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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모 Mar 26. 2024

이번 답사가 나에게 남긴 것은

- 삼삼아씨들과의 화면 밖 첫 만남

  오늘은 드디어 삼삼아씨 벽돌북클럽 답사 가는 날. 집결 시간과 장소는 10시 반, 충남 서산 해미읍성이다. 주말이라 도로 상황이 막힐 것을 고려하여 더 일찍 출발하였음에도 겨우 30분 일찍 출발했고, 도착하니 10시 53분이었다. 이미 일찍부터 도착한 다른 아씨들은 인생 사진을 남기며 아직 도착 전인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햇살처럼 화사한 웃음을 만면에 띠고 있었고, 바람은 솜사탕처럼 달콤한 향을 내며 이마를 훑고 지났다. 유홍준 선생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을 따라 해미읍성을 시작으로 영보정에 갔다가 남당항에 가서 일몰을 보고 저녁 식사 후 숙소로 이동하는 여정이었다.      


2차는 기본이지 

  예산의 수덕사에서 맞배지붕의 편안하고 인자한 느낌의 대웅전 건물을 비롯하여 절 안의 여러 시설들을 눈에 담았다. 충남 보령의 충청수영성 내 '영보정'은 주변 오천항의 경관과 더불어 옛 선비들이 극찬할 만했다. 수령을 알 수 없는 나무들도 바다를 향해 가지를 뻗어 금방이라도 뿌리째 뽑힐 듯 위태롭게 매달린 채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었다. 예전에는 없었을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라는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먹기도 아까운 들기름을 영보정의 유지ㆍ관리를 위해 칠해두었다며 내부로 들어갈 수 없게 비닐로 다 막아두었다. 서산에서 이 영보정에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오천항'의 풍광을 제대로 느끼려고 제법 먼 길을 달려왔는데 아쉽기 그지없었다. 아쉬움을 달래볼 겸 아씨들은 저마다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열심히 주변 풍광을 찍어 댔다. ‘삼삼아씨’라는 커뮤니티 이름처럼 삼삼오오 모여 연출 사진도 열심히 찍었다. 이국적 분위기의 낚싯배들은 시간을 낚는 듯 보였다.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며 항구 쪽으로 바삐 향하는 배들의 경쾌한 숨소리는 바다의 거친 파도의 울음을 달래는 것 같았다. 답사의 대미-비는 오지 않고 맑은 하늘이 유지되었으면 좋았을 걸-는 서해 일몰을 보기 위해 '남당항'으로 이동한 것. 남당항 사변(沙邊)에 전망대 역할을 하는 근처 카페에서 차를 주문하며 일몰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는데 날은 흐려지고 바깥에는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고 붉게 물든 노을을 감상할 순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 삼삼아씨 일행은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에 짐을 풀었다. 일부는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이동했다. 주메뉴인 곱창과 어울리는 소맥을 먹기 위해 최대한 한 차에 몸을 실었다. 숙소는 '봉수산 자연휴양림'이었고, 식당은 'ㅎㄴㄴ숯불곱창'이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인지 저녁 식사 시간이라기엔 한참 지난 시간대였는데도 자리가 만원이었다. 난 사실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 그 분위기만을 즐겼는데, 모두 맛있다며 술잔을 부딪는 소리가 점점 더 경쾌해졌다. 곱창의 냄새는 나의 코점막을 자극하며 들어와 온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부모와 함께 온 뒷 테이블의 아기는 백일을 갓 넘겼나 싶을 정도로 영아였다. 문득 그 시절 아이와 함께 외출은 꿈도 못 꾸던 내가 떠올라 물이 가득 담겼던 종이컵을 팔꿈치로 쓰러뜨리고 말았다. 술도 몇 잔 안 했는데 또 술자리에서조차 딴생각하는 나는 또 괜한 식당 직원 고생까지 시키고 말았다. 비좁은 곳이라 따로 비켜 서 있을 수조차 없어 테이블 밑으로 손을 뻗어 행주로 물기를 훔치는 그 젊은 남자 직원에게 너무 미안했다. 죄송하다고 따뜻하게 데운 언어를 건네긴 했지만, 그 직원의 심정이야 그냥 짜증 났을 것이다. 나도 그 시절 그렇게 알바생이었다면 마감 시간까지 테이블을 지키고 있는 고성의 중년 부인들의 희로애락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을 테니.     


