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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Mar 04. 2022

서점일기 - 굿바이 정글?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굿바이 정글?

어차피 피차 간 몸을 벗지 않는 이상 불가능.

살아서, 출세간 목적 삼아 수도원이나 절에 들지 않는 이상, 또 오지에 들어 자연인으로 독거를 처지 삼지 않는 이상 눈팅으로 기웃대면서라도 섞여 들고프니 이루는 정글로 피할 도리 없는 게지.


이런 저런~ 가치의 우열을 가늠, 유형별 분류, 자기 기준과 잣대를 강화하는 되먹임으로 상호 간 확증편향을 굳히는, 주접 연속이 지속가능인 자체를 모두 끌어안고 품을 때나 '다름을 인정'한다는 표현에 참으로 부합하는 것. 세간과 출세간의 구분조차 여읜 지경이니 걸림없이 내는 마음 따라 가는 몸 그 사위에 걸음 하나하나에 깃드니 절로 만행, 화이부동은 이를 가리키려는 데 따르는 이름이고. 그러니 사람의 아들로 이런 지경에 이른 자? 야만 젖히고 문명 이후 밀레니엄 곱절에 얼마나 희귀한가 말이다;; 이를 알아채는 안목, 이르자면 터득조차 (차이로 변별되는 층위를 염두에 두지 않고 모두어 꼽는다 해도) 대단히 희소하다. 정말이지 손꼽는 딱 그 정도.


그러니 자기의 '다름' 만을 '인정'받자고 돋우는 지경에서 초록으로 오십 보 백 보 그저 동색. 이러한 배경에 자리한 것이 저로 오롯하다는 착각으로 인간 종을 길이 보전하라는 DNA 프로그램. 이 난데없음을 성찰할 새 없이 그대로 수행하는 와중에 구축되느니 저를 알아줄 단 한 사람이라는 판타지 서사. 전제된 일방의 희생을 외면하고자 애쓰는 형국. 아니 외려 반대로 말하고 얼마간 그리 하기도 하지.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는 편이 차라리 낫겠지. 이해를 타산, 유불리 따지는 시선으로 얽힌 세상, 연인 간 자기 희생 역시 주고 받는 조건부 거래 그러니 성역할 분담의 분업화는 차라리 합리적인 방편으로 자리했을 테고. 때문에 그 조건의 경계를 지우는 데서 목격되느니 숭고함이고.


자아 격돌, 인정투쟁의 장으로 정글이자 격전지에서 서로가 서로를 따돌리고 배제하지 않을 수 없지. 이미 그러고 있는데 아니라 여기는 자체가 ~척 하는 작위일 테고. 도무지 어찌 해볼 도리 없구나 싶으니 난파 직전 배 안에서 꿀꿀대는 돼지와 다를 바 없다는 '필론'의 자각.


그래서.. 저마다 수행한다는 과업, 짓는 제행의 무상한 천변만화의 만상이 덧없고 부질없음에 붙여지는 것. 오롯하다는 제법이 무아라는 것이고. 그 일체를 직시하는 때에야 불성 만이 유아로 독존임을 깨닫는 것. 이 하나의 영성/법신이 다른 색신을 입고 체험 중임을 지각하면서 비로소 솟나니 사랑인 것. 자존은 불성에 액세스, 싱크 이루는 때의 내면에서 경험되는 사랑이겠고. 밖으로는 그런 자신과 다를 바 없는 상대를 향하는 것이고. 의에 닻 내리지 않는 이상 일엽편주 내 각주구검일 따름. 때문에 열반은 정글 내 무주처일 밖에. 동기화 된 사람만 수처작주 입처개진일 수 있는 것.



붙임 : 원효의 무애 실천은, 학승으로 타의 추종을 허락지 않는 지경까지 파고든 끝에 난데없음을 직면, 그를 성찰하면서 비로소 탈영토화 이룬 모습이다. 계의 실체를, 방편이야말로 그 진면목임을 깨달은 이 만이 그를 파할 수 있는 것. 감각조차 못하는 무명 상태로 파계를 읊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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