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이란 없다, 사람 손 닿는 곳에 善이 있을 뿐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다. '날으는 솔개'* 아닌 사람인 만큼.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말들로만 무성한 숲을 가꾼답시고 애쓸 필요는 더더욱 없을 터. 선善이든 의義든 이를 빌어다 나'를 빚으려니, 본의本意 가리키던 말글조차 마치 방향 잃고 방황하는 듯 비치고 또 그 반영 역시 이지러진 모습으로 드러나는 듯싶다(나'의 욕망으로 오염된 바가 실상). 그래서 사람은, 서로는 물론이거니와 자기 자신조차 참아내기 어려운 지경에 자주 처하는지도 모를 일. 가벼운, 한없이 가벼운 존재. 헐벗고 굶주린 내면을 채울 수 없는 말글의 성찬은 공허하지, 아무렴. 그러니 갈급은 여전하고, 와중에 수치심만 부푸는 형국.


『페스트』에서 의사 '리유'가 너무나 보잘것없는 자원으로 자신을 도와주는 지원자들을 이끌고 질병과 대항해 한발 한발 싸워나갈 때, 그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인간의 깊은 지혜의 증거이다.
당신이 거둔 모든 승리는 단지 잠정적인 것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렇게 반박한다.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제나 마지막에는 죽음이 승리를 거두리라는 것을.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먼 곳에 있는 더 좋은 것을 찾지 않는다. 그는 병원을 세우는 대신 우선 자기 방을 가난한 이와 나누어 쓰는 파스칼의 방식대로 '가까이 있는 선善'을 추구한다.

결정을 당장 실행에 옮기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그 결정이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그리고 그것이 뻗어나갈 수 있는 버팀대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 만약 어떤 진보적인 일이 실현되었다면 그것은 묵설법적 표현에 의해서 혹은 우선 하기 쉬운 행동에 의해서 덜 나쁜 것 쪽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더 좋은 것 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수정하는 것뿐이다.

더 좋은 것이란 없다. 단지 모든 사람의 손이 닿을 곳에 있는 이 선善이 있을 뿐이다.

'사랑'이라는 그처럼 혼돈된 이름이 아마도 정확하게 적용되는 것은 바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이러한 관심, 그리고 과일이 무르익는 것을 지켜보는 자의 이러한 정성에 대해서일 것이다. 그리하여 선으로부터 더 좋은 것을 실현시키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인간으로 하여금,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속에서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무언가를 무한정 발견해내는 것을, 그리고 그 스스로 선하게 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또한 사랑이라 부를 것이다.

_장 그르니에, 『존재의 불행』 中


출생과 함께 따라붙는 사망 선고, 어차피 피차 벗어날 수 없는 운명. 비록 사람으로 이 땅에 난 이유는 알 수 없을지라도, 이 부조리不條理 위에 바람직한 삶을 가꾸며 인간種의 도리道理를 세울 순 있겠지. 불가능한 최선을 품고 덜 나쁜 것 쪽으로 하기 쉬운 행동을 우선하는 것. 그리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수정'을 계속하는 것뿐. 좋은 것이란 당장 제 '손이 닿는 곳에 자리한 선善을 실천'하는 것뿐. 조금씩 선善이라 여기는 쪽으로 다가서는 것. 성찰 통한 개과改過로 천선遷善,곧 선善의 형편으로 옮아가려는 '사랑' 만을 실천할 뿐.


책임지려는 낱낱으로 이루는 연대야말로 '블록체인'일 것(-코인이고 나발이고 모르겠고 '_').

이 책무 수행으로 형성된 '클라우딩' 속에서 모습 드러내니 그것이 '일반의지'이겠고.


그러니 가可/부否 왈왈曰曰하는 속에서 정체성 '보이려' 애를 쓰는 형편에 서느니 '가까이 있는 선善'을 추구하는 편이 개인으로든 국가/사회 기타등등으로든 훨씬 득得이겠다.



*이동원 노래 <솔개>

붙임: head 삽입, 영화 《스틸 라이프》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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