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자신과 인사하기

by 김남금


2010모로코 193.jpg @아실라, 모로코
새해 첫날은 마치 새로운 세월이 하나의 고랑에 의해 다른 세월에서 분리되지 못하듯, 우리 욕망이 그 세월을 붙잡거나 변경할 수 없어 몰래 다른 이름으로 덮은데 불과하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꽃 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여행을 다녀오느라 서울에 잠시 없었던 시간을 만회하려는 것처럼 짧은 연말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건설적인 대화도 있지만 대체로 소모적 대화였다. 사람이 생산적 대화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시콜콜하고 시답잖은 소모적 대화야말로 감정적 위안을 주기도 해서 지난 두 주가 꼭 헛되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이 아직도 연말의 어수선함 속에서 아직 빠져나오질 못했다. 이런 시간들을 정리하기 위해 '새해 첫날'이라고 부르는 날이 존재하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새해 일출을 보러 산에 가고, 또 누군가는 새해 결의를 다지기 위해 동해 바다로 떠나기도 한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서 자판을 두드린다. 새해 결심이나 다짐 같은 걸 안 하고 꽤 여러 해를 보냈다. 한 해를 보내면서 한 해 결산, 이런 것도 잘 안 하는 편이다. 결산은 원하는 무언가를 얻고, 잃었다는 걸 가시적으로 정산하는 일이다. 결산할 마음이 없다는 말은 연초에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지 않은 탓이기도 하다. 왜 꼭 목표를 세워야 하나. 그냥 건강하고, 무탈했으면 그것으로 좋았던 해로 기억하곤 했다. 프루스트의 말대로 시간을 분절하는 건 좌절된 욕망에 선을 긋고, 다시 좌절할 수도 있는 욕망을 꿈꾸는 일이라고 우겨본다. 친구들과 SNS 친구들에게 새해 인사말을 써서 보냈다. 인사말을 쓰고 보니 정작 나 자신에게는 아무 인사도 안 하고, 너무 인생을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보내고 있는 듯해서 급조한 결심을 적어본다.



올해는 뭔지 모르지만 약간의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 변화는 당연하지만 내가 주도해야 하고, 아직 어떻게 펼쳐질지 모른다. 승부욕이나 목표 의식 1도 없이 살았다. 변화를 주도하려면 결의까지는 아니어도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몸을 싣는다면 나중에 후회할 거 같다. 변화의 시간을 긍정적 경험으로 가득 채우려면 기록으로 행동지침을 조금 적어보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1. 말을 줄인다.


말을 너무 많이 한 날에는 집에 와서 후회를 한다. 사람의 품격은 말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이다. 말을 많이 하면 품격이 높아질 수가 없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하지 않아도 좋을 말을 입 밖으로 내 보내게 된다. 입 밖으로 일단 말이 나오면 그 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것이 된다. 좋게 말하면, 나는 겉과 속이 똑같은 투명한(?) 사람이다. 나쁘게 말하면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건 결국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쉽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말고, 그 순간에 한 번만 말을 삼키도록 하자.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올해 가장 성취하고 싶은 일이다.


2. 규칙적으로 읽고, 쓴다.


불규칙적 읽기와 쓰기도 괜찮기는 하지만 안 읽는 날이 점점 많아지니까 쓰고 싶은 욕구도 없다. 무언가를 쓰려고 앉아도 딴짓을 하거나 계속 비슷한 문장들만 나온다. 글이라는 게 읽지 않으면 안 나온다. 무엇보다 즐겁게 글을 써야 하는데 묵직한 돌이 가슴속에 들어있는 것 같다. 읽지 않고 쓰려니까 그런다. 뭘 잘 모를 때 옛날 선비들이 무위도식한다는 편견도 없지 않았다. 지금은 선비들이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책만 읽고 앉아있었는지 절절히 이해하는 나날들이다. 정신이 산만해지면 글도 안 읽힌다. 차분히 정신 수양이 절실하다. 정신 수양 없이는 글에 대한 감흥은 빛의 속도로 휘발된다. 규칙은 때로는 구속일 수 있지만 때로는 강제할 필요가 있다.


3. 운동을 조금 더 규칙적으로 한다.


건강은 내 모든 에너지의 근원이다. 운동 마니아라서 아니다. 체력이 방전되면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고, 누워만 있게 된다. 이거야말로 최악의 상태라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운동에 집착하게 된다. 무릎을 지나치게 사용하는 요가 동작을 일 년 가까이했더니 여름부터 무릎이 아파서 요가를 중단했다. 아프면 안 아플 때 몰랐던 근육의 정교한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섬세해지기도 한다.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근력 운동과 작별을 하니까 걷는 거 외에는 별로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다. 슬프다. 슬픔을 극복하려고 아주 가끔 유튜브를 보면서 셀프 스트레칭을 하는데 조금 더 자주 셀프 스트레칭을 하도록.


4. 새로운 경험을 두려워하지 말자.


새로운 경험에 맞닥뜨리면 귀찮아서 마지막 순간에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잠재의식을 들여다보면 귀차니즘 속에 두려움이 존재한다. 새로운 것을 위한 시간과 노력, 그리고 상실감의 반복과 가끔씩 이룬 성취 속에서 자아는 정지하지 않고, 살아 숨 쉰다. 새로운 경험이나 상황에 대한 열정은 없어도 성실함으로 극복할 수 있는 일들이다. 열정은 내 것이 아니지만 성실은 손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이번 주에 할 일을 귀차니즘으로 말아먹지 말지어다.


DSC06909.JPG @베를린, 독일

쓰고 나니 별거 없이 어린 시절 내가 계속 바라 왔던 일들이다. 말 줄이는 거만 빼고는.


이모티콘, 이미지나 영상 짤들로 새해 덕담을 나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편하지만 영혼 없는 수동적인 인사보다는 몇 줄이라도 진심이 담긴 덕담을 주고받고 싶다. 나아가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덕담은 하면서 자신과 덕담을 나누는 데는 서툰 우리. 새해 첫날은 자신과 덕담을 주고받는 날로 정하면 어떨까.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시간 없이 바쁜 일과로만 채우면 공허한 순간을 살아나갈 근육이 줄어든다. 어떤 근육도 단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신 근육은 단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