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정부' 주장과 '탈脫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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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공간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자본제 시장 균형과 등치 시키려 아전인수我田引水 일삼으니 노자 입장에선 눈에 흙 들어간 형편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기지 싶다. 적어도 생전에 이 꼴 마주하진 않았으니;; 아무튼 이게 민간 영역이라는 말로 가리어져 그렇지, 당초 민간을 이루는 다수가 저마다 오롯한 존재로 서로 간 균등하게 균형 이루고 있나? 아니다. 백번 양보하여 (생물학적) 능력 차를 감안, 이에서 비롯하는 격차와 이로 인한 불균형을 받아들인다손치더라도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수긍하는 건 무리(물보다 진하다는 피를 중심으로 세습에 열 올리는 데에는 위 아래, 남북은 물론이거나와 좌우 경계와 구분이 무의미한 곳이 바로 한국 아닌가)!! 포기와 체념을 긍정이라 해석할 수 없는 것처럼. 왜냐하면 제왕적 지위를 누리는 소수와 그로부터 다수가 열 지어 늘어선 갑을 연쇄의 먹이 사슬 형성에 불공정 요소에 기인한 바가 지대하기 때문. 다수의 미래를 담보로 하여 차입, 경영한 바로 성장 이루었으니 그 과실은 성장 과정에 함께한 민간 주체 모두에 배분이 됨이 마땅할진대 합리合利를 합리合理라 주장하는 자본주 편에만 유리하게 흘러왔던 것이 한국 자본주의. 돈이 아니면 돈을 벌어들일 수 없는 판에서 심화될 수밖에 없는 양극화의 불평등을, 마치 수요/공급 균형 이루는 과정서 빚어지게 마련인 불균형 상태로 일시적인 양 자연스러움을 주장하는 자체가 뻔뻔. 인위 개입 말고 그야말로 무위無爲, 아무것도 하지 말라느니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식이어서 더욱 문제라는 것. 주장대로면 기업 활동을 사사건건 막기라도 하는 것 같지만 기업이 벌이는 이윤 추구 과정의 속살과 그렇게 취한 이윤이 어디 누구에게로 귀착되는지 배분 상태를 살핀 끝에 취하는 행동이 (때때로 적극적으로까지) 개입이었음은 공황마저 겪은 세계 역사가 증명하고 있건만. 아니 시장에서 이룬다는 균형이 공정한 자원 배분과 다를 바 없다면 누군들 시간 들여가며 개입 당위를 역설하겠나, 상식적으로;;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등 '작은 정부'로 시장 개입 최소화하며 기업 활동 진작코자 애를 씀으로 해서 다수 국민 삶의 질이 나아진다면야 누가, 왜 막겠는가. 막는 게 이상하지;; 계속해서 이미 부유한 소수만 더 이롭게 하니 문제 삼는 것. 이렇게 역사적 증거와 실상을 들어 정부 개입의 당위를 역설하는 데 오히려 시장 중심/우선 주장만 거듭함은 마치 무위자연을 아전인수한 것처럼 제 편의대로 해석한 소국과민小國寡民* 상태의 유지를 바라는 것이나 아닌지. 이를 당연하게 여긴 달지. 그러니까 다수 국민을 民이라 여기면 하기 어려운 발상이라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 소수만이 '작은 정부'에 대응하는 민간 주체로 '과민寡民'에 해당함을 천명하려는 게 아니라면 작금의 불평등을 단지 불균형이라 이르는 식으로 현실 도외시하며 '작은 정부' 만이 옳다는 식의 주장을 거듭하진 않을 듯. 시장 주도권 장악, 제왕적 지위 누리는 소수층이 엄연한 판에 게다가 이를 고착화하고 확대시키는 불공정이 수시로 끼어드는 판국에 이에서 비롯되는 불평등 심화를 불균형이라 이르니, 이 함정에 빠지지 않고자, 한국서 보이지 않는 제 미래를 찾고자 이승이든 저승으로든 탈-조선하는 것.


붙임: 사실 나로선 이 정도 각오 그러니까 이/저승으로의 脫-조선 각오라면, 믿음 그것도 딱 '겨자씨' 만큼만 보탠 51의 운명愛로 49의 절망 딛고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은 한다. 그러니까 20:80 아니 1vs99 아닌 51:49 또는 49:51 간 영구적 변증 이루는 형태가 마냥 이상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싶은 것. 그래서 이러고 있습죠 '_'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_김중식,詩 「이탈한 자가 문득 」 전문



*노자, 『도덕경』

붙임: head 삽입, Photo by Jeremy Bishop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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