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으레 반짝인다.
비가 오는 날이면 광주가 생각이 난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 장소가 비가 오는 날이면 미치도록 적적하게 생각이 난다. 이번 여름엔 장마가 길다.
2024년 한 학기 동안 서강대 ‘의기제’를 준비하는 의기제 기획단을 했다.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 대략 3개월간 기획하고 진행한 의기제에 관한 글을 쓰기로는 한참 전에 마음을 먹었다. 어째서인지 7월이 돼서야 조금 바랜 기억들을 다시금 꺼내본다. 어떤 경험은 너무 커다랗고 혼란스러워 기억 속에서 조금 더 작아지고 부서져서 중요한 조각들만 남기를 기다리게 된다. 나에겐 의기제가 그런 기억이다. 너무나 아프고 밝은 기억이라 혼란스럽고, 그런 행사를 어떤 모양과 감정으로 지면에 실어야 할지 고민되어 혼돈스럽다. 그럼에도 알 수 없는 의무감에 한 학기 동안 의기제 기획단으로서 내가 느꼈던 경험을 함께 공유해보고자 한다.
의기제(義基祭)
이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그럼에도 44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나가고 있는 서강대학교의 행사다. 우연한 기회로 의기제 기획단에 참가하게 됐다. 사학과 답사반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얼떨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번 연도 기획단에 참여 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학교에 김의기라는 민주 열사가 있다는 정도.
의기제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김의기 열사는 서강대학교 무역 76학번으로 농민 운동에 헌신하던 학생이었다. 1980년 함평고구마피해보상투쟁 승리 기념식에 참가하고자 광주에 들렀다가 우연히 광주민중항쟁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이후 광주의 진실을 알려달라는 말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동포에게 알리는 글’을 작성하고 배포하려다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산화하셨다(투신인지 타살인지 밝혀진 바 없기에 산화로 명명). 당시 22살이었다.
의기제는 크게 본판과 광주 기행으로 나눌 수 있다. 의기제 본판은 김의기 열사를 추모하는 추모 문화제이다. 김의기 열사 산화 후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광주 기행은 5월 광주에 내려가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와 금남로 등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인 장소들을 살펴보는 일종의 역사기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서강동문회의 김의기 기념사업회 덕분에 학생들은 5천원 정도의 회비를 내고 광주에 다녀올 수 있다. 이 두 중대한 행사를 통틀어 의기제로 부르고 있다.
김의기 문화 주간
기획단 내부에서 새롭게 진행한 행사이다. 대부분 몰랐겠지만, 이번 학기 로욜라 옆 꽃들이 많이 있는 그곳에는 김의기 열사의 묘비와 함께 의기촌이 형성되어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님이자 김의기기념사업회 이사이신 류일환 교수님께서는 의기촌에서 청년 김의기의 삶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셨다. 22년의 인생을 살았던 김의기 열사의 청년다운, 인간적 면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강연이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친구들이 말해주기도 했다. 이후 강연이 끝나고 참가했던 사람끼리 의기촌에서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설치해 다큐멘터리 ‘관'을 상영을 했다. 광주민중항쟁 도중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관을 찾지 못한, 관 없이 죽어간 광주 사람들에 대한 다큐였다. 신기하게도 이번 의기제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의기제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맥주와 함께 학교에서 광주항쟁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상당히 묘한, 묘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강연을 듣고 민주 열사 김의기보다 청년 김의기에 대해 더 관심이 생겨 책 <의기>를 읽게 되었다. 책 중 김의기 열사의 일기를 발췌하였다.
