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앞표지 하단에 '200만 독자가 사랑한 작가'라는 타이틀만 봐도 이 책 속 문장의 힘을 짐작할 수 있었다.
책날개에 '글의 힘을 믿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윤설 작가는 '낮에는 회사원, 밤에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주로 삶과 사람에 대한 글을 주로 쓴다고 밝힌 저자는, 현재 N 포털사이트에서 <인간 윤설>을 연재 중이라고 소개한다.
이어진 면지에는 멋진 필체의 친필 사인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독자에게 전하는 바람을 담아 A4 용지 가득 적힌 당부의 글이 인상적이다.
"책을 읽는 동안 어떤 감정이 드셨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그 소중한 감정들을 나눠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됩니다." 진심이 느껴져서 성실한 서평을 써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목차는 총 3장으로 나뉘어 있다. 내가 나름대로 파악한 바로는 1장은 '나'를 바로 알기, 2장은 '관계' 유지를 위한 처신, 3장은 올바른 '삶'의 태도로 이해했다.
1장 - 걸음에 무게를 더하며
'내면을 마주할 수 있기를'이란 제목의 글에서, '너 자신을 알라'던 소크라테스의 명제를 작가의 통찰로 버무린 문장이 눈길을 끌었다.
p. 20 그대도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내 사소한 것을 많이 아는 게 중요하다. 사람은 거대한 것만 중요시 여기고 사소한 건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이란 수많은 사소함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존재임을 잊어선 안 된다.
수면 위로 떠오른 빙산의 일부가 아무리 거대해 보일지라도, 결국 이를 떠받치고 있는 것 또한 보이지 않는 내면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에도 실패, 마음의 상처, 포기 등 부정적 감정은 자신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며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좋은 말을 건네며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많이 느리다. 어쩌면 날 닮아 느린 아들이 그래서 더 안타깝고 미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에게 작가는 조금 느려도 괜찮다며, "그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당신은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 고된 인생을 마주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숨쉬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충분히 잘 해내고 있는 것이다."(본문 p.46)라고 위로한다.
그렇다. 나는 별다른 각오 없이 한 결혼과 육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세상을 등지고 싶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밤새 울며 잠들지 못하는 아기를 안고 아파트 13층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도 했었고, 시월드에서 심히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중에도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남편을 두고 수차례 가정을 깨고도 싶었다. 참고 참고 또 참던 나는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이후 여전히 우울 정서는 계속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말처럼 지금까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위로해 본다.
2장 - 서로의 밀도를 높이며
이번 장은 '관계 유지'를 위한 올바른 처신에 대한 조언을 건넨다. "억지로 만들어 가는 인간관계는 감정 노동일뿐이다. 만날수록 감정이 잔잔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본문 p.127)라며, '관계가 곧 인맥'이라는 등식으로 이해하는 것을 지양하도록 한다.
또한 나의 시선을 붙든 내용이 있었다. 어쩌면 이 책에서 내게 가장 와닿은 문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p.129 한 걸음에 보다 신중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사소한 행동이라고 하여 받아들이는 사람마저 사소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마음의 크기와 온도는 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정한다. 나의 웃음이 누군가에게는 비웃음이 될 수도, 나의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삿대질이 될 수도 있다. 사소한 것일수록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별것 아니라 생각되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별것이 된다. 한 걸음엔 늘 발자국이 남는다.
내가 종종 나의 의지를 드러내는 단어로 '한 걸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앞으로는 '한 걸음'의 무게가 막중하니 함부로 쓸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한 걸음엔 늘 발자국이 남는다"고 하니, 신중하게 내디뎌야 하는 것이다. 실천 의지가 동반되지 않은 한 걸음, 내디딘 한 걸음 뒤에 따르는 실행이 없다면 그저 미사여구일 뿐일 것이므로.
또한 소중한 사람을 대할 때는, 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번 떠난 사람의 마음은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 곁에 있는 존재를 소중히 대하자. 자신이 어떻게 해도 이해해줄 거라는 착각은 버려라.
3장 - 시절에 의미를 새기며
작가는 인생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의미없고 사소한 순간일지라도 사진과 글로 기록해두라고 조언한다. 그런 기록들이 지나온 시간 속 내가 될 거라고도 했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작가는 시작보다 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끝에 집중하면 목적지로 가는 길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과정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할 수 있다. 비록 목적지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후회가 없다. 돌아보면 분명 순탄하지 않은 길이었지만 꽤 마음에 드는 시작이었음을 알게 된다.
성장하는 사람의 특징은 늘 성장한다는 점이다. 결과로 이어지는 수많은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다. 좋은 시작에 매달리지 않으니 무엇이든 마음 편히 시작할 수 있고, 용기를 잃거나 두려움이 생길 일도 없다.
그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무언가의 시작이라면, 고개를 약간 치켜올려 조금 더 먼 곳을 보자. 좋은 시작보다 좋은 끝이 중요하다."(본문 p.195)라고.
그간 '시작'의 의미를 강조한 숱한 도서를 읽었지만 끝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은 얼마 없었다. 오랜만에 마무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책을 만나니 늘 끝을 맺지 못하는 나의 끈기 부족이 부끄러웠다. 처음 품었던 열정과 의지를 마지막까지 유지하고 있어야 성공을 할텐데, 항상 의욕만 앞서고 꾸준한 실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계속 제자리에서 맴도는 기분이 든다. 그때마다 환경 탓, 시간 탓 등 핑계거리를 대며 실행력 부족을 합리화하던 내게 반성하도록 한 부분이 가슴에 남았다.
p. 216 주어진 환경이 좋지 않아서, 나이가 많아서, 시간과 돈이 부족해서 할 수 없다는 말을 잘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존재한다. 정말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 과정에서만큼은 가슴 벅차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꿈. 당신을 닮은 사소한 무언가를 찾아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조급함보다는 용기 가득한 설렘을 움켜쥐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어떤 사소함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입버릇처럼 "나는 어릴 때 가난해서 사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지금 나이도 40대 후반이며, 가진 돈도 없어 글쓰기에만 전념할 수 없다."는 식의 말을 하며 나의 실행력 부족을 변명해왔다. 앞으로는 윤 작가처럼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처럼 시선을 사로잡는 문장들을 잘 빚어봐야겠다. 나의 글쓰기 멘토님의 "학벌, 경제 상황,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시작할 수 있는 활동이 글쓰기다."라는 말씀처럼 '쓰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단, 쉽게 쓸 수는 없다. 세상의 많은 작가들도 창작의 시간은 고난이란다.
의외의 작품에서 명문(名文)을 만날 때면 반갑고 뿌듯하다. 책 속에서 건질 문장이 많아서 배울 점도 많이 때문이다. 잘 빚은 문장들은 필사노트에 따라 적으며 눈에 익히다보면 나도 원작자의 감성과 사유를 느낄 수 있다. 본문에서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더 익숙하다는 윤설 작가도 어쩌면 잘 쓴 문장들을 수집하고 따라 써보며 자신만의 감성을 입혀 빛나는 문장을 뽑아냈을지 모른다.
자신의 느린 속도때문에 빠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 소모적인 인간 관계를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사람, 자신의 장·단점과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은 꼭 이 책을 읽어보시길. 필력이 좀체 늘지 않는 예비 작가들도 윤 작가만의 편안하지만 독특한 감성으로 풀어낸 좋은 문장을 느껴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