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력을 삽니다

독서실의 진화

by 김남금
KakaoTalk_20200114_180234882.jpg @서울, 한국 집 앞에 있는 스터디 카페

입시를 한국에서 치른 학창 시절을 보냈다면, '독서실'은 애증의 단어이다. 학교가 끝나고 독서실로 가서 밤을 불태웠던(?) 시절.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나와서 인기를 끌었던 '예서 책상'은 내 학창 시절에 유행했던 독서실 책상이다. 독서실 내부는 칸막이가 높이 있는 예서 책상, 즉 1인 책상들이 이열로 빼곡하게 자리 잡았다. 개인 책상에만 불이 켜지고 전체 공간에는 조명이 안 켜져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둑했다. '정숙'이 에티켓이어서 초콜릿이라도 먹으려고 부스럭거리면 누군가가 와서 조용히 하라고 할 정도였다. 소음에 민감한 입시생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런 환경은 사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보다는 잠을 부르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어둑한 실내조명 속에 은은한 책상 스탠드에 책을 펴고 있으면 눈꺼풀이 내게서 독립을 외치며 스르르 내려온다. 어느새 머리는 책상 위에 놓여있고, 달콤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따금 몸이 약간 경련하면 움찔해서 놀라지만 곧 다시 숙면에 빠지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다. 집에 갈 시간이 되어서 일어나면 맙소사! 침이 책에 흥건하게 골고루 배어 있다. 곧 침은 마르고 책은 쭈글쭈글해지면서 그 부분만 두께가 부풀어서 잤던 흔적을 학기가 끝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볼이나 이마에는 눌린 자국이 나서 한참 시간이 지나야 없어지곤 했다. 당시에 독서실은 수면에 더 적합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집중력을 끌어내기 위한 환경은 규격화되어 있었고, 규격화된 환경에서 나를 찾아오지 않는 집중력은 내 탓이라고만 여겼다.





시대는 변했다. 나는 20세기에 태어난 사람이고, 21세기를 살고 있다. 오, 난 두 세기에 걸쳐 산 사람이다!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을 새천년이라면서 TV에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21세기가 시작되면 마치 모든 것은 구시대의 것이 되고, 새로운 프레임이 필요한 것처럼 미래를 진단하면서 긴박하게 굴었다. 새천년이 시작되었지만 TV에서 호들갑을 떤 것처럼 일상이 확 바뀌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서서히 의식이 바뀌었다. 의식이 변하니까 환경도 변한다. 그중 하나가 독서실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즈음 독서실이라는 간판을 찾아볼 수 없다. 언제부터인지 '스터디 카페' '서재'란 간판이 눈에 띄었다. 나란 여자는 옛날 사람이라 스터디 카페나 서재 간판을 보면서 선뜻 들어가 볼 생각이 안 들었다. 며칠 전 언젠가 들어가 보리라, 벼르고 별렀던 집 앞 스터디 카페에 갔다.


출입문부터 21세기에 걸맞는다. 무인시스템으로 키오스크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고, 결제해서 바코드를 받는다. 들어가는 것뿐 아니라 나갈 때도 바코드를 인식시켜야 한다. 나라는 이용객은 바코드 인식 기계에게 고유 바코드로 인식된다. 실내는 환한 조명이 켜져 있다. 테이블은 커다란 개방형 테이블이 한가운데 놓여있고, 벽 쪽으로는 1인용 박스형 책상들이 있다. 어떤 자리에 앉을지는 기계에서 선택을 하면 된다. 입구에는 커피와 물을 비롯해서 여러 종류의 차가 준비되어 있고, 소음 없는 노트북 마우스까지 갖춰져 있다. 온도를 조절하도록 담요와 방석도 취향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 21세기 스터디 카페는 신체의 안락함에서 집중력이 나오는 것으로 애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20세기 독서실을 떠올리면 미래 시대에 와 있는 것 같아서 스터디 카페와 사랑에 빠질 예정이다.(응?)




독서실에는 피곤에 쩐 독서실 총무가 있었는데 스터디 카페에는 키오스크가 나를 맞이한다. 모든 게 셀프 시스템인 게 낯설면서 익숙 해지니까 편하다. 백색 소음 속에 앉아있으니까 집중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기분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궁금한 게 있다. 집에서는 왜 집중력이 솟아나지 않는 걸까? 왜 집중력을 위해 책과 노트북을 싸들고 이리저리 떠돌아야 하는 걸까? 그것이 알고 싶다. 아시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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