78.11.12
소박한 자유주의자나 박애주의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박애의 기본 정신이 필수적이고 자유민주주의가 전제조건임은 틀림 없으나, 그것이 절대로 전부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사람이 살 만한 나라화' 하는 데에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 치유가 있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더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 되게 하는 일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 사람 만나기
(정화진, 2024, “의기”, p.132)
김의기의 이런 고민은 우연히 간 농활에서 마주친 농촌의 현실을 통해 농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 우연한 만남에도 삶은 바뀐다. 책 <의기>에서는 “농민이 무인도에 홀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 찾아보면 지원군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그와 대원의 몫이었다"라고 설명한다. 그저 나와 같은 22살 서강대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대의는 커다란,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김의기 열사에게서 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사람들. 사람 만나기"
본판
엄숙하게 김의기 열사 추모 미사와 추모 제사를 드리고, 유가족분들과 학생회장이 와서 연대 발언을 하고, 김의기 사업회 분들은 물론 서강대학교 동문이 많이 참석해 추모한다. 그리고 이어 풍연이 의기촌에서 청년광장까지 사물놀이를 하며 사람들을 이끌어나가고, 이제부터는 조금 더 행사 같은 의기제가 시작된다. 동문의 후원금으로 술이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서부노련이 와서 안주를 팔고, 맥박이 공연을 맡아준다. 이후 김의기 장학생 수여식이 진행된다. 엄숙한 추모와 흥겨운 축제가 함께 공존하는 정말 신기한 행사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앞으로도 의기제가 서강대 내에서 축제와 같은 행사가 되면 좋겠다. 지금은 의기제의 존재를 아는 학우분들이 워낙 적은 탓에 아쉬움이 크다. 엄숙하지만, 이번 44주기 동문회에서 정한 슬로건 ‘의기야 고맙다’는 말처럼 김의기 선배 덕분에 동문과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는 잘살고 있나 각자의 삶을 점검하고 만남을 이어가는 그런 기쁘고 슬픈 행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광주 기행
광주로 가는 날은 기분이 늘 붕 뜬다. 작년에도 이번 연도에도 비가 왔다. 늘 흐리고 몽롱한 길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참상을 목격하러 가는 일 때문일까. 왜일지 참 마음이 무거웠다. 역시나 일정 같은 세세한 부분은 마지막 광주기행 포스터로 얼버무리고 광주 기행의 조각조각에 관해 설명해 보고 싶다.
끝없이 펼쳐진 묘비에 마음이 착잡했던 5.18 민주묘지를 지나, 금남로, 헬기 사격의 증거를 담은 전일 빌딩 등을 방문하였다. 이런 역사적 유적지를 이동하는 이동 시간 사이사이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공진성 교수님이 흔들리는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막스 베버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단어를 던져주셨는데, 이는 정해진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능력이다. 그러니까 광주에 내려온 공수부대는 도구적 합리성에 의해 어떤 목표를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 목표를 왜 이루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만을 고려하는 합리성이라 볼 수 있다(우리가 학점을 왜 잘 받아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잘 받을 수 있을지부터 고민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이들은 진압이란 목표 하나만으로 시각적 효과가 큰 총검을 활용해 공포를 주입하는 진압 방식을 5월 동안 진행했다. 적을 무력화하기 위해 훈련받은 전문적인 군대가 신군부 세력에 의해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는 방식에 당시 광주시민들은 분노했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런 군대에 맞선 광주의 민중운동을 돌봄 정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인간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그리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 또 누구의 돌봄을 받으면서 죽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는 누군가는 돌보고 누군가는 돌봄을 받는 상호 돌봄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역할 차이가 좀 있을 수는 있어도 그런 의미에서 광주에서도 5.18은 서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대를 돌보는 활동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오늘날도 돌봄의 도시로 다시 거듭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공진성 교수님).
광주는 오월이 되면 학교에서 주먹밥을 나누어주고, 체험학습으로 5.18 민주묘지에 간다. 5.18을 겪고 광주시민들이 폭도로 매도당했을 때도, 금남로에 있는 ‘시계탑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문장으로, 전일빌딩으로 진실을 기억했다고 한다. 서강대의 의기제도 이를 많이 닮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지금 광주가 5.18을 기억하는 방식, 그러니까 일상에서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로욜라 옆 의기촌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는 게 조금은 속상하게 느껴진다.
번외 : 전남대 투어를 하며 류일환 교수님이 수줍게 자신은 대학생 때 김남주 시인의 ‘삶은 존재를 향한 끝없는 모험’이라는 문장을 가치관으로 삼았다고 말해주셨다.
