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며 떠오른 생각
우리는 평소에 걷기에 대해 별 생각하지 않는다. 걷기는 두 발이 튼튼한 사람에게는 대기에 존재하는 공기처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한 살 무렵부터 두 발 보행을 시작해서 어떤 계산이나 노력 없이 저절로 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걷기, 특히 여성이 자유롭게 걷는 일은 실제로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역사적 흐름을 따라 서술하는 <걷기의 인문학>에서 저자 리베카 솔닛은 "걷기를 주제로 삼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보편적 행동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리베카 솔닛이 말했듯이, 내게 걷기는 인체의 자동 프로그램이 아니라 아니라 많은 생각과 도전이 필요한 행위이다. 3년 전 교통사고로 두 발을 수술하고 두 달간 깁스를 하고 풀었다. 다리 근육은 형편없이 약해졌고, 두 발 보행이 얼마나 정교한 인체 프로그램인지 매일 깨닫고 감탄했다. 무게 중심을 두 발에 고르게 두지 않으면 척추 통증이 생기게 된다. 두 발에 무게 중심을 균등하게 배분하려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신경을 썼지만 머리로 계산해서 움직이는 일은 불가능했다. 인체는 톱니바퀴처럼 신경 하나만 어긋나도 통증이란 신호를 보낸다. 두 발로 걷는 것의 중요성은 두 발로 잘 걷지 못할 때 다가왔다. 결핍은 결핍 요소에 대한 존재를 부각한다. 두 발 보행에 제한당한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두 발 보행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걷는 기능을 상실했다가 다시 찾으면서 일상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리베카 솔닛의 말대로
걷는 일은 곧 보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보면서 동시에 본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고, 새로운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 속으로 흡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느긋한 관광이라고 할 수 있다. (...) 보행은 수단인 동시에 목적이며 여행인 동시에 목적지이다.
봉우리 정상에 올라서 눈앞에 펼쳐진 능선을 걷다 보면 문득문득 찾아오는 생각이 있다. 두 발로 걸을 수 있어서, 내가 걷는 걸 좋아해서 참 다행이다. 산 능선을 따라 난 둘레길 걷기를 좋아하지만 함께 걷는 이들이 좋아서 가끔씩 팔자에 없는 산행을 하기도 한다. 산행은 큰 결심이 필요하다. 아무리 완만해도 한국 지형의 산은 험한 편이기 때문이다. 산 봉우리까지 오르막은 기본이고, 자잘한 돌길인 너덜길, 크고 작은 돌로 이루어진 등산로, 바위가 떡 버틴 암릉 구간도 때로는 만난다. 혼자서는 결코 가지 않을 길이다. 함께 걷는 친구들이 있어서 걸어볼 용기가 난다. 봉우리까지 오르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친구들은 응원과 격려의 말을 던지고, 이 말은 전진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삶의 원리와 같아서 흠칫 놀라곤 한다.
삶의 속도가 모두에게 같을 수 없다. 누군가는 암릉도 성큼성큼, 누군가는 오르막에서 쉬엄쉬엄 걸을 수밖에 없다. 또 누군가는 내리막 길에서 더 겁을 낸다. 흔히 오르막 길만 어렵게 여기는데 나는 내리막 길이 더 어렵다. 한 발을 돌 위에 두고, 다른 발을 다른 돌 위에 두면서 조심조심 발을 옮기면 일행들과 멀리 떨어지게 된다. 일행들과 멀어지는 시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걷는데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걷기 힘들 때 다른 사람이 손을 잡아줄 수 있지만 두 다리를 옮기는 궁극적 행위를 추진하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만물의 이치가 이렇다. 살다 보면 즐거운 시간도 있고, 힘든 시간도 있지만 이 모든 걸 오롯이 경험하고 느끼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걸으면서 삶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지 관찰하고, 집중할 수 있다. 힘든 시기는 곧 지나갈 것이고, 내 몫의 행복이 아닌 것은 탐내지 않을 것이며, 내 몫의 행복에는 감사하게 된다. 산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같지만 계절마다, 절기마다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자연의 풍경은 여러 요소에 따라 주관적 감상으로 다가와서 꼭 사람의 기분 같다. 우리의 기분은 주관적 요소에 휩쓸리고, 출렁거려서 여러 색의 스펙트럼을 갖는다.
지난주 소백산 비로봉에 다녀왔다. 칼바람이 유명하다는데 봄날 같은 날씨 속에서 얼었던 땅은 녹았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눈이 얼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능선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 발씩 조심조심 움직였다. 구름을 잔뜩 머금은 하늘은 아주 잠깐 파란색을 보여주고는 곧 구름 떼를 다시 불러들였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늦어도 네 속도로 걸어.
친구들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