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sns 속 내가 퍽 사랑스럽다. 좋아하는 것들을 모아둔 취향의 기록, 내 삶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몇 날 며칠 슬픔에 잠겨 있을 때, 매일 같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sns 속 내가 가끔 부자연스러울 때가 있기도 하다. 인간의 여러 페르소나 중, sns 속의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자아를 ‘아웃소싱한 나’로 명명하고 나의 간극이 편해졌다. 진짜 나는 유동적이고 흐르는 중이다. 슬프고, 아프고, 행복하고, 엉망인 모습이고, 그게 당연하다. 대신 행복한 순간들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데이터로 아웃소싱해 박제한 것들이 ‘sns의 나’다. 박제당한 행복은 순간 기묘하기도 하고, 텅 빈 것 같기도 하지만, 진짜 나의 모습도 담고 있다. 시선의 차이이다. 삶의 행복한 순간들을 망각하지 않기, 하지만 그 순간들로 나를 탓하지 않기라는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는 중이다. 이처럼 삶의 모든 것은 양극 사이에 균형 잡는 것이지 않을까?
행복한 순간들만을 담은 sns 속에서,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나의 다양한 가면 속에서 어떤 모습을 담아야 할지도 고민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자기를 표현하는 일만큼 자유로운 일이 어디에 있을까.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sns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나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를 날카롭게 드러낼 수 있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내가 생각을 하기 나름이다. 내 생각의 결론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기록하자는 마음이다.
sns는 참 기묘하게 위험하면서도 나를 표현하기 정말 효과적인 수단이다. 정체불명의 타인들과, 느슨히 연결되어 있는 타인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자기 자신이 준비된 만큼만 자기를 노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껴진다. sns가 표현의 수단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글의 속성과도 비슷하다. 글의 속성은 참으로 이상하다. 준비되지 않았는데, 준비가 지났는데 나와버리면 돌연 식어버린다. 그 글이 담고 있는 온도가 차갑게 내려앉아버린다. 그러니 준비된 사진과 준비된 감정들만 내보내는 일, 그것 또한 나이며, 과거의 나라는 점을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니 sns가 진짜 나일까?라는 질문은 참 답하기 애매한 질문이다. 그게 진짜 나일까? 진짜 나는 뭐지? 이런 철학적 자살과 다름없는 질문의 도돌이표에 갇혀버리기 십상이다.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 나는 나의 어떤 모습을 sns에 전시할까? 나는 엉뚱한 순간들을 좋아한다. 한껏 꾸며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지만, sns 게시글에 ‘사실 제가 읽고 있는 건 빈 노트예요’라며 나의 sns 속 지적 허영심을 꼬집는다던가. 이런 것들. 너무 진솔하지 않고, 너무 가식적이지 않은 그 미묘한 차이가 사랑스럽다. 연출된 자신도 자기 자신이고, 그렇지 않은 모습도 자기라는 점은 관용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연습해야 할 것 같다. sns 속 자기의 모습 이해하기 같은 자아성찰 프로그램이 앞으로 유행할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앙드레 브라질리에’는 삶이라는 전투에서 이기기 위해 행복한 순간들을 그림으로 포착해 낸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가 평생 회화의 주제로 삼은 것들을 볼 수 있다. 말과 사랑, 서커스와 자신의 아내 등. sns도 그것과 참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삶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포착해 그림처럼 기록해 두는 것. 어떤 순간들을 포착해 내는지가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sns 속 나는, 내가 제일 닮고 싶고, 오래 지속하고 싶은 나의 모습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환히 웃으며 좋아하는 곳을 돌아다니는 ‘나’다. 실제의 내가 이런 것들로만 이루어졌냐고 물어보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종종 우울하고 많이 슬프며 미소보다는 지친 모습이 더 자주 나오는 사람이다. 하지만 sns 속 나 또한 나다. 내가 자주 기록하고 꺼내보지 않으면 나조차 까먹는 모습들인 것뿐이다. sns 속 내 자아는, 삶의 전투의 최전방에 꺼내놓고 싶은 모습이라고 이해하는 편이다. 항상 우리는 삶의 최전방에 설 수 없으므로. 이런 생각을 하면 이제 타인의 sns의 자아 또한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저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위해 치열하게 웃고, 놀고, 먹고 싸우고 있구나, 하면서.
그러니 sns는 참 위험하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정체불명의 타인들을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 있게 해 준다. 타인의 가장 준비된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게 해 준다. 기묘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도 꽤나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