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

감감감

by 네모

2023년은 제게 참 버거운 해였습니다. 그해에는 10년간 키웠던 강아지의 죽음과 함께,

목소리로 꺼내기 어려운 말이라 글로 적어봅니다.


제가 아는 동생이 죽었습니다.


수능 일주일 전, 보라(가명)가 대학 입시를 앞두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학에 다니고 있던 저는 굉장한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구요.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많이 친하지는 않았던 그 친구의 소식에 아직도 마음이 쿡쿡 찔립니다. 매년 수능 날이 되면 쏟아지는 수험생 자살 기사 중 하나에 내가 아는 얼굴이 있다고 생각하니 참 끔찍했습니다. 유서 하나 없이 죽음을 맞이한 그 심경이 어땠을까, 모르는 만큼 생각도 커지더군요. 그러다 보니 결국 혼자 있는 시간에 그 친구의 마지막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무섭진 않았을까, 하면서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는 것만큼 숨 막히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아니었던 내가, 감히 이런 글을 써도 괜찮은 걸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방관자라는 생각에 이끌려 뒤늦게 그 죽음을 기록해 보고 싶어졌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인사를 나눴었고, 저의 상실은 죄책감과 함께 왔으니까요. 같은 해에 입시를 한 것도 아니지만, 그 친구를 죽인 입시 제도에 성공해 입학했다는 점이 뭐랄까요, 공범이 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에 이번 브런치엔 제 팔자에 없는 (대학에 대한) 학술적인 글을 작성했습니다. 대학이 뭐길래, 그런 고통을 겪었을 보라를 조금 늦게나마 이해해 보려는 제 속죄이기도 합니다.


다들, 자기 몸보다 커다란 상실감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합니다. 상실감을 열심히 해체해 보아도 단순히 슬픔이나 죄책감, 불안으로 환원되지 않는 듯합니다. 애도와 상실에 대해 많은 논문과 책을 읽었지만, 죽음이라는 어려운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참 막막한 감정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무(無)를 목격한다는 점에서 참 허무하고 어려운 감정입니다. 다들 그렇게 메꿔지지 않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걸까요.


죽음이 흔한 세상입니다. 길을 가다 압사당하기도, 배를 타다 익사하기도, 집을 뺏겨 죽기도 합니다. 이렇게 모두가 죽고 죽는 세상에서 상실에 대한 글자만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의 죽음을 말하는 일이 다른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까 두렵긴 하지만, 혼자 슬퍼할 일 또한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미련하고 아둔한 사람이라, 브런치의 조그마한 지면에 보라의 이야기를 싣는 것밖에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안타까운 소음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오래 기억하는 일 밖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몫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타인의 죽음을 오래오래 기억해야지, 다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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