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취감 한 스푼 덜어내기

by 김남금
KakaoTalk_20200209_161556004.jpg @상암동, 한국

건강을 위해 트레킹을 시작한 지 이제 만 2년이 되었다. 서울을 비롯해서 지방, 둘레길, 야트막한 산을 두 발로 걷는 일은 아주 매력적이다. 걷다 보면 몸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땀이 맺힌다. 처음 트레킹을 시작했을 때, 숨이 턱에 차는 오르막도 이제 호흡 조절이 가능해서 그럭저럭 오르게 되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두 발밑에 주의를 기울이느라 걷고 있는 나를 둘러싼 숲 속의 풍광을 감상하는 일이 아직 서툴다. 그래도 두 발로 걸으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서울과 수도권에 아름다운 둘레길이 얼마나 많은지, 걷기 전에는 몰랐다. 살고 있는 우리 동네 말고도 남의 동네, 차 타고 늘 왔다 갔다 하던 곳이 작은 숲들로 둘러싸여 있는 걸 볼 때마다 감탄사가 나온다. 굳이 멀리 가지 않아도 아름다운 풍경은, 늘 말없이 그 자리에 있다.


한국은 산악지형이라고 지리 수업 시간에 들은 정보는 이제 생생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땀을 흘리며 걸으면서 체득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하루의 시간에 따라 동네마다 둘레길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게 된다. 겨울에 나뭇잎을 떨군 나뭇가지들을 보면서 초록 잎들로 뒤덮인 나무와 나무들이 만든 숲길을 상상한다. 여름이면 가을에 알록달록 색으로 갈아입을 숲길을 상상해서 상상이 맞는지 또 가게 된다. 근력을 유지하기 위해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사물을 관찰하는 섬세한 시선도 함께 얻게 된다.


또한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어떤 지형이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목격하게 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막상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동네에 대해서는 흥미를 잃기 쉬운데 걸어서 보는 도시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겪게 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고소공포증이 심한 나는 고소공포증을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경사가 심한 좁은 오솔길에서 두려워서 걸음을 멈추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다. 천천히 시간을 들인 대가이다.


관절에 무리 없는 간편한 운동인 걷기를 즐기는 인구가 꽤 많다. 트레커들은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를 꿈꾸며 완주한 이들은 성취감을 느낀다. 그런데 나는 '완주가 주는 성취감'에 어쩐지 거부감이 든다. 산티아고에 다녀온 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하루에 몇 킬로씩 걸었고, 걸은 총거리가 대화 주제이다. 카미노에서 순례자가 되어 무엇을 느꼈고, 카미노를 다녀오기 전후에 어떤 내적 변화가 있었는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내적 변화라는 것이 꼭 말로 전달하기 힘들 수 있지만 나는 카미노를 걸었던 이들이 총얼마의 거리를 걸었는지 보다 어떤 걸 보고 느꼈는지 궁금하다. 휴가가 짧은 한국문화에서 단시간에 완주를 꿈꾸는 걸 이해하지만 한편으로 완주의 성취감만이 회자되는 트레킹은 내게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천천히, 조금 덜 걷더라도 많은 걸 보고, 느낀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귀가 쫑긋한다.


목표 의식과 성취감은 우리의 행동을 추진하는 에너지이지만 목표 의식과 성취감에 치우친 행위는 결과 지향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부작용이다. 완주의 성취감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이들을 만나면 조금 불편하다. 목표 의식 없는 나는 성취감이라는 안 맞는 옷을 혼자 어색하게 바라보게 된다. 성취감이란 뭘까? 우리는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일에도 수치화한 결과를 나열하는데 익숙한데 왜 익숙한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수치로 객관화하는 가장 일차원적인 방법을 잠시 잊고, 각자 다른 주관적 성취를 인정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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