후기
사실 의기제를 준비하면서 과분한 도움과 호의를 받았다. 의기제 기획단이라고 하면 발 벗고 나서주는 김의기 사업회분들과 김의기 장학생 선발, ‘의기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들’이라는 200명 남짓한 톡방과 광주기행에서 모든 식비를 지원해 주신 동문 분들까지. 사실 졸업 후에도 매년 광주기행에 참여하러 내려오시는 동문 분들을 보며 어떤 원동력으로 의기제를 계속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아서 광주기행 첫날 뒤풀이에서 선배 한 분께 물어봤는데,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돌봐줄 수 있을 때 손을 내미는 것이란 말을 해주셨다. 직장을 다니면서 김의기 기념 사업회에 참여하는 게 당신이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삶이라는 끝없는 모험에서 자신의 정답을 찾은 것 같은 그 반짝거림이 부러웠다. 그래서 타인의 정답을 조금 훔쳐 오려고 한다. 나도 내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 때 타인을 도와야겠다. 김의기 기념 사업회에서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것처럼, 나도 내가 사는 사회에 부채감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연대하는 것이 진정한 대의가 아닐까. 의기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일인 것이다.
올바름이 무엇인지,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이 터무니 없는 상상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의기제는 그것을 위한 것 아닐까. 의기 선배의 추모제와 기행을 통해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법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기 위한, 그런 만남의 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닐까.
혐오는 너무 쉽고, 누군가를 알아가고 사랑하는 일은 더 복잡하고 섬세한 일이다. 그러니까 의기제는,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다. 그리고 광주를 기억한다는 건, 죽음 앞에서, 거대한 홀로코스트 앞에서 탄압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계속해서 고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픔을 바라보는 데에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시선이 필요하다. 기쁨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복잡한 조작법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최소한 공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농촌의 현실에 대해 깡 무식한 상태로 봉사를 하러 간다는 것은 마을과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봐요. 그분들이 가슴에서 꺼내는 얘기를 이해할 수도 없고요.
(정화진, 2024, “의기”, p.39)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다는 것만큼 인간답지 못한 게 어디 있을까.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며 외면한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들에 대해 외면할 만큼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렴풋이 알고 있는 대상을 더 파고들지 않는 것은 알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책 <의기>에서는 함평고구마사건을 통해 김의기가 느낀 바를 이렇게 정리한다. “농민운동이 농민만의 힘으로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거대한 권력집단에 맞서기 위해서는 종교계, 시민단체, 지역의 대학생들까지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입증한 사건이었다.' 대학생이니까, 하며 어려운 사회문제들의 눈을 피해 다녔던 내겐 조금 아픈 문장이었다. 의기제는, 글자로만 접했던 역사를 개개인의 아픔이라는 감성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역사 속 비극을 나만의 관점으로, 내 삶의 문제로 다가오게 해준다.
의기제를 준비하면서 이 행사와 전통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김의기 정신이라는 것이 서강대라는 대학에서 기리는 정신이 되면 좋겠는데, 반짝임은 추상적이고 사회적 성공은 손에 잡힐 듯 해서. 올바름이란 것이 파편화되어 어느 방향으로 뛰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몇십 년 전에 죽은 어느 서강대 열사를 기리는 것은 어쩌면 참 쓸모없는 짓이다. 하지만 가치 없는 일은 아니다. 내가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도, 결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더라도, 나의 한 학기는 가치 없는 일이 아니다. 책을 쓰고 그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고 그 책이 가치 없는 책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파장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도 가치 없는 일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까 나와 여러분들이 쓸모없고 가치 있는 일을 지속할 용기를 얻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인생은 어쩌면 쓸모없고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감사를 표한다. 활동하는 것보다 뒤에서 글을 쓰는 게 더 편한, 부족한 기획단원이었던 나를 잘 끌고 가준 단장과 기획단원들, 본판에 끌려와 대낮에 영문도 모르고 테이블을 옮겼던 교지 친구들, 매년 타임라인을 채워주는 풍연과 맥박, 작년에 이어 우리보다 능숙하게 본판의 자리를 메꿔준 서부노련(노점상인연합회)과 심야간담회에 참석해 준 이대, 연대 학우들, 학생들이 열심히 한다고 챙겨주신 김의기 기념 사업회 분들과 광주 기행 때 만나 뵌 여러 동문들. 열거하자니 끝도 없다.
