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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Oct 21. 2024

어떤 걸로 드릴까요?

네 전화번호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여기서 제일 잘나가는 메뉴로 주세요.”

“음... 그러면 저희 카페 시그니처 메뉴인 라떼로 준비해드려도 될까요?

“네. 그렇게 주세요.”


볕이 잘드는 카페 맨 구석 창가 자리.

집중은커녕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글자들이 떠다니는 책을 아무렇게나 펼쳐두고 주위를 힐끔댄다.

하루는 라떼로, 그 다음 날은 아메리카노로, 또 그 다음날은 라떼로.

따뜻한 머그잔에 가득 담긴 원두향이 사방으로 솔솔 퍼져 나간다.

손에는 가느다란 펜을 쥐고 의미없는 움직임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려본다.

테이블 위에는 너저분한 종이쪼가리와 쓰레기 뭉치가 여러군데 흩어져있다.

그는 커피를 주문해 받아두고도 한참동안 컵에 입술 한번 붙이지 않는다.

발표를 위해 모아야 할 자료가 많은건지 시험을 준비하는건지 모를 두꺼운 책들 사이로 중간중간 눈이 마주친다.

그는 커피를 마시는 것이 아닌 같은 공간의 공기를 마신다.

그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닌 사람을 읽는다.

그는 문장을 해석하는 대신 나의 표정을 해석한다.

그의 눈은 글을 보는 것이 아닌 나의 눈을 본다.

당신이 궁금하다는듯 쳐다보는 나를 더는 숨지않고 빤히 바라본다.








“오늘은 라떼로 드릴까요? 아니시면 아메리카노...”

“라떼로 할게요.”

“네. 매장에서 드시고 가시면 머그잔으로 준비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오늘은 테이크아웃으로 할게요.”

“아... 네! 테이크아웃으로 준비 도와드리겠습니다.”

“혹시...”


마음이 바뀐걸까.

아메리카노?

아니면 매장에서 먹기로?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전화번호 받을 수 있을까요?”

“어...”


당황한 목소리가 튀어나가고 뒤에서 주문을 기다리던 손님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그가 멀어진다.

매번 앉던 창가자리가 아닌 카운터 앞쪽에 등을 보이고 앉는다.

습관인건지 긴장된 탓인지 테이블 아래로 슬그머니 보이는 두 다리가 사정없이 떨린다.


“주문하신 따뜻한 시그니처 라떼 테이크아웃 한 잔, 나왔습니다.”


그가 천천히 등을 돌린다.

바닥을 향하던 시선이 슬그머니 올라와 새카만 눈동자와 눈을 마주친다.

점점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맛있게 드세요.”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는 따뜻한 라떼 한잔.

혹시나 뜨거운 온도에 손이 데이지는 않을까.

빠른 걸음으로 컵을 받아들고 나가려는 그에게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컵홀더.

가느다란 손가락이 가리키는 시선을 따라가면 보이는 숫자 여러개.

그는 글자를 읽는다.

그리고 곧바로 고개를 돌려 내 표정을 읽는다.

그 누구도 피하지 않고 어떤 가림막도 존재하지 않는 허공에서 드디어 둘의 눈이 마주친다.

나는 그를 본다.

컵홀더에 적힌 전화번호를 만지작거리는 그를 읽는다.

아마도 같은 마음일거라고 해석한다.

그는 종이쪼가리에 적힌 열한자리의 숫자 의미를 해석해보며 수줍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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