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쓰는 일이 무서웠다. 꾹 눌러 담은 울음이 터지듯 몸 안에 쌓아둔 글들이 폭발하듯 터질까 걱정이 됐다. 하나하나 뜯어보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자고 그렇게 다짐했음에도 나만이 이해하는 글을 내뱉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이 폭발하는 글들이 누군가의 난장스러운 마음에 가서 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를 믿는 일은 참 야속한 일이다. 그 사람의 매 순간 매 초를 함께 목도하는 일은 크나큰 기쁨이면서 슬픔이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실시간으로 지워지고, 그 사이에는 단어가 가라앉고,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버린다는 건. 차갑게 식은 소고기 국 위에 기름이 둥둥 떠있는 기분이다.
아픔에 대해 설명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너무나 깊은 이야기는 목에 걸려 생채기가 날까 봐 내뱉지도 못할 때가 많으니까. 글을 씀으로써 무엇을 원하는지 나도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저 말하지 않으면 이 말들이 목에 걸려 컥컥거리다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삶이 끝날 것 같아서 글로써 풀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삶의 꽤 많은 동기가 사람이었다. 그저 그 순간을 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같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열광했던 기억이 있다. 혼자라면은 도전하지 못했을 것들을 사람과 함께 살아가면서 도전하게 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댓 앳 원스>에서는 우리는 모두 혼자는 쓸모없는 존재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서로가 필요하고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게 인간이라면 기꺼이 누군가를 위해서 웃고 함께 내 일부를 떼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 삶의 대부분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부터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자랐던 기억이 있다. 자기가 본 사람 중 가장 가능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심한 사람이라며 너 잘난 거 하나 없으니 발전 하라며, 너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처음 봤다며 매일같이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작별했지만 가끔은 유령처럼 그 목소리가 떠오른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그 목소리에 반박을 하려고 지내왔다. 그 여파로 누군가를 위해 과할 정도로 착하고 헌신적으로 굴 때도 많이 있었다. 나를 싫어했던 그 사람의 목소리가 혹여나 정답일까 봐 말이다. 지금은 그 목소리에서 벗어나 내 삶을 벗어났냐고 물으면, 글쎄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함께하던 사람의 영향은 꽤 오래간다는 것과, 나는 상처에 꽤 예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해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종종 생각한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렇게 화낼 수 있으며, 그런 말들을 내뱉을 수 있는지 말이다.
그래도 이번 한 해는 사람 사이에서 헤엄치는 한 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