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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Apr 09. 2022

서점일기 ─ 마을교육? 지원??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서점일기 2022.04.08.



눈치없는 내가 그르지~ ㅎ

끼어들지 말았어야 할 자리에 끼어 꿔다놓은 보릿자루 행세 제대로 한 듯싶다. 이거야 원;;


#북구도서관 #마을교육지원과 관련 회의 참관(? ㅋㅋ) 후기.

딱히 이렇다 할 내용은 없었으니 죄다 넘기고,

자리한 #쓰는하루 '모두 작가 되기'? 이를 모토라 하는 말을 들은 바이니

우리 #사각공간 또한 창업 초기부터 나름 다잡았던 바를 다시 밝힌다.


사각공간은, '단 위에 오르는 한 사람을 주목하는 구도 벗고, 그 단을 고르게 만드는 열 사람'으로, 저마다 자기 자리에서 스스로 일구는 삶을 환기하는 데 주력함이 그 모토인지 뭔지라 하겠다.


이 또한 술이부작이요, 아문여시. 그람시의『옥중수고』 내용 가운데 표현된 바를 신영복 선생께서 다시 매끄럽게 다듬은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는 데서 빌어온 것인 만큼 그저 그렇게 꾸준하잔 것인데, 오늘(4월8일 현재) 거듭 다지는 계기 삼게 해주어 차라리 고마울 정도. 정말이지 눈물나게 고맙습니다!!



자기 자신, 제 정체성을 조형하는 자체를 '퍼블리싱'과 맞물리는 것으로 표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로써 '책'을 펴냈네, '작가'입네 드러남이 중한 게 아니라 과정 간 저를 살피는 자체야말로 고갱이일 테지만 이와 반대편으로 전개, 비단 오늘-4월8일 현재- 뿐은 아니어서 그닥 놀랍지도 않고.

그러니까 해당 기관은 물론 함께 자리한 몇몇 현직 교사분 시선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러니까 '책'이라는 물성 입고 품品으로 내보이는, 또 그를 펴낸 '작가'로 드러나고 드러내는 데에만 쏠려 있는 듯한 인상이란 것. 기관은 이를 가능케 하는(?) 곳을, 문화거점(??) 등으로 다시 주목하고~

그래 뭐 니즈를 바탕으로 상호 간 긍정의 스파이럴~이랄 수 있다만 나로서는 갸웃하니 그저 글쎄올시다~ 한다.

활동 주안점이 죄 이런 데로만 쏠리면 한번쯤 오히려 어떤 형편에 매몰되어 있는 건 아닌가 각각 먼저 되짚어 볼 법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소위 '성찰'이랄 만한 건 아예 부재不在여서 나로서는 그게 더 놀랍고 기이하기까지 하다. 성찰 등도 꽤나 회자된 표현 아니던가? 그런데 그것은 정작 부재不在. 나는 그만 어쩐지 '고도를 기다리'는 사내가 된 느낌적 느낌. 허허 참.


전부 차치하고서 읽는 목적으로 정말 중한 건 저마다 처한 자리에서 바람직한 바에 기대어 자기 삶을, 급급하여 꾸리던 당장의 형편에서 Deformationㅡ 그러니까 가꾸는 동시에 바꾸는 게 아닐지!!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민주民主의 요체인 만큼 더할 나위 없이 중하다 싶은데!! '니체'를 비롯 경유하며 되읽기 거듭하는 등등으로 강조하는 '운명愛'의 골자 또한 나는 이렇게 듣고 보고 이해했다만.

어째서인지 '마을교육'을 비롯하여 '공동체'를 강조하는 등등의 표현이 무성한 곳에 막상 자리해 앉아있으면 대체 이게 다 무슨 상관인가 싶은, 말들로 잔치는 성황. 와중에 정작 중한 바와는 상당한 거리 아니 거리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동떨어지는 편으로 아예 안드로메다로 고고씽.

더 답답한 건 이편으론 차라리 기성旣成에 가차운, 아니 그대로 기성과 다를 바 없는 구도요 다르지 않은 프레임이란 것. 따위의 기성 아~~주 익숙(!)하지. 고쳐 이르면 넌덜머리 난다는 겁니다.


모두의 이목을 끄는 1인 양성. 이것이 저마다 오롯하다는 것인가? 무슨 상관인지 나는 모르겠고. 따위로 1:多라는 구태舊態를 거듭 접근하기로 여전이면서 '창발'을 지향하는 듯한 말만 일삼는 태도야말로 기함할 일 아닌가? 이런 환경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사고思考는 누가 책임지지?? 창발/창의/창체 기타 등등 뭐라 이르건 간에 이런 식이면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는 것.


한편 기관 비롯하여 불가피인 사정과 형편이 없지 않음을 이해하면서도 아니 그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니 입 밖에 내는 바 없이 나름 삼키고 마는 경우 수다했다만, 없어도 그만인 유령 취급으로 무시/배제마저 심심찮게 겪는 지경이 되고 보니 그냥 있을 수만도 없겠다. 같지+않음을 두드러지게 보여주는 데에야 이편에서도 같지+않다 느끼는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표함이 필요하다 싶을 따름.

내 이러는 데에 행여 나 개인이나 사각공간의 관심과 조명을 바란다는 식으로 물타기 할 생각은 말았음 한다. 필요없습니다!! 내가 버르집고 따지려는 건, 따위의 태도야말로 기관 비롯한 데서 이외 사람과 사람이 자리하여 꾸린 단체를 비롯한 등등을 바라보는 시선의 기본값이라는 겁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무시/배제를 실천하는 우리 평범한 이웃들의 민낯이라니 ㅋㅋ 미시 단위에서 수행하는 '악惡의 평범성'. 어디서 주워들은 그대로 '아렌트'를 입에 담는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르는 짓, 짓거리들. 당장 이 내 심경을, 떠오르는 진이정 시인의 시구를 틀어 표하자면, 정말이지 '콧구멍으로 솟는 인류애'로 웃고만다 코홍홍홍. 아, 정말 어매이징하군.
 
