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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유혹

-불혹은 개뿔, 아직도 수많은 유혹에 흔들리는 40대를 보내며

by 네모

한국 나이 47세.

오늘부터는 현 정부의 바뀐 '연령산정기준'에 따라 46세다.

분명 그 옛날 공자께서는 불혹(不惑) 즉, 40세가 되면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겨 갈팡질팡하거나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게 된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왜 이리 아직도 세상일에 정신을 빼앗기거나, 갈팡질팡하고 판단이 흐려지는 순간들이 많은 걸까.


365 쇼핑의 유혹을 물리치고 나니 독서에 집착하고 있다.

공공도서관 비정규직 근로자로 토, 일 주말 이틀만 일을 하고 있다.

일 년 마다 연 단위로 '서류접수-면접-합격의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내년엔 또 같은 직무 내용으로 평일 근로자 모집 예정이라 8개월짜리 공공일자리에 지원할 것이다.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물론 당장의 생계를 위협받는 형편은 아니다.

그래도 어느 방송사의 프로그램명인 <놀면 뭐하니?>처럼, 놀면 뭐 하겠는가.

게다가 스스로 떳떳하고 싶어서 우대조건인 '정사서 2급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그러니 그 자격증 취득을 위해 들였던 시간과 노력, 비용까지 고려하면 공공기관의 정년인 만 60세까지는

동종 업무 구인 공고가 올라오면 나는 또 이력서를 제출할 것이다.


그러다 평일 시간 활용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평소 독서와 서평 쓰기를 즐기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마음먹은 김에 서평 쓰기를 정기적으로 하기로 했다.

SNS매체와 온라인 서점에 올리는 조건으로 각 출판사의 서평이벤트에 닥치는 대로 응모하기 시작했다.

하나둘 당첨되기 시작하더니 어느 달엔가는 주최할 수 없을 정도로 一日一讀 해야 했다.

당초 규칙적인 독서와 글쓰기를 하려고 시작했던 서평이벤트 응모가 수단에서 목적이 되어 갔다.

출판사의 서평 작성 독촉을 받을 때면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내가 이러려고 서평을 쓰기 시작한 게 아닌데 자괴감이 들었다.

수년 전 어느 권력자가 발표했던 담화문의 일부 구절처럼.


그러다 나의 일터 공공도서관의 문화행사에서 '글쓰기로 인생전환을 꿈꾼다'는 주제의 온라인 강의 수강 후

강사님의 도움으로 책출간을 목표로 정기모임까지 참여했다.

그러던 중 이따금 써오던 SNS의 시들을 모아 5인 공저 시집까지 출간했다.

시라고 하기엔 같은 공저자분들에 비하면 비루하기 짝이 없지만 우선 첫 출간의 맛을 보기엔 충분했다.

그리고 최근엔 단독 책출간을 기획 중이다.

실제 출간으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뭔가 올 한 해를 헛되이 보낸 것 같지 않아 나름 만족한다.


고교시절 나의 글을 좋게 봐주시던 국어선생님의 "자넨 글을 써보지 그래?"라는 말씀을 잘 새겨듣고

대입 전공을 택할 때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착과에 지원했더라면 지금쯤 가독성 좋고 구매력 있는 책을

여러 권 써낼 수 있었을까.

박완서 님의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는 산문집 제목처럼, 아마 가보지 않은 인생의 다른 선택이니

궁금하고 미화하는 것일 수도 있다.


최근 브런치 작가로 승인되어 저장했던 글들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는 강사님의 중개로 온라인 강의를 하나 맡을 수도 있다.

아... 불혹은 개뿔!

왜 이리 자꾸 '혹'한단 말인가.

열정은 넘치는데 체력은 바닥이다.

이런 내가 어쩌자고 자꾸 나를 몰아세우는 걸까.


'파이어족(FIRE족,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 경제적 자립을 통해 빠른 시기에 은퇴하려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초고령사회'다 해서 각종 매체에서 미리미리 노후를 대비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은 불안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가뜩이나 예민하고 불안한 나를 더욱 불안의 늪에 빠트렸다.

그래서 아직 오십 대에 들어서지 않은 지금 뭐라도 해야 했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 가계에 손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내가 벌어들이는 주말근로소득 범위 내에서 감당할 수 있는 일.

역시 글쓰기!


이제는 제대로 해보련다.

독자에게 읽히는 글, 간결하고 명확한 글, 나만의 개성이 드러나는 글, 구매력 있는 글쓰기를.

부단한 습작과 퇴고의 반복으로 갈고닦아보자.

빛나는 문장으로 지면을 수놓을 수 있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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