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소음이 필요해!

by 네모

최근에 풍경 하나를 선물로 샀다. ‘퍼즈 앤 스틸’이라는 유리공예 제품을 파는 가게에서 사장님의 친절한 설명과 함께. 누군가의 거실에 쭉 걸려있을 풍경을 사는 일이 즐거웠다. 걸려 있는 풍경을 하나씩 건드려보며 소리를 들어보고 빛을 비춰보고, 결국 한 작가님의 투명한 유리 풍경을 하나 샀다.


이번 생은 수천 생을 바쳐 받아낸 훈장입니다

아무렇게나 달아도 달각달각

떨리며 풍경(風磬) 소리를 냅니다

- 김수우, 훈장


풍경은 외부의 충격에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우리의 삶을 어딘가 걸어 놓으면 바람에 흔들려 달각달각 소리가 날 거란 상상. 그러면 인생의 모든 소음을 조금 더 의미 있는 것으로 채우고 싶다는 재미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유리가 아닌 말로 만든 풍경을 소개해 본다.

풍경 하나하나에 내 삶을 흔들면 들릴 생각과 이야기들을 모아보았다. 당신의 인생에도 걸려 달각달각 소리가 나면 좋겠다.


풍경 1 _ 글

나는 글 속에 있을 때 안정감을 느낀다. 내가 나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확신을 글을 읽거나 쓸 때 받는다.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다는 느낌. 나는 종종 생각이 널리 뛴다. 이게 저거와 연결되고 저게 이런 것과 연결이 되어버린다. 흰. 최근에 마신 바 노츠의 칵테일이다. 몽실한 막걸리 맛의 거품을 가득 묻혀 퇴근 후에 마시는 한 잔. 아주아주 몽실한 맛. 바텐더들의 입버릇, ‘다행입니다’가 좋아졌다.


풍경 2 _ 표정

한 사람을 고요하게 바라본다. 저 얼굴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저 표정은 어떤 풍경을 담고 있을까 상상해 보는 일을 좋아한다. 사람마다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다. 조용한 응시는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미세한 근육 움직임, 어떤 각도에서 어떤 말을 건네야 가장 빛나게 웃을까 생각하는 일이 즐겁다. 한 명의 사람은 하나의 이야기.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일이 흥미롭다. 누군가가 미워진다면, 그 사람을 영화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해 보란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었다. 누군가를 그저 미워하기에는 사람은 너무 많은 걸 담고 있다.


풍경 3 _ 다정

다정해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마찬가지로 다정해질 상대가 되어주는 일도 어렵다. 며칠간 옆집 강아지를 맡아주었던 적이 있다. 이유 모를 다정을 쏟아부을 상대가 있어서 행복했다. 그저 다정해지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는 존재가 있음이 좋았다. 나도 맘 편히 다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자고 종종 생각한다. 다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정해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풍경 4 _ 하루

하루가 인생의 단위이면 안 될 것 같다. 그러면 씻지도 못하는 슬픈 날들을 덜 조급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느 절망과 큰 환희를 다 느끼면서. 아주 큰 자아 성찰을 해야지. 아주 조그만 세상에 갇히지 말아야지. 세상이 웅웅거린다. 사람이 많은 공간이 좋다. 거기선 커다랗고 유별난 내 슬픔도 그저 바랜 감정이 될 수 있다. 비슷한 공간에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다.

하루 종일 일한 곳의 인센스 냄새가 훈연돼서 내 원래 냄새가 묻힐 때면 털레털레 걸어갈 집이 있다고 새로 만든 서랍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늘 하루도 살아가길 잘했다, 고민하게 된다. 아주 커다란 스프링이 튀겨지는 걸 막느라 온 힘을 다 쓰다 보면 나는 이게 재능 있나 봐, 싶어진다. 그렇게,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풍경 5_ 슬픔

가까이서 보면 너덜너덜 찢긴 콜라주가, 멀리서 보면 아름답다는 말에, 글쎄요, 저는 모든 그림이 슬펐는걸요, 하고 말해버렸다. 정동 같아 보이지만 속으로 누구보다 요동치고 있는 우리가 찢긴 콜라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상처는 하나의 무늬가 된다. 굴곡이 되어서 그렇게 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누군가는 그걸 보고 아름답다고 해주겠지.



바람이 불고, 달각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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