김의기 선배 덕분에 만들어진 만남이 소중하다.
의기제(義基祭)
이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그럼에도 44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져 나가고 있는 서강대학교의 행사다. 우연한 기회로 의기제 기획단에 참가하게 됐다. 사학과 답사반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얼떨결에 가벼운 마음으로 이번 연도 기획단에 참여 하게 되었다. 당시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우리 학교에 김의기라는 민주 열사가 있다는 정도.
의기제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김의기 열사는 서강대학교 무역 76학번으로 농민 운동에 헌신하던 학생이었다. 1980년 함평고구마피해보상투쟁 승리 기념식에 참가하고자 광주에 들렀다가 우연히 광주민중항쟁을 목격하였다고 한다. 이후 광주의 진실을 알려달라는 말을 듣고 서울로 올라와 ‘동포에게 알리는 글’을 작성하고 배포하려다 종로 5가 기독교회관에서 산화하셨다(투신인지 타살인지 밝혀진 바 없기에 산화로 명명). 당시 22살이었다.
의기제는 크게 본판과 광주 기행으로 나눌 수 있다. 의기제 본판은 김의기 열사를 추모하는 추모 문화제이다. 김의기 열사 산화 후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광주 기행은 5월 광주에 내려가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와 금남로 등 광주민중항쟁의 역사적인 장소들을 살펴보는 일종의 역사기행이라고 볼 수 있다. 서강동문회의 김의기 기념사업회 덕분에 학생들은 5천원 정도의 회비를 내고 광주에 다녀올 수 있다. 이 두 중대한 행사를 통틀어 의기제로 부르고 있다.
의기제 기획단
원래 의기제는 학생회 차원에서 이어졌다. 지금은 자발적으로 기획단을 모집해 김의기 사업회의 지원을 받아 의기제를 꾸려가고 있다. 이번 연도 기획단은 2월에 에타와 서담에서 모집했다. 전통적인 행사임에도 공식적인 부서나 기관이 부재한 탓에 전년도 기획단이 의기제를 마치고 다시 모집해야 한다. 이런 방식 때문에 포스터나 플랜카드 같이 여력이 많이 드는 홍보를 하지 못하고 에타와 서담에서 모집을 하는 것이다. 이번 연도에는 다행히 작년 4명보다 많은 9명이 기획단원에 지원했다. 반절은 사학과 답사반 소속 학생들과 나머지는 의기제에 관심을 두고 참여한 학생들로 이루어졌다. 교지 85호 ‘로욜라 앞뜰은 의기촌이라 불렸다' 에 실린 것처럼 작년 43주기 때 체제와 실무 인수인계가 잘 이루어져 이번 연도 기획단은 실무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은 학기 중 생각보다 촉박한 시간에 의기제 본판도, 광주 기행도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해 많은 학생들에게 의기제가 친숙치 못한 행사로 자리잡은 것이다.
일단 실무적인 것들은 차차 설명한다 치고, 사실 김의기의 삶을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추모하는 일이 무슨 의미를 지닐까. 기획단원 내에서 많이 고민했다. 이런저런 의견 나눔 끝에 기획단 내에서 의기제를 현재성을 지닌 행사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고안해 낸 방법이 바로!
김의기 문화 주간
먼저 ‘타인을 위해 행동한 경험'이란 소소한 주제로 수필 공모전을 열어 의기제의 시작을 알렸다. 시작을 알렸다기엔 조금 미약한 행사였지만, 좋은 글들을 공모해 주신 덕분에 의미 있었다. 제44주기 의기제에서는 김의기 문화 주간이란 새로운 시도를 했었는데, 의기제 본판이 있기 일주일 전부터 김의기 열사처럼 현재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단위들을 섭외해 강연을 진행했다. 처음 잡아놓은 의기제 본판 행사가 학생회 대동제와 겹치는 탓에 본판 날짜를 옮겨 문화 주간이 실질적으로 문화 사흘이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긴 했지만, 기후정의 동맹 은혜 활동가, 청년 유니온 김설 활동가, 그리고 사학과 류일환 교수님을 섭외해 총 3일간 강연을 진행했다. 의기제라는 것이 틀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활용해 새로운 시도를 자유롭게 해볼 수 있었다. 내가 부르고 싶었던, 더 알고 싶었던 단위들을 의기제 기획단이란 이름으로 연락해 볼 수 있었던 귀한 경험이었다. 결과적으로 강연에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 사랑스러운 교지 친구들 몇 명과 기획단으로 그쳤지만, 내년엔 조금 더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리라 다짐을 할 수 있게 된 문화 주간 폭망 사건이었다.
