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革:命
revolutioⁿ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혁(革)은 익힌 가죽이라는 글자인데, 짐승의 날가죽 곧 피(皮)를 익혀서 털을 뽑으면 모양이 전연 달라져서 새것이 됩니다. 그래서 혁(革)에는 달라진다. 새로워진다는 뜻이 붙게 됐습니다. 앓는 사람이 병이 갑자기 나빠져서 죽는 고비에 들게 될 때 병혁(病革)이라고 쓰는 것도 그 뜻에서입니다.

_함석헌, <혁명의 철학>,《사상계》1968. 4월 180호, 씨알소리 넷에서 재인용


그러니까 皮 → 革으로, 사람의 쓸모에 걸맞도록 새로이 탈바꿈 하는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이라 이해하여도 좋을 듯. 다만, 오늘을 사는 21세기형 인간이라면 뭐랄까 나'의 바깥 그 가죽[革]이라는 물성物性 변화에 기대는 게 아닌 바로 나' 자신의 편으로 들여 새로이 새겨봄직도 하다. 생각, 이에 이르자마자 바로 떠오르니 다름 아닌 이 내' 살가죽. 하면 '혁명'이란 결국 이 육신肉身, 이 내' 살가죽[革] 안에 거居하는 생령 곧 주체의 발현[命]까지 일련의 과정 전체를 뜻한다 여겨도 무방하지 않을까.


revolution(혁명)은 "a turn around(한 번의 회전)"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 revolutio에서 나온 말이다. 역사가 대니얼 부어스틴은 "천체의 궤도 또는 순환로에서의 움직임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운행revolution'이란 말은 이제는 그러한 순환 과정을 끝내는 데 요구되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17세기 초에 오면(옥스포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운행' 이란 말은 커다란 변화를 모두 가리키는 '혁명' 이란 의미로 사용하게 되었다"며 (후략)

_강준만, 『교양 영어 사전 2』 中


라틴어 revolutio를 영어로 옮기니(*구글 번역기) cycling. 맑스가 이른 '편위'(*『데모크리토스와 자연철학의 차이』) 역시 이 우주적 스케일의 순환/사이클 내에 속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겠다. 그러니까 '운명運命'이란 표현 자체가 역사의 공간 위에 저'를 정초定礎하는, 위치 지으려는 주체'의 출현을 포괄하는 게 아니겠냐는 것.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_개신교 성경 마태복음 5장 17,18절


하면, 이 직선直線으로 가득한 기성旣成의 공간에다 계속해서 '편위'의 삐딱-선을 긋는 데에 더더욱 몸부림침이 마땅하겠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정正을 주장하며 한쪽으로 기울기를 거듭하는 역사를, 반反으로 받치며 균형 잡아 다시금 본 궤도에 올려두는 일이기 때문. 이로써 이 범우주적 규모의 사이클링이라는, 이 세계의 율律과 법法의 '완전'을 조력함일 테니(폐한다는 건 오해. 폐하긴 뭘 폐하나;; '완전하게 하려 함'이구만).


이 가슴팍 살가죽[革] 속에서 울려퍼지는 '지혜의 부르짖음'(*개신교 성경 잠언 8장 1,2절 "지혜가 부르지 아니 하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 하냐") 따라 그 가죽 밖으로 나서려는 / 또 바깥으로 끄집어내려는 노력, 이를 기어코 살아내는 실천이야말로 인간種 DNA에도 새겨진 命일지 모르겠다. 혁명이 별 건가, 이런 게 혁명革:命이지 ~


하면, 진리 좇는 제각각이 이미 그 나름의 소규모 혁명을 수행하는 중이랄 수 있겠다. 저마다 제가 딛고 선 바로 그 자리에서 펼치는, 각각의 자리이타自利利他가 다름 아닌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면면面面으로 구성됨이니.


그러니까 revolution 자체가 이 낱낱의 revolutio의 패치워크.

따라서 다소 간 논리 비약을 무릅쓰고 의미를 쪼물락대면

revolution = revolutioⁿ

아니겠냐는 것.

revolutio에 일조하는 데에 자기 生을 버닝하는 보통인/주체의 끊임없는 출현. 우주적 스케일로 보면 한낱 하루살이에 불과할지 모를 인간種 개개의 삶을 역사로 이으니 n제곱. 이것이야말로 '영구적 변증'의 중핵 아닐지.




민주주의가 부르주아계급에게 불필요하거나 골칫거리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역으로 노동계급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된다.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사회를 변혁하려는 노동계급의 과업에 있어서 버팀목이 될 정치형태(자율적인 행정체제, 선거권 등)들을 창출하기 때문에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것이다. (…) 노동계급은 민주적 권리 행사를 통해서만 자신의 역사적 과업과 계급적 이익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에게 정치권력의 장악이 불필요한 것이 되게 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장악이 필요하고, 또 가능한 것이 되게 하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 다른 한편, 영국의 토지문제에 관한 마르크스의 유명한 문구 (…) 즉, '우리는 영주의 토지를 사들임으로써 아마도 보다 쉽게 성공할 것이다.' 라는 문구는 승리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노동계급의 입장을 언급한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확실히 권력을 장악했을 때에만 구지배계급의 토지를 사들이는 문제에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_로자 룩셈부르크, <개량이냐 혁명이냐>,『룩셈부르크주의』, 풀무질 출판


철 지난 계급 운운(계급이 철 지났다는 게 아니라 운운하는 모양새가 낡았다면 낡았다 여기는 바) 거듭할 생각 없고. 소규모 혁명 관련 그 패치웤 상은 이미 오래전 가늠하였음을 증거 삼고자 인용.

바로 이어지는 토지 관련 내용 역시, 요즘은 당시와 다른 양상으로 드러나긴 하나 기저는 다르지 않다 여기는 바여서 인용.

사족 더하면, 불로不勞가 소득所得과 짝할 수 있는 형편은 민주주의 하 재분배 통해, 시장市場이 양산/심지어 배제하는 사회적 약자를 조력하는 한에서일 것이다. 이 약자를 비롯한 다수 民/보통인이 '권리 위에 잠자는' 것 봤나?! 아무도 잠자고 있지 않다. 의지 개입된 부지不知가 아니라 개입 여력조차 없어 무지無知인 형편이야말로 실상일 것. 그러니 따위의 비유로 법률 서비스 등의 상부구조가 자본에 기우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 마쇼. 짜증 아니 짜장 나니 '_'


붙임. 1: 경칩입니다!! 지·옥·고 서식 중이신 개구리 여러분의 등판을 학수고대함돠 ~ '0'/


붙임. 2: head 삽입, 이미지는 현 사각공간의 프로토타입~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과거 어느 때 어느 곳에 자리했던 사각공간 모습이다. 저렇게 책을 그대로 게시하는 형태로, 공간박스 간판?을 만들었던 거임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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