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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오름 Nov 20. 2024

인생무상과 허무함, 그렇지만 감사하며

임종 환자들을 간호하며 느낀 것들

오랜 기간 임상 간호사로 근무하며 세상만사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고나서 느끼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해야할까요. 깨달음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단순히 제가 살아가며 깨닫게 된 어떠한 감정이라고 하면 조금 더 가볍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 정신적으로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 그로 인해 각자의 아픔과 고통을 겪는 환자들과 보호자들을 보며 느낀 두가지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감정은 인생무상과 허무함. 그리고 다행스러움과 감사함이었어요.


아프면 다 소용없는 건데, 뭐하러 이렇게 아등바등 살았나.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하나, 몸이 아파 밥 먹기도 힘들고, 휠체어와 보조기 없이는 걸을 수도 없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이렇게 내 인생을 허무하게 보내지 않았을텐데...

내가 이러려고 악착같이 돈 모으면서 살았던 게 아닌데.

가족들과 해외여행, 국내여행 한 번 못 가보고 이렇게 빨리 죽을 줄 몰랐는데, 이렇게 될줄 알았더라면 하루 빨리 더 내가 하고싶은 일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살았을텐데.

왜 그렇게 주위 사람들한테 인색하게 굴면서 돈돈돈 거리면서 살았는지 후회가 돼.

술 좀 그만 마시고 담배도 좀 줄일걸, 마누라 말 좀 들을걸.

먹고 싶은게 있으면 먹고 하고 싶은게 있으면 도전도 하면서 하루라도 즐겁게 살아볼걸, 일만 하고 살았어.

회사에 내 인생 전부 다 가져다 바쳤는데 결국 나한테 돌아온 건 시한부 선고였어.



위에 적힌 말들은 실제로 제가 임상 근무를 하며 만났던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 말씀입니다. 수많은 신세 한탄과 하소연, 자기 비하적인 말씀들과 눈물 없이는 듣기 힘든 가슴 아픈 사연들도 참 많았어요.


어린 나이부터 임상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환자분들의 임종을 지켜보기도 하고 또 임종 소식을 보호자분들께 알리기도 했고 마지막까지 임종 간호를 수행하면서 처음에는 너무도 많은 슬픔과 우울감에 빠져 인생무상과 허무함을 느끼곤했습니다.


출근과 퇴근이 참 무서웠던 때도 많아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라운딩을 갔을 때만 해도 반갑게 인사로 맞아주시던 분이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안에 임종을 맞이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퇴근 때 뵀었던 환자 분이 다음날 출근시에 돌아가셔서 더는 볼 수 없게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사는 게 대체 뭔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환자분과 보호자분들께 직접 그동안 살아오셨던 시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 눈물나고 또 마음이 아파서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던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삶의 의미를 찾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었어요.


돈돈돈, 그 돈 벌어서 대체 뭐하나.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건강할 때나 돈이 필요한 거지. 건강 잃으면 돈이고 뭐고 아무 것도 쓸모 없는 건데 나는 대체 뭘 위해서 이렇게 아등바등 사는 걸까.


환자분들과 보호자분들께서 하시던 이야기를 어느 순간 제가 매일 입에 달고 살고 있더라고요.


이 세상 누구나 그렇듯 그 당시에도 제 나름대로 마음의 짐이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여기저기 안 아픈데 없이 지친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꾸역꾸역 하루를 살아가고 출퇴근을 반복하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중에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야간 근무를 하는데, 병원 창문 바깥으로 환하게 켜져있는 간판과 조명들이 반짝였어요. 내가 방금 전까지 있던 환자 병실은 온통 캄캄하고 숨소리만 미약하게 나는 어둠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조금만 걸어 나와도 이렇게 반짝이고 빛나는 야경이 가득하구나.

그 때 제가 병원에서 근무하며 만나뵀던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분들께 너무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고 또한 지금 이 순간에 두 다리로 걷고, 양 손과 팔을 자유롭게 쓰며 두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다는 모든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오늘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라는 말이 있죠... 이 말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 속 깊이 뼈 아프게 깨닫게 된 날이었어요.


‘인간은 어차피 태어나면 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인생이 허무한 거다’가 아니라 ‘그렇기에 오늘 하루 내가 멀쩡하게 살아있음에, 지금 이 순간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고 감사한 거다’로 마음가짐이 변하게 됐습니다.


살다보면 힘든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고, 도대체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아픈 날도 있습니다.

때로는 기쁜 날도 있고, 즐거운 날도 있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운같은 날을 만나 행복한 날도 있습니다.

어제와 별반 다를 일 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내 하루가 되고 또 내 삶이 된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나의 마음 상태이든 외부 상태이든 눈으로 보이는 현재 값에 일희일비하며 불안해하고 휘둘리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어릴 때부터 제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당장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무의식이든 제가 보고 듣고 자란 어떠한 말과 환경 속에서 터득한 내용이든 무엇이 정확한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늘 생각하고있는 말입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면 특히나 부모님과 친구들은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말라며 저를 혼내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이제는 속으로, 마음으로만 이야기합니다. 이 말을 듣게 되는 누군가는 마음 아플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그래도 제가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대충 살겠다, 열심히 살 필요 없다, 아등바등 할 필요 없다가 아니라 굳이 애쓰며 살지 않아도 이대로도 괜찮다. 잘하지 못해도 괜찮다. 이 정도도 충분하다. 오늘 하루 무탈함에 감사하다.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내가 당연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들이 사실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매순간임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늘 다짐합니다.


몸과 마음 건강 잘 챙기시면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감사하면서, 오늘 하루도 무탈하고 평범한 순간을 보내고 있음에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는 시간 되시길 바래봅니다.


인간은 단지 육체적 생존만을 자연에 의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고향집으로 가는 길, 생각이 만든 감옥을 빠져나오는 길을 찾는 데도 자연에 의존한다. 인간은 늘 무언가를 생각하고 행하느라 정신이 없다. 인간은 과거의 추억에 잠겨있지 않으면 미래에의 기대에 가득 차있다. 그런 와중에 문제로 점철된 삶의 미로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바위도 식물도 동물도 알고 있는 일을 우리 인간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인간은 존재하는 방법,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 자기 자신이 되는 방법, 삶이 있는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고요함의 지혜 | 에크하르트 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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