대부분 몰랐겠지만, 이번 학기 로욜라 옆 꽃들이 많이 있는 그곳에는 김의기 열사의 묘비와 함께 의기촌이 형성되어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님이자 김의기기념사업회 이사이신 류일환 교수님께서는 의기촌에서 청년 김의기의 삶에 대한 강연을 진행하셨다. 22년의 인생을 살았던 김의기 열사의 청년다운, 인간적 면모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강연이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친구들이 말해주기도 했다. 이후 강연이 끝나고 참가했던 사람끼리 의기촌에서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설치해 다큐멘터리 ‘관'을 상영을 했다. 광주민중항쟁 도중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 관을 찾지 못한, 관 없이 죽어간 광주 사람들에 대한 다큐였다. 신기하게도 이번 의기제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시간이었다. 의기제가 아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맥주와 함께 학교에서 광주항쟁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상당히 묘한, 묘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강연을 듣고 민주 열사 김의기보다 청년 김의기에 대해 더 관심이 생겨 책 <의기>를 읽게 되었다. 책 중 김의기 열사의 일기를 발췌하였다.
78.11.12
소박한 자유주의자나 박애주의자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박애의 기본 정신이 필수적이고 자유민주주의가 전제조건임은 틀림 없으나, 그것이 절대로 전부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사람이 살 만한 나라화' 하는 데에는 구조적 모순에 대한 근본적 치유가 있지 아니하면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다 더 사람이 살 만한 세상이 되게 하는 일에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 사람 만나기
(정화진, 2024, “의기”, p.132)
김의기의 이런 고민은 우연히 간 농활에서 마주친 농촌의 현실을 통해 농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그런 우연한 만남에도 삶은 바뀐다. 책 <의기>에서는 “농민이 무인도에 홀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 찾아보면 지원군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그와 대원의 몫이었다"라고 설명한다. 그저 나와 같은 22살 서강대 학생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언제나 나에게 대의는 커다란,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김의기 열사에게서 답을 들은 기분이었다.
“사람들. 사람 만나기"
본판
엄숙하게 김의기 열사 추모 미사와 추모 제사를 드리고, 유가족분들과 학생회장이 와서 연대 발언을 하고, 김의기 사업회 분들은 물론 서강대학교 동문이 많이 참석해 추모한다. 그리고 이어 풍연이 의기촌에서 청년광장까지 사물놀이를 하며 사람들을 이끌어나가고, 이제부터는 조금 더 행사 같은 의기제가 시작된다. 동문의 후원금으로 술이 학생들에게 무료로 제공되고, 서부노련이 와서 안주를 팔고, 맥박이 공연을 맡아준다. 이후 김의기 장학생 수여식이 진행된다. 엄숙한 추모와 흥겨운 축제가 함께 공존하는 정말 신기한 행사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앞으로도 의기제가 서강대 내에서 축제와 같은 행사가 되면 좋겠다. 지금은 의기제의 존재를 아는 학우분들이 워낙 적은 탓에 아쉬움이 크다. 엄숙하지만, 이번 44주기 동문회에서 정한 슬로건 ‘의기야 고맙다’는 말처럼 김의기 선배 덕분에 동문과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여, 나는 잘살고 있나 각자의 삶을 점검하고 만남을 이어가는 그런 기쁘고 슬픈 행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광주 기행
광주로 가는 날은 기분이 늘 붕 뜬다. 작년에도 이번 연도에도 비가 왔다. 늘 흐리고 몽롱한 길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참상을 목격하러 가는 일 때문일까. 왜일지 참 마음이 무거웠다. 역시나 일정 같은 세세한 부분은 마지막 광주기행 포스터로 얼버무리고 광주 기행의 조각조각에 관해 설명해 보고 싶다.
