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공간 - 시간, 공간, 안간, 행간
"서점에서 책을 사고 싶어도 이사할 때 짐이 될 것 같아 매번 마음을 접는다."
● 9년 전 '대학 가겠다'는 일념으로 충남 아산에서 상경한 박모 씨
『경향신문』(2016년 2월 1일) 인터뷰에서 "하도 거지 같은 집에만 살다 보니 넓고 쾌적한 집에 살고 싶지만 모아둔 돈이 없다"며 한 말이다. 박모 씨는 1년 전 취업한 후에도 여전히 월세로 살고 있는데, 처음 서울대입구역 근처 4평 옥탑방에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8만 원을 주면서 자리 잡은 이후 그간의 삶은 이랬다.
"여름엔 자다 깰 정도의 더위가, 겨울엔 방에서 입김이 나올 정도의 추위가 그를 괴롭혔다. 세탁기가 없는 데다 가스비를 아끼기 위해 2년 내내 겨울에도 찬물 손빨래를 했다. 낮에는 인터넷 강의를 듣고, 저녁에는 6시간씩 음식점 · 호프집 등에서 알바를 했다. 하지만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많아야 60만 원에 불과했다. 집에서 보태주는 돈까지 합한 100만 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했다. 그런데도 겨울에는 주거비가 40만 원까지 높아졌다. 2년 뒤 다른 방을 알아봤지만 지상에 그가 살 수 있는 방은 없었다. '그래도 옥탑방보다는 지하가 낫겠다' 싶어 보증금 두 배(200만 원)에 월세가 10만 원 비싼 20㎡(6평) 지하방으로 내려갔다. 낮에도 빛이 안 들어오는 건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벽과 옷에까지 핀 곰팡이로 인해 그는 중이염을 달고 살게 됐다."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상경한 젊은이는 대한민국 국민, 아니 인간이 아닌가? 역대 정권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약속이나 한 듯이 이들을 투명 인간 취급을 했다. 정부는 "한국에 태어났다면 내 집 마련 정도는 해야 사람 구실을 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졌으며, 이 방향으로 전개되는 정부 정책에 따라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자기 집을 소유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2016년 2월에 출간한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에서 이걸 지적한 이원재가 "한국에서 세습 자본주의의 출발은 '내 집 마련'이라는 구호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 건 지극히 타당하다.
정부가 피땀 흘려 일한 사람들일수록 '내 집 마련'이 유리해지는 정책을 쓰고 제도를 정착시켰다면 모르겠다.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가면서 청춘에겐 이미 불가능해진 꿈이 된 '내 집 마련'을 무슨 약장수의 주문처럼 팔아먹었으니, 이건 무능하다기보다는 사악하다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문제는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이원재는 "그렇게 살아가면서 한국인들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윤리 코드가 뿌리내리고 자라났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디서든 소유권을 가진 이들이 결정권을 갖는 것이 정당하며, 소유권은 신성하다는 코드였습니다. ……자영업자가 아무리 재화와 용역을 많이 팔아도 결국 돈을 버는 것은 땅주인이라는 상식도 이 윤리와 만납니다. '오너가 모든 것을 차지한다'는 암묵적 사회 운영 원리가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세습 받지 않으면 오너가 될 수 없으니, 세습 받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이런 세습 사회를 깰 수 있는 그 어떤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민생과는 전혀 무관한 정파적 이슈를 내세워 열성 지지자들을 동원하는 일에만 심혈을 기울이는 정권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처지에 대해 분노해야 마땅함에도 그런 '동원 정치'의 졸卒 노릇을 하는 자해自害 행위에만 미쳐 있는 일부 청춘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긴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다.
_강준만, 『부동산 약탈 국가』
최근 펴낸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내용 가운데 일부를 조중동(위시 etc 언론사) 집중 조명, '강준만 교수의 작심 비판'이라 액자 걸어두니 세간의 이목이 쏠린 듯. 이를 액면대로 받아 파르르~ 부르르~ 불로 꽃을 피우며 인터넷 창을 달구는 것까진 뭐 그럴 수도(마케팅이라면 노이즈만 한 집어등集魚燈도 없는 판이니 좀 달리 보면 반길 상황이기도. 왜냐하면 好이든 不好이든 간에 바이럴-연속[人口膾炙]이야말로 중한 것이니. 이런 정도야 서당개 아니어도 읊는 구시대 풍월. 한편 그래서 좀 지루한 세상이기도. 허명虛名으로 떡상하는,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 관전은 지겹;;) 있지 했다. 그런데 여기에 단순 -ism의 전향인지, 아니면 그저 조현調弦 실패로 인한 심신의 불협화음을 견디다 못해 안드로~어드메로 망명인지 이조차 헷갈리는 진 씨/서 씨 아재들 소환이라니;; 이네들과 강 교수를 같은 선에 두고 비比하는 건, 아무래도 좀 아니잖나 싶어서(해당 기사들 댓글엔 실제 비하卑下도 서슴지 않더라만~~;;).
상기 내용 발췌, 이곳에 옮겨심는 건 그걸 좀 바로잡고픈? 충동 때문. 그러니까 '비판'으로 구축되어 드러나기까지 강 교수의 '작심'은 어느 날 갑자기는 아니라는 게 요지. 내용 가운데 언급된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는 물론 『386 세대유감』에서도 짚은 바 기성화한 자본(문화자본 등 포함) 세습에 열과 성을 다하는 형편으로는 좌우 진영 구분이 무색인 '내로남불' 거울상인 것 또한 사실이니.
물론 '일부 청춘 지지자들'의 '열성'을, 제 '처지'의 몰지각에서 비롯한, '자해'와 다를 바 없는 '동원정치의 졸卒 노릇'이라 여기는 시선은 비판 불가피. 오히려 '청춘'의 '분노'가 기성 정치 마당[場]으로 유입과 동시에 거세되는 형편이라면 별개의 출구/장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적어도 '다른' 어른 곧 기성세대의 책임일 테니.
진영을 표상하는 소위 인물을 중심으로 짜이게 마련인 구도 자체는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 한계가 뚜렷한 마당에 귀차니즘과 먹고사니즘을 극복하지 못하는 형편에서 '대중지성'이니 하는 개념 등을 소비하는데 그치면 민주民主는 요원할밖에. 인격人格보다 가격價格을 삶의 중심으로 여기는 데에야 실체 없는 유령으로 겉돌 수밖에 없을 것. 입-진보가 따로 있나, 이런 게 입-진보지;;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만 할 게 아닌 것. 기성세대야말로 사즉생死即生 가운데 死를 각오하는 책임을 우선해야 후세로 닿는 生이 비로소 지속 가능한 형편이 되지 않나 싶다. 낱낱의 씨알이 썩어져야 비옥해지는 판에 불로장생을 꿈꾸니 그야말로 각 처에서 '악의 평범성' 곧 '평범한 악'의 축으로 '내로남불'에 일조하게 되는 것.
마 고마 하입시다들, 마이 묵었다 아입니까?!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