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도착했을 때 회관 성물 판매소 앞에 아이들이 서 있었다. (…) 어떤 아이는 전화를 걸고 있었고, 어떤 아이는 사탕 판매기 앞에서 동전을 찾고 있었으며, 어떤 아이는 가방을 열어 그 안에 든 초와 성경, 학생 교본인 『믿음을 향한 대화』, 제가 사용할 컵 등 준비물을 확인하고 있었다. (…) 윤호는 건물 현관문 위의 '자유 · 정의 · 평화'와 휴게실 접수부 위 벽의 'Pax Romana'를 읽었다. (…) 그날 아이들은 지하 성당에서 '십대 노동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삼십 분 동안 토론을 벌였다. (…)
윤호는 말했다.
"여러분은 십대 노동자 문제를 놓고 삼십 분 동안이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십대 노동자에 대해 죄스러운 마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 그들의 어린 동료들은 자기 자신을 표현할 줄도 모르고, 인간적인 대우를 어떻게 해야 받는지도 모릅니다. 현장 일이 그들의 성장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 어린 노동자들은 생활의 리듬을 기계에 맞춥니다. 생각이나 감정을 기계에 빼앗깁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생각나죠? 그들은 낙하하는 물체가 갖는 힘, 감겨진 태엽 따위가 갖는 힘과 같은 기계적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처럼 십대 노동자 이야기를 하며 노동이라는 말, 의무라는 말, 자연적인 권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처럼 그들을 돕자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갖는 감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못 줍니다. (…) 197X년, 한국은 죄인들로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죄인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윤호는 기타 소리를 들었다. 남자아이가 구석 쪽으로 가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하세요."
여자아이가 말했다.
"아주 작게 쳐."
다른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에게 말했다.
(…) 윤호는 단념하고 이야기를 끝내버렸다. 아이들은 다음 프로그램을 원하고 있었다.
_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中
작중 '10대 공원工員'과 그 인권 등을 당장의 문제인 양 끌어온다는 건 시대착오이겠다. 당연하니 덧붙일 필요 없겠고. 다만 다종 다양의 상품을 유통시키는 숱한 점주店主 가운데 서書,점주로 이 장면을 꼽아 곱씹는 게 필요하다 여기는 이유는 나름 분명하다.
내용 가운데 축약, 세 가지로 가늠할 수 있을 텐데 이는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이야기', '기타를 치'며 '다음 프로그램을 원하'는, 그러니까 일상에서 비롯하는 권태와 그 심심파적을 위한 비일상의 무대 조성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것. 이는 무익함을 넘어서 가증스러움과 같은 것이 불가분 끼어들게 마련이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분위기 따위나 소비하며 정작 실상과는 겉돌게 만드는 주범이지 않겠는가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런 식의 '감상은 (누구에게든)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명백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서書,점주의 태도이자 그 서점의 존립 근거로 삼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
이는 당연하게도 재미를 쫓는 일과는 거리가 먼 아니 정 반대 편으로 향하는 것이어서 이르자면 pop-up, 그러니까 튀어 오르진 않는다. 그렇다면 당초 '튀어 올라야만 하는가'를 자문해봄직도 하나 요사인 어쩐 일인지 우선하였으면 하는 질문은 차치하고 그저 튀어 오르는 형편에 서질 못해 안달복달하는 형국이 아닌가 싶을 정도. 이래서야 퇴사 반열에 올라 서점을 비롯한 작은 점포주로 주체 전환 시도를 하는 데에 어떤 의미가 있음인지;; 이는 마치 트리나 폴러스 作, 『꽃들에게 희망을』에서처럼 서로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며 위를 향하는 맹목의 애벌레들과 다를 바 없지 않나;; 벽지에 짓눌리면서도 '유계幽界에 낙역絡繹되는 비밀秘密한 통화구通話口'* 되길 불사하는 나비가 아니고서야 저편의 희망을 이편에 잉태시키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이 가능할까.
소위 '독립서점'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마을 곳곳 그리고 골목골목에 들어서는 작은 서점들을 반기는 편에 못지않게 따르는 우려의 배경엔 이러한 것들이 자리해 있지 않나 싶다. 이는 말하자면 '독립'이라는 표현과 어울리지 않고 심지어 상반되는 형국에 스스로 처處하여 들어가는 모습은 아닌지 의구심 자아내는 경우 또한 적지 않다는 반증일 것.
