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불성佛性이라는 실상實相을 기준 삼으면 허명虛名 아닌 것 없겠다. 진여眞如 외에는 다른 법 없으니 그에서 50보를 떨어졌든 100보의 거리든 무명無明 상태임과 매한가지. 다만 중생衆生 저마다 유불성有佛性이라면 아쉬운 대로 그 반응 정도를 가지고 진眞(과 꼭 같지[如]는 않아도)에 가까운 그러니까 근접 정도를 판단하는 근거로 삼을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토대 위에서만이 '허명虛名을 전하지 않는 세상'이라는 표현은 말로써 겉돌지 않고 자리할 수 있지 않을지. 그야말로 명실상부名實相符인 세상.
진眞과 같은[如] 것이 사람 본성에 자리하여 있다니 누구든 그에 이끌림은 당연지사. 처음, 막연한 대로 그에 기대어 길을 내는 것이 신의信義를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의 으뜸으로 삼고 지키려는 실천으로 드러나겠다. 때문에 겉/속 다른 표리부동表裏不同을 부끄러이 여김이겠고. 이렇게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하리라는 저마다의 믿음은, 모두가 바람직하다 여기는 데서 ‘일반의지’로 형성되겠다. 다시 이를 바른 기준 삼아 몸을 세우려니 입신立身이겠고, 믿는 바를 몸소 실천하여 스스로 증거 됨이니 이것이 진眞에 가까울수록 여러 사람 그에 반응하여 호응하니 절로 양명揚名 되겠지. 그러니 여럿과 어울리면서도 여럿 가운데 도드라지게 마련이어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겠고, 그 심중의 덕德이 끼치는 데에 절로 이끌리는 사람들로 외롭지 않게 됨이니 해서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이겠다.
이르는[名] 바가 실상實像 위에 겉돌지 않으니 대세大勢를 이루게 됨이다. 그러니까 ‘허명을 전하지 않는 세상’이란 표리부동 개인이 당초 힘을 얻기 어려운, 세를 이룰 수 없는 사회다. 명실상부를 실천하려는 개개인만이 명실상부 사회와 상부일 수밖에 없는 것.
경계하면서 사랑하는 체, 시기하며 친한 체, 기뻐하며 슬퍼해주는 체. 저는 너그럽습니다, 라고 표시하기 위하여 웃으려는 저 입술의 비뚤어져가는 저 線이여.
_ 김승옥,「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런데 이를 갈라놓으니 다름 아닌 자본제[Capitalism]. 화폐를 중심으로 재편된 구조. 단락적인 거래만이 연속적인 가운데 그에 따라 일으켜지니 다름 아닌 소외의 연쇄. 슬라이스 된 자아의 면면이 (비)자발적으로 샌드위치 된다. 이를 먹어치우는 최상위 포식자를 길러내는 시스템. 眞을 물신物神이 대신하고, 배금拜金이 如를 대체한다. 이윤 추구를 전제하는 비교우위의 분업화가 진여이고자 명실상부 하려는 개개인을 따돌리고 앞장선다. 자본제와 상부하는 일면을 내세우는 개인/무리가 제게 이로운 면을 중심으로 경쟁한다. 진여의 입장에선 허명에 지나지 않고 외려 표리부동일 텐데 이것이 구전[viral]되고 득세하니 market+ing.
정말이지 -인 체/척, ~하는 체/척 말아야 할 때 아닌지. ‘껍데기는 가라’고 외치기도 하여야겠지만 우선 쓰고 있으면서 쓰고 있는 줄 모르는 가면을 인식하고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지. 허명이 판치는 세상의 허망함을 토로하기 앞서 작은 이익 두고 다른 누구 아닌 자기 자신, 스스로를 기만/기망하고 있지나 않은지 반성할 일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진여이려는 본성을 뒤로 하고 물러설수록 사람을, 관계를 해害하는 이 다름 아닌 ‘나’이겠다.
나는 사람과 어울리려 사람을 사칭하였고
나는 꽃과 어울리려 꽃을 사칭하였고
나는 바람처럼 살려고 바람을 사칭하였고
슬프지만 버릴 수 없는 삶의 이 빤한 방법 앞에 머리 조아리며
_김왕노,詩 「사칭」
사칭을 고백하는 시인에 내 모습을 비추니 하.. ‘비뚤어져'버린 이 내 '입술의 線이여’
붙임: head 삽입, Photo by Markus Spisk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