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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Dec 11. 2021

서점일기 2021.12.02.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언제나 인생은 99.9%의 일상과 0.1%의 낯선 순간이었다. 이제 더 이상 기대되는 일이 없다고 슬퍼하기엔 99.9%의 일상이 너무도 소중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도, 매일 먹는 끼니와 매일 보는 얼굴도.

 그제야 여자는 내 삶이 어디로 갔냐 묻는 것도, 앞으로 살아갈 기쁨이 무엇인지 묻는 것도 실은 답을 모두 알고 있는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_이미예, 『달러구트 꿈 백화점』2 본문 일부


남재일,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


 1%의 부자가 99%를 지배하려면, 99%가 1%를 욕망하도록 하되, 그 욕망을 좌절시켜야 한다. 간극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메워야 한다. 삶의 성취는 물질의 소유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확신과 노력하면 된다는 환상 속에 99%를 묶어두어야 한다. 만약 99%가 '1% 되기'의 불가능성을 각성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면 1%의 지배는 위기를 맞는다. (…) 부당한 질서에 동의하게 만드는 유혹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 열쇠는 결국 99%의 손에 있다. 유혹을 거부하고 반反유혹의 삶을 실천하면 유혹의 정치에서 해방될 수 있다. 적절히 소유하고, 적당히 참여하고, 적게 일하고,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삶 말이다. 애초에 적절한 조건이 주어졌다면 누군들 이런 삶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소유와 소비에 유혹된 사회에서는 이렇게 소박하게 균형 잡힌 삶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_남재일, 『사람의 거짓말 말의 거짓말』 中


 '실은 답을 모두 알고 있'다지만 실천 수반이야말로 앎의 본질이라면 모른다고 해야 적확할 거다. 안다고 여기면서 임하는 경쟁. 그 속에서 '적절히 (…) 적당히 (…) 적게'? 타他의 불편/부당/불리에 기대어서만 추구할 수 있는 제 편리/편의라는 데에 익숙한 몸. 그 몸이 추구하는 욕망에 봉사함으로 취한다 여기는 만족. 이를 너무 잘 알아서, 이를 바탕으로 꾸리는 삶을 두고 저런 표현을 주워섬길 정도로 가증스러운 게 문제요, 가증스럽다는 지각마저 모르쇠할 정도로 뻔뻔한 지경에 스스로 처하려는 것이야말로 문제. 바로 본 적 없이 '반성'이니 '성찰'을 입에 올린들 죄다 공염불에 불과. 한편 게으름이라든지 느림을 표방하는 서사 역시 결국 그 몸이 추구하는 욕망에서 자유하긴커녕 그에 봉사하기로는 별다를 것 없으니 소중하다는 그 '99.9%의 일상'의 태반은 '돈을 더 벌면 행복해지겠지'라는 99%의 순응으로만 드러나게 마련. 순도 높은 유혹만으로 점령된 일상에 불과. '반反유혹의 삶을 실천'한다는 것.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계절이 바뀌는 것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도, 매일 먹는 끼니와 매일 보는 얼굴'과 같은 사사로운 것임을 안다면 좋은 것? 꽃길?? 운운하며 그걸로만 장식하려 덤비지 않을 거다. 소확행이라면서 사사로운 것이 중하다면서 사소하다 이르면서 추구하여 전시하는 면면들이 과연 그러한가 하면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외려 정반대 아닌가 싶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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