정에 갈급. 구족具足≠자족自足으로 엇갈리는 지점에서 스파크, 점화되니 인정 욕구. 결국 타자의 시선을 창살로 엮은 감옥에 스스로 수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녕의 조건을 자기 밖에서 구하려 드니 좌불안석坐不安席. 처지의 성찰 부재는 그래서 내내 불안不安에 처할 수밖에 없는 것. 때문에 갖가지를 빌어다 저를 설명하고자 할수록 소위 정체성이라 여기는 소견에 함몰 지경 임이 노출될 뿐를 함정으로 떠미는 건 다름 아닌 드러내려는 욕구랄 수 있겠다.


한 번 자유를 감각하게 되면 그 느낌에 동화同化를 추구 → 추체험 통한 직·간접 경험* 거듭하며 점점 선명하게 의식 → 새김으로 분명한 인식, 강화 효과 → 기쁨으로 승화.

때문에 나라고 여기던 모습과 다른 실상, 곧 자신은 사실 이러저러한 사람임을 깨닫게 되는 매 순간순간이 값질 수밖에. 하여 온전한 기쁨으로 누릴 수 있는 것.

이처럼 발견이 주는 기쁨을 명확하게 의식하는 지점에서 비로소 구족자족. 때문에 초가장(또 과장)하는 동시에 저를 돋우려는 전략으로써 겸양을 연기? 불필요! 제게 침잠/몰입에서 자유를 분명하게 의식하기까지의 과정이 자연스러움으로 오롯하게 자리한 여타는 불필요, 간단히 떼어놓을 있는 것.


하기에 애당초 제가 취한 모두가 그저 일시/임시 임을 의식, 잠시 제게 속한 바를 다시 되돌려 순환을 지속가능케 하는 것이야말로 바람직하며 당연한 수순이라는 데에 닿게 마련.

부박함 중에 도약, 특별한 소수가 이룩하는 거룩한[聖] 지경이 아니라! 사람[人] 되는[成] 당연한 조건, 곧 어른-성인成人으로 마땅한 필수불가결 요소로 전제되는 책임이지 않겠냐는 것.


'나는 누구인가'에서 출발, 도착지점이라 여긴 데서 새로이 발견하니 '너 자신을 알라'는 이정/표. 그러니까 착지로 맺는 게 아니라 이정의 연속. 하여 다시 출발/도착 ~ing. 이것이야말로 육신 입은 영성으로, 체험 중인 인생人生의 본질일지 모른다. 이 상승 지향의 스파이럴 지속하려는 움직임에서, 이를 가능케 하는 형편으로 하부구조 또한 따라서 변화! 되지 싶다. 그러니 이에 동기화하는 인간종種이 수다數多하게 되는 지점이야말로 인류의 '특이점'이지 싶고.


작은 공간에서 소수의 젊은이와 마주하며 느낀 바 가늠해본 미래상.

뉴노멀기 로컬은 이렇게 중심 여럿인 다원으로 드러나지 않나 생각.


* 이같은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이라면 역시 독서. 독서야말로 기본이라 일러도 좋을 원형일지 모르겠다. 사람[人]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여정. 그 여정 사이-사이[間] '내 속 너무도 많은 나' 곧 자기 자신이라 여기는, 자기 안의 '수성獸性'에 쉽게 굴복하는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한 모델/사표師表를 구하고 찾는 것. 그로써 기어코 마주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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