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자아를 부르는 주문
오 캡틴 마이 캡틴 '_'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엎어진 김에 쉬어간들 어떠하리, 자빠진 김에 한숨 잔들 어떠하리? 개운하리! 쉬면서 꿀잠 때리고 나면 저는 물론이거니와 자기가 친 바닥 살피기도 용이할 듯. 이 지피지기知彼知己로 불위不危 다져 나아가면 더할 나위 없지.


어차피 피차 불완전, 완전(한 존재)이 부재의 영역이면 re-set 내지 re-boot 욕망이야말로 판타지 망명 시도일 뿐. 계속해서 '다음' (사람)을 염두에 두는 데서 오히려 끊이지 않으니 갈급이요, 지속하니 방황이다. 하면 이 덧없음, 부질없음 자체를 제 내면에 (온전히) 들여 소화/이해하는 데서 오히려 여유/여지는 복원되는 게 아닐까. 이렇게 다진 터전으로 바탕 삼는 때에야 더는 '다음'에 끄달리는 바 없이, '당장'에 충실하지 싶고.


제행諸行이 무상無常이고 제법諸法이 무아無我인 판이면 딱히 자기 바깥을 헤매일 이유도 없지 않을까? 무연無緣이 本이면 그로 돌아가는[來] 자체가 무일물無一物과 같게[如] 됨이니 이것이 다름 아닌 여래如來. 하면 인연因緣이야말로 '선택'이오, 따르는 고통은 자처한 '집중'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주체의 자발/적극 선택이라면, 사랑 또한 제게서 비롯하여 가닿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이니 '무엇'이 사랑인지보다는 '어떻게' 사랑할지에 무게를 두고 고민하지 싶다. 해서 자연스레 α를 묻기보다 Ω 곧 실천으로 맺는 완성을 그리지 싶고.


(한) 사람에 집중/수렴 일삼던 서사가 무너지는 지점에서 벌어지게 마련인 두 가지 사태. 자기愛가 승하여 자/타를 괴로운 지경에 빠뜨리거나 자기애를 극복함으로써 자/타를 살리는 사즉생死卽生에 이르거나(인류愛로의 도약이야 후자에서 비롯함은 물론).


영혼으로서는 운명의 바닥과 마주하는 형편이 차라리 축복의 기회일 수 있겠다. (바닥에 부딪침으로 해서 부서진 껍질 벗은) origin이 터전에 뿌리를 내린 바 흔들림 없이 굳건할 테니. 마주친 이후로도 여전如前이어서 희喜/로怒/애愛/락樂 천변만화千變萬化 거듭할지 모르지만, 이 같은 형편과 거리를 두어 무덤덤함으로 자릴 지키는 오리진으로 순식간 평정 찾을 테니. 이 항체의 스탠더드야말로 타의 모범되니 결국 여래. 바닥이 도약의 계기. '사회적 거리두기' 또한 좋은 기회. 일희일비一喜一悲 휩쓸리던 자아와 '약간의 거리를 두'기 딱! 좋은 기회. 바닥과 하이 파이브, 굳건한 자아와 바통 터치!! 이 경험, 소산으로 저는 물론이거니와 바닥과 마주한 그래서 힘겨워하는 낱낱의 운명들에 '굳건한 자아'(=캡틴)를 소환하는 주문 전파 가능. '마이 캡틴'은 당초 자기 밖 부재不在. 이 기신起信의 물결로 대동단결, 이루니 절로 대승大乘. '죽은 시인의 사회'는 '독자의 탄생'과 동시에 부활하게 마련(이러니 학이시습學而時習, 아니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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