'우리가 우리에게 지은 죄를 사'하는 실천으로 영혼 정화에서 구원에 이르기까지 아는 이들로 이 사회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것일 테지. 이를 이해를 돕기 위해 간명한 표현으로 빗대어 이르면, 고치는 게 마땅한 사람들은 정작 찾아오질 않고 그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얻은 이들이 신경정신과 문을 두드리는 지경과 같다.


'우리가 우리에게' 저지르는 짓들로 바로 그 때문에 더욱 견고하고 완강한 힘으로 드러나는 체계이건만. 과연 이를 문제로 의식은 하고 있는가? ← 이러한 의구심부터 솟게 하는 데서 세계에 불의와 맞서는 자립으로 주체는 비로소 독립과 동시에 연대를 구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특히 책을 읽고, 또 그를 통해 듣고 보고 배운 바는 이런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이런 의구심을 그저 억누르고 무시하며 당장 세를 이루는 데에 합류 함으로써 가늘고 길게~ 이런 작태들로 책?? 그러니 겉도는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요원해지는 변화이지 않나?! 자리가 만드는 사람이랍시고 주저앉아 관성으로 벌이로나 충실하지 말고!! 제발 자신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부터 명확히 하고 임해라!!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의심을 아예 확신!으로 굳혀주는 세상에서 나는 계속해서 아니다 싶은 것들을 밝혀가며 묻고자 한다. 사각공간이라는 서점은, 이 안에서 이루는 활동 등등은 어떡하든 좀 그러한 데에 천착하련다.



붙임.1 : 따위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지경들로 책 운운이라니 그야말로 서자서書自書 아자아我自我 아닌가?

붙임.2 : 상기 내용 가운데 일부를 메일로 옮겨두고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그러니까 나 또한 모르는 사이 어떤 사정에 매몰된 채, 사로잡힌 상태로 억측하는 건 아닐까 싶어 담당 선생께 전화드렸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뜻을 존중'한다는 말과 함께 깔끔하다 싶게 정리. 채 삼십 초도 되지 않는 사이 내 무슨 말을 전했다고 뜻을 존중한다는 것인지 잠시 어리둥절 ㅋ. 혹시~했던 마음이 무색(짧은 순간 무안함마저 느낀 바)할 정도로, 역시!로 굳혀주신 바 메일 전송. 전송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전화, 주심. '사실 저도 마을교육에 대해 잘 모르고~'와 같은 표현까지 이르시며 한껏 부드러워진 억양으로 말씀하시는 데 그걸 겸양이라고 취하는 것인지부터 참 ^^;; 극명할 정도로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 데 구차하게 그러지 마셨음 하는 마음에서 그쪽 기관의 일만도 아니고 이런저런 경험 없지 않으니 그렇게 부담 느끼지 마셨음 한다는 취지로 말씀은 드렸고. 물론 단지 그쪽 만의 문제가 아니란 것이지 그냥 넘길 생각은 없다. 그야말로 총체를 이루는 이 갖가지 국소적인 난국을 그냥 보아 넘겨선 안 될 일이다 싶고. 나는 이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생각한다
.


붙임.3 :  '쓰는 하루'에서 이야기하는 판형/인쇄도수/부수 등 감안, 제책비용 내 아주 모르는 바도 아니건만, 아무리 소량 생산이라 한들 의아하다. 그러나 그건 뭐 나름 사정의 반영이라 치자. 그렇게 생산한 도서를 해당 쓰기 과정 등에 참여한 이들이 관내 도서관에서 희망도서로 신청, 이것도 뭐 그럴 수 있지. 하면 납품 위한 현매 사입이니 지역서점 간 도매로 거래되어야 하는데 바로 앞전 이야기를 이유로 들어 정가에서 10% 할인, 판매를 한다. 그러면서 지역전자화폐로 가능하니 추가 10% 할인이란 식으로 설명하는데 후자는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지 그쪽서 할인을 해주는 게 아니지. 게다가 제책비 감안하여도 원가+이익분을 납품하는 서점에서 취하려 드는 방식, 동종 업장 도매 거래에 대한 기본 개념 부재인 형편으로 서점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자체가 논리적으로 들어맞나 싶고. 애당초 쓰기 클래스 비용을 가르치는(?) 서비스에 치르는 값이라 이해하면, 이를 예산으로 지원받은 경우는 어떠한가? 그래서 생산한 도서의 경우조차 이런 식으로 유통(?)이라면 비용 상계 이상의 이윤을 이중으로 취하니 착복이라 해도 과언 아니지 싶은데??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것. 애당초 원가로 산정되는 그러니까 제책까지 과정에 드는 비용, 특히 편집/디자인 등으로 산정하는 그 비용이 적정한지부터 의문이다. 기성 출판의 전문인 집단(동종 업계 이력의 산업예비군들로 구성된 측만 놓고 보더라도) 내 인력과 외주 협업일 때를 비교하면 이네들이 기관 등에 제시하는 비용(인건비 등)이 어떤 상태인가는 대번에 드러날 일!!


붙임.4 : '독립서점'이라는 타이틀로 전문성을 보장받는 듯한 태도들로 강연 비롯하여 이런저런 경로로 구축하는 수익구조? 눈 먼 예산 바탕으로 국가는 봉이 되어 기관이 나서서 호구를 자처하는 셈 아닌가 싶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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