이 땅에 난 이유와 돌아갈 때와 장소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맞닥뜨려야 하는 죽음, 이 부조리를 숙명으로 또 이성과 욕망 간 충돌 빚는 격전지, 이 부조화의 전장戰場인 육신으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 그런 만큼 나댈 '광장'과 숨어들 '밀실'은 누구에게든 기울지 않는 형편으로 필수재 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무수한 이들이 모여드는 '광장'인 동시에 그 익명 가운데 속하여 은닉 가능한 '밀실'로서 mall을 비롯하여 단발/일시적 행사로써의 festival 등이 기획되는 것이겠고. 필요에 의한 것이니 들어서긴 할 것이다. 책을 중심으로 삼는다고 하면서 벌이는 갖가지 축제 또한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 다만 축제의 성격을 제아무리 다르게 규정 한다한들 그 모양새라는 게, 실상 자그마한 독립 서점이 기획하고 비슷한 형세의 소규모 독립 출판인들이 모여들어 꾸린다는 형세 치고는 딱히 자본 산업/사업에서 벌이는 형태와 변별되는 바가 없지 싶으니 문제라는 것. 그 판과 축의 star를 섭외하고 청하여 듣는다는 말과 벌이는 가무, 오가는 금전. 모여든 독자라고 해봐야 결국 갤러리&들러리로 만들어버리는 형태라면 이것이 지향할 바는 아니지 않나 싶고, 오히려 지양하려는 데서 '독립' 운운하지 않았나 되묻고 싶기도.
그 모양새를 고스란히 베껴 답습하는 일회성/단발성 형태를 해마다 잇는다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일러두면 '꼰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나로서는 유용함과 유의미를 모색하기 위한 과정이란 식의 변명은 하지 말라고 재차 일러두겠다. 수요/공급의 모델을 시뮬레이션하는 場의 단락적 연속을, 그 무슨 대단한 기획인 양 포장도 말고. 낭비가 젊음의 속성이고 미덕인 양 부추기는 속에서 덧없는 분위기 소비 수준을, 아 좋구나 하는 따위야말로 정신 승리의 극단이겠고. 이를 성찰하지 못한다는 건 내면의 빈곤을 드러냄 아닐지.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오." 나는 좀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안형은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한 얘기는 정말이었습니다."
"난 우리가 거짓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는 붉어진 눈두덩을 안경 속에서 두어 번 꿈벅거리고 나서 말했다. "난 우리 또래의 친구를 새로 알게 되면 꼭 꿈틀거림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얘기는 오 분도 안 돼서 끝나버립니다."
_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中
거짓/과장을 연기, 서로에게 비추일 모습을 상상하며 서로를 찬탄하는 따위의 무대 조성. 이것이 기성旣成이라면 이렇게 거꾸로 선 현실을 바로 세워 솔.까.말의 일상 공간을 재구축하는 것. 이 편에 서는 게 책을 읽는 독자이겠고 독자의 한 사람인 서書,점주의 기본 아닐까. 아무쪼록 '그래서 얘기를 합니다. 그렇지만 얘기는 오 분도 안 돼서 끝나버립니다' 하는 지경만 아니면 좋겠는데. 뭐 나처럼 작은 이야 아무래도 좋긴 하다. '호령하여도 에코우가 없는 무인지경이 딱하다'** 이른 양반도 한 세대를 건너서야 겨우 몇몇에 이해되는 판이니;;
읽어보니 오해의 소지 있어 덧붙임. 불필요하다는 게 아니라 一:多의 집중이라는 익숙한 방식을 너무 쉽게 별다른 고민 없다 싶을 정도로 원용하는 걸 프로그램 기획 등이라 하니 문제라는 것. 이로써 자기 서사를 스스로 (재)구축 하려 함을 조력할 수 있는가. 뚜렷하게 답을 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고려는 해보아야 하지 않겠냐는 것인데 해마다 잇따르는 페스티벌 식에는 딱히 그러한 고민 등이 묻어난 결과는 아닌 것 같다. 만일 그랬다면 주관 주최 이외 기획 도맡은 서점주나 불려온 스타를 제하면 죄다 갤러리&들러리 형편인 상황이 반복될 리 없지 않은지.
*이상, 詩제10호 「나비」中
**이상,「오감도 작자의 말」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