끝없이 펼쳐진 묘비에 마음이 착잡했던 5.18 민주묘지를 지나, 금남로, 헬기 사격의 증거를 담은 전일 빌딩 등을 방문하였다. 이런 역사적 유적지를 이동하는 이동 시간 사이사이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공진성 교수님이 흔들리는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다. 막스 베버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단어를 던져주셨는데, 이는 정해진 목적을 가장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능력이다. 그러니까 광주에 내려온 공수부대는 도구적 합리성에 의해 어떤 목표를 합리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그 목표를 왜 이루어야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만을 고려하는 합리성이라 볼 수 있다(우리가 학점을 왜 잘 받아야 하는지보다 어떻게 잘 받을 수 있을지부터 고민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이들은 진압이란 목표 하나만으로 시각적 효과가 큰 총검을 활용해 공포를 주입하는 진압 방식을 5월 동안 진행했다. 적을 무력화하기 위해 훈련받은 전문적인 군대가 신군부 세력에 의해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사용되는 방식에 당시 광주시민들은 분노했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점은 이런 군대에 맞선 광주의 민중운동을 돌봄 정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인간은 누군가의 돌봄을 받고 그리고 누군가를 돌보는 일을 하다가 나중에 또 누구의 돌봄을 받으면서 죽어요.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는 누군가는 돌보고 누군가는 돌봄을 받는 상호 돌봄의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역할 차이가 좀 있을 수는 있어도 그런 의미에서 광주에서도 5.18은 서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대를 돌보는 활동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오늘날도 돌봄의 도시로 다시 거듭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공진성 교수님).
광주는 오월이 되면 학교에서 주먹밥을 나누어주고, 체험학습으로 5.18 민주묘지에 간다. 5.18을 겪고 광주시민들이 폭도로 매도당했을 때도, 금남로에 있는 ‘시계탑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문장으로, 전일빌딩으로 진실을 기억했다고 한다. 서강대의 의기제도 이를 많이 닮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지금 광주가 5.18을 기억하는 방식, 그러니까 일상에서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순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로욜라 옆 의기촌의 존재를 아무도 모른다는 게 조금은 속상하게 느껴진다.
번외 : 전남대 투어를 하며 류일환 교수님이 수줍게 자신은 대학생 때 김남주 시인의 ‘삶은 존재를 향한 끝없는 모험’이라는 문장을 가치관으로 삼았다고 말해주셨다.
후기
사실 의기제를 준비하면서 과분한 도움과 호의를 받았다. 의기제 기획단이라고 하면 발 벗고 나서주는 김의기 사업회분들과 김의기 장학생 선발, ‘의기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들’이라는 200명 남짓한 톡방과 광주기행에서 모든 식비를 지원해 주신 동문 분들까지. 사실 졸업 후에도 매년 광주기행에 참여하러 내려오시는 동문 분들을 보며 어떤 원동력으로 의기제를 계속하는 걸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아무래도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를 것 같아서 광주기행 첫날 뒤풀이에서 선배 한 분께 물어봤는데,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기가 돌봐줄 수 있을 때 손을 내미는 것이란 말을 해주셨다. 직장을 다니면서 김의기 기념 사업회에 참여하는 게 당신이 세상에 참여하는 방식이란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부러웠다. 삶이라는 끝없는 모험에서 자신의 정답을 찾은 것 같은 그 반짝거림이 부러웠다. 그래서 타인의 정답을 조금 훔쳐 오려고 한다. 나도 내가 돌봄을 제공할 수 있을 때 타인을 도와야겠다. 김의기 기념 사업회에서 학생들에게 투자하는 것처럼, 나도 내가 사는 사회에 부채감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연대하는 것이 진정한 대의가 아닐까. 의기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일인 것이다.
올바름이 무엇인지, 함께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이 터무니 없는 상상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사실 의기제는 그것을 위한 것 아닐까. 의기 선배의 추모제와 기행을 통해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고,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법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기 위한, 그런 만남의 자리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닐까.