남편도 모르는 이들과 첫 외박

 기분 좋을 만큼만 소맥을 몇 잔 마시고 숙소로 이동했다. 예당호가 바라다보이는 '봉수산 자연휴양림'으로. 삼삼아씨들 모두 편한 옷차림으로 갈아입은 후 길다란 탁자 위에 소맥을 위한 술과 나도 좋아하는 먹태 안주가 에어프라이어에 구워지고, 특제 고추마요간장소스가 함께 내어졌다. 게다가 가장 좋은 건 삼삼아씨들과 도란도란 모여 앉아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급적 모든 아씨분들과 한마디씩은 건네고 싶어서 쑥스럽지만 먼저 인사도 건넸고, 긴말 필요 없이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라는 문구와 날짜, 네 본명과 필명을 적어 두 번째 공저 시집 <겨울의 편린>을 참석하신 모든 분께 나누어 드렸다. 또 여러 아씨가 준비한 선물도 감사히 받았다. 달큰하게 취한 아씨들의 붉은 뺨과 먹태의 구수한 향은 훈훈한 이야기로 한껏 달아오른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도서관 글쓰기 강의에서 먼저 만난 오정환 작가님과 통쌤을 만나고 많이 뻔뻔해졌다. 예전 같으면 누가 알까 절대 입소문도 내지 않고 SNS에 밝히지도 않을 텐데, 셀프 브랜딩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열심히 실천 중이다. 자신감도 키우는 중이다. 우리 아들이 나 없는 동안 아빠와 나눈 대화에서 "난 자존감은 높은데 자신감이 부족해."라고 했다는데, 날 닮아 그런가?

  삼삼아씨들과의 하룻밤이 어느덧 자정을 지나 각자의 집으로 떠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며 새벽을 재촉하는데 난 제일 마지막 차례여서 두서없고 어설픈 소개를 마쳤다. 모든 소개자마다 통쌤은 어김없이 댓글 대신 구두로 피드백을 해주셨다. 각자의 목표를 위한 구체적 대안이나 해결책을 제시했다. 진심과는 달리 정확한 문제의 핵심을 짚어주는 강한 어조는 때론 위축되게 했고, 그럴 때마다 그곳의 공기는 서늘해졌다. 몇 시간 후 발표를 맡은 효림님은 잠깐이라도 눈 붙이려 이부자리가 깔린 방으로 이동하여 잠을 청했고, 다재다능한 아씨들은 타로 카드 풀이와 이침 시술을 재능 기부했다. 덕분에 나는 “생각이 많고, 현실이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해결은 된다”는 모범답안을 얻었고, 이침 진단으로 나의 몸 구석구석 질병이 산재하고 있음을 재확인했다. 그중 외척 중에는 없는 질환인 '당뇨'가 있는 것 같다는 말씀을 들었을 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럼에도 이침 시술 덕분인지 평소보다 푹 잔 것 같다. 다만 3시 50분부터 울려대는 휴대폰 알람으로 잠깐씩 눈을 뜨긴 했지만. 새벽 기상 모임도 뻔뻔하게 제친 나는 6시 50분에야 겨우 눈 비비고 일어나 삼삼아씨들의 도란도란 아침 수다가 펼쳐지는 1층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부지런한 아씨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모닝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가뜩이나 이번 삼삼아씨들 중 체구는 세 손에 꼽을 만큼 뚱뚱했는데 눈치까지 없어서 늦잠을 자고도 모닝커피에 라면까지 끓여 달래서 먹었다. 그것도 막상 한솥 끓였는데 몇 젓가락 못 먹고 남기고 말았다. 뒤처리도 안 하고 카 풀한다는 핑계로 그냥 이침 연구가인 공자왈님 무리와 함께 몸만 빠져나왔다. 


  오십에 가까워지는 나이에 낯선 이들과의 1박2일 여행에 가슴이 뛰었다. 그럼에도 출발부터 약속 시간에 늦어 일행을 기다리게 했고, 옷차림도 대충 입고 간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쓰였다. 화창한 봄날 살이 찌니 자꾸 온 몸을 감싸기 바빴다. 다들 날씬한데 육중한 내 몸집은 아씨들의 눈을 지치게 했을 것이다. 게다가 눈치도 없어 모임의 늦둥이 참여자임에도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상차림 준비하느라 바쁜 아씨들을 도울 생각조차 못했다. 이런 생각으로 오는 내내 이번 답사에서 받기만 하고 민폐는 민폐대로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번엔 날씬한 몸매로 아씨들 눈길을 사로잡진 못하더라도 눈치는 좀 챙겨야지. 


*본 글은 지난 3월 16~17일, 1박 2일 일정으로 삼삼아씨 내 '벽돌북클럽 모임'에서 함께 읽고 나눈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1권>에 나온 코스 중 충청권역을 답사한 후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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