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서 '그림책 깊이 읽기' 수업을 듣고 있다. 배워서 뭐해, 하는 오만함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역시 아는 만큼 세상이 보여서 평생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걸 새해에 깨닫다니, 운이 좋다. 타이포그래피를 이용한 그림책의 구성, 삽화와 그림의 그림의 차이점 등등. 새록새록 즐겁다. 한동안 배우는 일을 멀리해서 나는 새로운 것을 알아갈 때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인 걸, 잊고 있었다.
그림책 수업을 들으면서 E.M 포스터가 쓴 소설 <모리스>에서 읽은 구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오직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을 해석할 수 있다.
그림책은 아이를, 그것도 글을 모르거나 글에 취미가 없거나 하는 아이들을 위한 장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그림책은 문학의 하나의 독립된 장르이고, 그림이 글과 독립적으로 또 하나의 서사를 만들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용도 다양해서 아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궁금해서 두어 번 선생님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의 대답은 번번이 같았다. "아이들은 그냥 잘 받아들여요." 아, 나는 이미 하나의 세계관에 갇혀서 그림책을 보고, 그림책과 아이의 관계를 규정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냥 받아들이기"는 어른에게 무척 난제이다. 옳고, 그름을 자꾸 판단하려고 하고, 아이와 어른의 경계를 이미 설정한 채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치가 차곡차곡 축적되어 필요한 상황이 오면 경험치 창고에서 꺼내 사용한다는 말이다. 경험을 통해 선택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기도 하지만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을 거부하기도 한다. 내가 해 봤더니 별 거 없다, 는 식의 단정은 가장 경계해야 할 말이다. 경험을 통해서만 세상을 해석하는 감옥에 안 갇힐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따금씩 경험은 감옥이 될 수 있다는 걸 의식하고,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관점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에는 일방적 정답의 시대였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서 정답을 고르는 교육을 받았다. 21세기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떠돌며, 무엇을 받아들여야 할지 어지럽다. 하나의 정답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상황을 해석하는 방식도 다양하고, 해석에 따른 선택과 결정도 개인의 특성이 지배할 수 있다. 사회적 규범을 크게 이탈하지 않는 한 개인의 특성은 존중되어야 하고,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놀랍게도 그림책의 변화사는 이런 21세기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나이가 들면서 사고가 일정한 기준선에서 멈추는데 배울 게 없다고 단정해 버려서 그러는 걸 아닐까.
개성이 뚜렷해서 주장이 확실한 것과 고집이 센 것은 다른데 그 경계를 나누는 지점은 뭘까. 타인의 입장과 견해를 수용하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가지는 것은 고집으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아를 규정하는 협소한 틀을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21세기에 필요한 생존 기술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