혐오는 너무 쉽고, 누군가를 알아가고 사랑하는 일은 더 복잡하고 섬세한 일이다. 그러니까 의기제는, 사람이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다. 그리고 광주를 기억한다는 건, 죽음 앞에서, 거대한 홀로코스트 앞에서 탄압당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계속해서 고민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픔을 바라보는 데에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시선이 필요하다. 기쁨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복잡한 조작법이 필요하다.
할 수 있는 게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최소한 공부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농촌의 현실에 대해 깡 무식한 상태로 봉사를 하러 간다는 것은 마을과 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봐요. 그분들이 가슴에서 꺼내는 얘기를 이해할 수도 없고요.
(정화진, 2024, “의기”, p.39)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다는 것만큼 인간답지 못한 게 어디 있을까.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라며 외면한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들에 대해 외면할 만큼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렴풋이 알고 있는 대상을 더 파고들지 않는 것은 알고 있는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다. 책 <의기>에서는 함평고구마사건을 통해 김의기가 느낀 바를 이렇게 정리한다. “농민운동이 농민만의 힘으로는 자신들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거대한 권력집단에 맞서기 위해서는 종교계, 시민단체, 지역의 대학생들까지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입증한 사건이었다.' 대학생이니까, 하며 어려운 사회문제들의 눈을 피해 다녔던 내겐 조금 아픈 문장이었다. 의기제는, 글자로만 접했던 역사를 개개인의 아픔이라는 감성적인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역사 속 비극을 나만의 관점으로, 내 삶의 문제로 다가오게 해준다.
사실은 선전선동 글을 쓸 작성이었다. 의기제 너무 좋아요. 여러분~. 정말 뜻깊은 활동이고, 민주 시민의 교양이에요! 와 같은 글을 쓰려고 기획하긴 했다. 그래서 나의 이런 무거운 글을 통해 2025 예비 의기제 기획단 학우들을 겁나게 한 건 아닐지 걱정이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홍보한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 한 학기간 의기제를 준비하며 했던 나의 고민을 서강대 학우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이 긴 글을 작성했다. 오해하지 말자. 이 글은 의기제 홍보글이 맞다. 내년에도 열릴 예정이고, 에타에서 의기제 기획단 모집을 할 예정이고, 술이 공짜고, 광주에도 방문하고, 기획단은 다다익선이니 한 번쯤은 지원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의기제를 준비하면서 이 행사와 전통이 정말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이어져 내려왔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김의기 정신이라는 것이 서강대라는 대학에서 기리는 정신이 되면 좋겠는데, 반짝임은 추상적이고 사회적 성공은 손에 잡힐 듯 해서. 올바름이란 것이 파편화되어 어느 방향으로 뛰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몇십 년 전에 죽은 어느 서강대 열사를 기리는 것은 어쩌면 참 쓸모없는 짓이다. 하지만 가치 없는 일은 아니다. 내가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도, 결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더라도, 나의 한 학기는 가치 없는 일이 아니다. 책을 쓰고 그 책이 한 권도 팔리지 않았다고 그 책이 가치 없는 책이 아닌 것처럼, 우리의 파장이 아무런 변화를 만들어내지 않았더라도 가치 없는 일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그러니까 나와 여러분들이 쓸모없고 가치 있는 일을 지속할 용기를 얻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인생은 어쩌면 쓸모없고 가치 있는 일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엄청난 감사를 표한다. 활동하는 것보다 뒤에서 글을 쓰는 게 더 편한, 부족한 기획단원이었던 나를 잘 끌고 가준 단장과 기획단원들, 본판에 끌려와 대낮에 영문도 모르고 테이블을 옮겼던 교지 친구들, 매년 타임라인을 채워주는 풍연과 맥박, 작년에 이어 우리보다 능숙하게 본판의 자리를 메꿔준 서부노련(노점상인연합회)과 심야간담회에 참석해 준 이대, 연대 학우들, 학생들이 열심히 한다고 챙겨주신 김의기 기념 사업회 분들과 광주 기행 때 만나 뵌 여러 동문들. 열거하자니 끝도 없다.
김의기 선배 덕분에 만들어진 만남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