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인간, 행간
당면한 코로나19 시국 이로써 당겨진 뉴노멀로써의 언택트. 사회적 거리두기와 같은 물리적 제약의 거듭과 지속, 불가피한 환경. 이로 인해 소통에의 욕구는 더할 수 있겠다 싶고, 갈급이 더할수록 부각될 수밖에 없으니 다름 아닌 말[言].
그러니까 ‘Un-tact’ 환경에서 조명될 수밖에 없는 ‘言-tact’랄까.
사실 Line의 On/OFF로 [un]common-place 생성/폐기는 물론 그 전환이 용이함을, 또 그로써 [非]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게 수월해졌음을 경험한지는 이미 오래. 다만 이제는 바깥에서 자유로이(물리적 제약으로부터) 설계/구축하였던 관계망의 온라인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것. 때문에 달라진 환경에 맞는 방식 도출 위한 시행착오 역시 불가피. 오히려 여러 갈래로 보다 과감하게 시도해야만 하리라는 것.
경험 축적 이를 소산으로 허브 기능을 담당하던 씨/부족 사회의 촌로村老나 하늘의 뜻을 지상의 피조물 간 매개하던 무인巫人 계급의 기득권 사수 움직임은 1) 제정일치祭政一致로 신'성'불가침神'性'不可侵 전면에, 그 배후에서 2) 혈연 중심 가문 內 승계/전승으로 지혜라는 인류 유산 독과점(뇌-피셜 버무려 거칠게나마 마름질해봄). 이로써 왕권 등을 구심으로 그로부터 방사형으로 성은聖恩이 미치는 원심 구도 성립. 그런데 이 구도 뒤집는 데 지대한 영향 끼친 바 다름 아닌 인류 유산 접속의 보편화 이룬 문자혁명/인쇄술 발달이지 않겠나. 문맹 자각에서 유산 접속으로 나아가(려)는 민중, 소위 '깨시민'의 등장. 배회 중인 좀비처럼 욕망에 부화뇌동, 모는 대로 쏠리기 일쑤이던 상태에서 비로소 자성自性의 실체를 가늠, 부유하던 허상에 실체를 봉합,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존自尊 도약을 병렬화하게 된 것. 말하자면 육신으로 낱낱인 개체가 제 내면을 속속들이 탐구하는 과정으로써의 자귀의自歸依야말로 '얼나'라는 한 법法의 지체 임을 깨닫는 과정. 결국 법귀의法歸依로 귀착하니 이문일여二門一如를 실감. 그러니까 義이든 道이든 法이든 이르는 바가 무엇이건 그 가리키는 바가 하나의 실상 임을 체감. 이는 거듭남/부활과도 같은 궤의 경험 아닐지.
한편 이에 대한 반동 또한 해를 더할수록 강세. 하여 '수성獸性'에 충실, 저마다 자기 욕망 충족에만 봉사?하길 힘쓰니 다시금 '얼나'로의 접속 경로가 묻힌 건 아닐까. 하면 이참에 그 접속 경로, 새로이 설계/구축하면 어떨까. 그러니까 유산遺産 DB 접속이 누구든 가능하고 용이한 환경에 무게를 두면 '일반의지' up-grade 계기 삼기엔 더할 나위 없는 기회 아닐지.
새로운 설계/구축이라면 기존/기성 관계망의 성찰에서 비롯하겠는데 구체적으로 이르자면, 부가가치 창출 간 기여도 평가 등을 새로이 설계, 자원 배분의 왜곡/심화로 '격차'를 공고히 하는 기존 관계를 재구축하는 것을 우선 과제 삼는 것과 같은 걸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이게 뜬구름 잡자는 건 아니지 않나?! 외려 실체 없는 뜬구름을, 화폐에 대한 믿음(가치 저장과 같은)과 토지/아파트 불패와 같은 기형의 신토불이 신앙으로 떠받치고 있는 게 아닌지. 이것이 당면한 갓물주 무소불위의 부동산 공화국 민낯이겠고.
1인 1표 민주民主의 실상이래봐야 1주株 1표와 같은 경제(권)력에 장악된 현실. 불로不勞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직 금권金權 행사 만을 주목하니 화폐 보유량 등에 top순위면 장땡!인 형편으로만 자꾸 면면이 뒤바뀌어 세상은 모습을 달리하게 되는 것. 투자 대비 수익률 따지며 죽는소리 일삼는데 임차인으로부터 매월 거두어들이는 임차료를, 액면 그대로 임대소득으로 신고하는 건물주/임대사업자부터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고;; 또 물주의 세 부담을 떠안게 마련인 자영업주는 업주대로, 소비자價에 얹어 최종 소비자에 전가(정액/정찰이 아닌 품목/서비스 제공 시 해당하겠지, 물론이다) 또한 비일비재. 그러니까 부가가치 창출 사슬의 이면엔 창출은커녕 그를 좀먹는 형태가 사슬로 자리해 있는 것. 어디선가 이로 인한 불균형을 메우긴 할 터인데 바로 갑근세는 물론 간접세 부담에 이런 전가분까지 고스란히 떠안는 유리지갑 근로소득자. 이에 얹어 해당 가구의 실질 가처분소득을 갉는 주거비까지 따지면.. 한 번 집 없는 설움은 죽는 그날까지 상대적/절대적 빈곤에 발목 잡히는 형국. 그러니까 1인이 여럿을 보유/소유하며 부리는 위세에 책임을 매어달지 않고는 제 어미/아비 이름으로 된 자산에 편승하여, 가난 때문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이들이 생산 과정에 (종)속하여 생산한 국부國富를, 불로不勞인 형편으로 무임승차하고도 죽는 그날까지 호의호식 일삼으며 누리는 기형/비대칭을 노멀한 사회상으로 여기게 될 것.
그러니까 화폐를 중심으로 서열화된 당장의 현실을 가늠, 새로이 설계하고 다시 구축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소통'은 실체 없어 공허로 겉돌 밖에 도리 없겠다. Un-tact 환경에서의 言-tact란, 좋은 말이랍시고 따위 주워섬기며 구독 늘여 따봉 추수하는 형편과는 천양지차. 오히려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가 낱낱의 협잡은 아닌지 자기 '악의 평범성'으로 서로를 얽은 침묵의 사슬을 감각하고 끊어버리기까지! 제 폐부를 들추어 환부를 도려내기까지 말[言]을 벼리는 데에서 비롯하겠지. 지닌 것(旣 得한 權)을 놓고 이 말[言]을 쥐는 것. 이때의 말[言]이란, 자기 상처에 함몰되지 않고 서로를 살피는 데로 나아가는 징표이자 이정里程의 푯대와 같은 것. 그러니 참 contact란, 그 말[言]이 가리키는 法/道/義로 이르는 바 그 안에서 절로 연결됨을 뜻하는지도 모를 일. 어차피 1인용/단자화單者化를 부추기던 세속의 형편. 도래한 Un-tact 환경이라고 당황할 이유 있겠나? 없지! '얼나' 접속 위한 다층/다차원 트랙 마련에나 힘쓸 일. 이러니 말[言]을 쫓는 모험이 신이 날 밖에!!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