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분명한 목표가 불러온 좌절감
매일 단락 글쓰기를 거른 게 벌써 사흘째다. 심지어 5일간의 단락 글쓰기를 모아 글쓰기 리더님께 보내는 1:1파일도 정리해서 보내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난 주중 통증이 있었던 왼쪽 눈이 주말 동안 푹 쉬어서 그런지 다 나았다. 날은 여전히 덥고, 더위와 새벽 기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글쓰기 줌을 여는 리더님의 휴가를 핑계 삼아 나도 덩달아 휴가 모드였다. 독서와 글쓰기를 아예 내려놓은 지난 금, 토, 일 3일 동안 과연 과연 나는 잘 쉬었을까. 남편은 내가 글쓰기를 하지 않으니 오히려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벌써 지친 건지, 하반기엔 수익화에 적극 나서기로 했으면서도 그에 필요한 과정을 따라가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수익화는커녕 페**북에서 광고 여부를 묻는 설문을 따라 동의를 누르다가 그만 유료 결제까지 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외국인들의 불편한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광고료도 주 단위로 카드 결제가 되는 듯했다. 역시 나에게는 맞지 않는 버거운 목표를 세운 걸까. 자꾸 그만두고 싶을 만큼 자괴감이 들었다.
첫 마음의 열의, 끈기 부족으로 금새 식다
어느 정치인이 처량한 자신의 처지를 국민 앞에서 밝히며 내뱉은 단어, 자. 괴. 감. 그녀가 뱉은 말과 내가 언급한 단어의 무게감은 천지 차이만큼 다를 것이다. 마치 간을 육지에 빼놓고 왔다던 용궁으로 끌려간 토끼의 변(辯)처럼, 요즘 나는 뇌를 빼놓고 나왔나 싶을 정도로 혼란스럽다. 급격한 집중력 저하로 건망증이 심해졌고 이해력, 문해력도 떨어진 듯하다. 처음 들었을 땐 이해한 것 같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알죠?” 또는 “알아들었죠?”라는 확인 질문에는 선뜻 대답할 수 없다.
분명 수익화 강의를 신청할 때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진 냄비처럼 열의가 있었다. 그러나 냄비 중에서도 양은 냄비는 수 분 내에 펄펄 끓는다. 대신 레인지의 불을 끄고 나면 식는 것도 금방이다. 반면 뚝배기는 천천히 끓는 대신 서서히 식는다. 냄비형 인간인 나는 이렇듯 펄펄 끓어오를 때까지 열정은 충만하나 금세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때부터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이렇듯 나는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나아가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었던 것.
그럼에도 지금까지 숱한 목표를 향해 여기까지 왔다. 걷기도 하고 쉬다 달리기도 했지만, 계속 멈춰 있던 적은 없었다. 가난과 엄격함이 싫어서 탈출하다시피 한 결혼이었지만 나의 살림이라 생각하니 허투루 살 수 없었다. 나름 재테크도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며 살았다고 자부했다. 그러다 작년부터 ‘글쓰기’라는 새로운 영역을 삶에 들였다.
어릴 때부터 연필 잡고 뭐라도 끄적거리던 기억이 좋아서 이제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100세 시대의 남은 반생은 글쟁이로 살아가고 싶었다. 목표는 저만큼 높게 잡아 놓고 실행은 제자리걸음이면서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결과나 발 빠른 실행력을 자랑했다고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글을 쓸 때도 온전히 정성을 들이지 못하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뒤처지는 느낌이다. 자꾸 주변과 나의 필력을 비교하게 되니 알면 알수록 글쓰기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그냥 내 독서력과 연필 한 자루만 손에 쥐면 글이 술술 써질 줄 알았다.
책을 쓰기로 호기롭게 선언하고 정작 원고는 한 줄도 못 쓰는 이 게으른 상황을 이제는 벗어나려고 올해 안에 수익화 목표를 세우고 새로운 작업에 도전했다. 문제는 10월 말까지는 비정규직이지만 하루 8시간은 꼼짝없이 일터에서 업무를 봐야 하는 처지라 나의 저질 체력으로는 모든 일정을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빠른 가시적 성과만을 노리고 무턱대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 내 탓이다. 이왕 칼집에서 칼을 빼어 들었으니 무라도 잘라보자. 대단한 성과는 없더라도 그간 잘린 무로 깍두기라도 담글 수 있지 않을까.
자학하기 바쁜 지친 일상에 쉼표 찍기
밤잠 설치게 하던 열대야도 입추를 기점으로 누그러졌다. 습한 공기를 뚫고 한 줄기 바람이 느껴졌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의 바쁜 일정 때문에 꿉꿉하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날씨를 피해 여름휴가조차 떠나기 힘들었다. 이대로 방학을 끝낼 수 없어 우리 가족은 개학을 하루 앞두고 당일치기로 평생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대구에 다녀왔다. 소위 ‘대프리카’라고 불리던 시절도 옛말, 도심의 공기인 걸 감안 하면 우리 동네보다 덜 더웠다. 다행히 날씨가 맑아 근교 카페에 와서 하늘이 한가득 보이는 유리 창가에 자리 잡고 앉으니 우울했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세 식구 음료와 미니 식빵 하나 주문하고 자릿세를 치른 셈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어딜 가나 대형 카페에선, 모두가 수제 베이커리는 아닐 텐데도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 일색이다.
나도 나이가 지긋해지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독립서점 주인이 되고 싶은 로망이 있다. 로망만 좇다가는 현실이 힘들어진다. 실행 계획이 없는 로망은 허상일 뿐. 일단 눈앞의 수익화 목표에 집중하자. 목표의 단계를 하나씩 실행해야 이루고 싶은 ‘마음’을 넘어 수익 실현의 ‘결과’로 이뤄낼 수 있다.
0교시와 야간 자율 학습이 있던 여고 시절 이후 올빼미족 삶을 살던 내가 새벽 5시 기상을 이어온 지 무려 9개월이 지나고 있다. 작년 12월부터 마음먹은 새벽 기상 클래스를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매일 참여 중이다. 그 하나만으로도 뿌듯한 일인데, 끊임없이 남들과 비교하면서 쓸데없이 좌절하며 자학하고 있다.
부산 살 때 실제로 교*문고에서 한비야 님의 신간 저자사인회에서 지금 고1인 아들을 들쳐업고 1시간 이상을 서서 기다렸다가 사인을 받았던-당시 한비야 작가님도 감동했었다-인내심도 있는 나인데, 자꾸 목표를 잡고도 실행하는 데는 주춤거리고 있다. 그저 지금 “잘하고 있어. 매일 하는 과제들 잘 따라가면 돼.”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내디디면 될 것을. 걷기도 제대로 못 하면서 마라톤하는 사람을 못 따라가겠다며 징징거리고 있는 셈이다. 힘을 내자, 과거의 뜬구름같은 이상을 좇던 삶에서 하나씩 실현하고 있지 않은가. 구색 갖춘 여름휴가 여행은 아니지만, 당일치기로 난생처음 대구도 다녀왔으니 그만 헤매고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