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몰지각&반지성 뒤치다꺼리, 과연 언제 어느 때까지?

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by 사각공간

A) 코로나19로 인한 펜데믹, 인류는 자문自問과 동시에 성찰 계기로 삼아야 하리란 것은 굳이 석학이니 전문가의 입을 빌지 않아도 떠올릴 듯. 인류는 다시금 이 시험을 통과, 사람다움을 지속하는 형편으로 생존 가능.. 하겠지. 그럴 거야, 아무렴. 믿는 바이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나로서는 사람다움을 지속하는 형편으로 생존 가능하자면 우선 넘어야 할 산,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게 있지 않냐는 편인데. 이르자면 몰지각과 반지성이 이루는 합작을 연대로 책임져야만 하는, 책임 지지 않을 수 없는 당장의 상황.


인간種으로서 개체는 과연 이를 언제까지 어느 때까지 견딜 수 있을지 견뎌낼지 의문이다. 코로나19 아니어도 버젓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며 심지어 생존(권)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나아가는 막무가내, 비일비재였건만. 소위 '갑甲질'로 불거진 내용들이야말로 이미 생활 현장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있었음을 폭로하는 반증이자 누구랄 것도 없이 그 가해/피해 당사자이거나 적어도 목격자 임을 드러낸 게 아닌가.


그러니 무지몽매한 일부가 저지른 바라고 단죄하며 거리를 두려 애를 써도 후련할 수 없던 것이고. 뒷맛 씁쓸 개운치 않은 건 '침묵의 카르텔' 한 축으로 참여/기능한 바와 다를 바 없음을, 그러니까 자기 '악의 평범성'을 저마다 느끼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각자도생 한다고 의義를 저버리는 상황을 사소하단 식으로 치부, 자위하려는 의식의 가증스러움 이 느낌까진 떨쳐낼 수 없기 때문 아닌지.


따라서 저만 앞세우고 우선하려는 無책임, 이런 뻔뻔함을 과연 언제까지 어느 때까지 견뎌낼지에 대한 의구심을 마땅한 공분共憤으로 곧추 세우려면 또 이로써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¹를 그것이 '죄'임을 먼저 깨닫도록 '죄-인지 감수성'을 돋우려면, 그러고서 사赦하자면!! 결국 자신부터 속속들이 파헤치는 자문自問과 비판/성찰로 '먼저 그 의義를 구하는'² 데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고 그래야만 하리란 것이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이'³ 없음을 인식하는 선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운명愛', 이 '아모르-파티'로 결속된 도반들 서로 간 독려하는 속에서 그릇된 바로 나아감을 꾸짖을 때에나 무지는 비로소 자각 통해 몽매를 벗게 되지 않을까.


안타까운 것은 이 카운터 또한 만만치 않다는 것. 개체 낱낱이 '저들로 인한 폐해를 견뎌야만 하나?! 저지른 바 없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하나? 외려 피해를 입는 내가 왜?? 어째서!?' 식으로, 의구심을 자기주장으로 뒤바꾸며 각자도생 부추기는 형편에 서려는 것이야말로 우려할 만한 상황인 것. 이를 전면에 세움으로 해서 초래되는 건 서로 간 배척 일삼는 파국 외에 무엇이 있을지..


도래할 미래의 얼굴을 가꾸고 모습을 바꾸는 힘은 당장에 처한 인류의 몫이자 인간種 저마다의 선택일 터. 당초 '운명愛'라 함은, 제가 처한 당장의 현실을 역전시킬 혹은 시켜줄 힘을 (deus ex machina와 같은) 외부에서 구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함이겠다. 따위의 염원을 깊이 하며 '더 나은' 상대/상황/조건 등을 찾는다든지 '좋은-' 내지 '진짜-'를 찾아 헤매는 판타지 속 여정을 그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실천으로 보이겠다는 것이고. '나무 심는 사람' 되어 가꾸는 이. 미래는 이들로 바뀌는 게 아닐지.




¹'주기도문' 곧 주(예수)가 가르친 기도문으로 알려진 내용 가운데 일부

출전은 개신교 성경 <마태복음> 6장 12절 중

²개신교 성경 <마태복음> 6장 33절 중

³개신교 성경 <요한복음> 8장 7절 중


붙임 : 각주에 '복음福音'이라 해두었지만 요즘 교계 보면 과연, 마태/요한이라는 기(록)자[記者]를 두어 전해진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는지부터 의문이다. 선데이 크리스천이거나 말거나 세간의 입신양명 서사에 神을 끼워넣는 기복祈音을 맥락으로 산업화한 바를 제대로 반성한 바 없으니 수성守城에만 급급. 낮은 데로 임하는 주를 멀리하고 따돌리는 데 앞장을 서는 형편에서 이미 이단異端인데 새삼 이단을 버르집는다고 하니 조롱과 멸시가 따르는 것. 멸시/천대 박해로 치환하여 견디겠다는 착각이야 자유이나 '영혼 실족'의 책임, 그 죄를 어찌 감당할는지.. 개신改新교계야말로 진정 개신改新으로 개신開新하여야 하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박소유, 누구는 상처를 꽃으로 읽지만 ─ 책방 아저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