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3. 금
한라산 영실탐방소에서 시작해서 윗세오름을 거쳐 어리목탐방소로 내려오는 코스. 갈까말까 고민했다. 고민될 때는 일단 지르고 보는 게 옳다. 그동안 등력이 쌓여서 안 힘들었다. 다만 제주시 하귀에서 버스를 타고 영실에서 내린 시각이 오전 11시20분. 영실탐방소에 12시까지 가야 입산이 허가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영실탐방소까지 3km. 김밥과 물, 간식 등등을 넣은 배낭을 메고 오르막이 있는 탐방소까지 뛰다시피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중간에 길을 안내한 지인이 내 배낭까지 메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맨 몸으로 뛰다시피해서 간신히 12시에 영실탐방소에 도착했다. 나는 등린이라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는데 버스 정류장 앞에 인당 2천원만 내면 택시로 가뿐하게 오를 수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지인의 불합리한 결정이 아직도 이해 안 가지만 이 일로 내가 투덜거리는 바람에 지인이 약간 상처 받은 걸 나중에 알았다. 사람은 참 오묘한 존재다. 사람이 비이성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는 정말 내 두뇌 회로로는 이해가 잘 안 된다.
영실-어리목 구간은 어린 아이들도 오르는 걸 종종 볼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코스이다. 하지만 1100미터 고지에서 시작해서 1700미터인 윗세오름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데크 계단길이 잘 정비되어 오르기 어렵지 않지만 윗세오름까지 계속 오르막이다. 출발 전에 마음을 단단히 잡아매서 그런지, 나름 가뿐했다. 믿거나 말거나. 오르면서 병풍 바위를 계속 바라보고, 오름 정상에 우뚝 솟은 봉우리 너머에 백록담이 있다는 것을 어림짐작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비현실적인 파란 하늘 아래서 계단을 오르고 또 올랐다.
병풍 바위는 실제로 보면 한 폭의 산수화인데 카메라에 담긴 바위는 늦가을 색만 보여주는 평범한 사진이...아쉬워라. 직접 가서 보세요.
윗세오름에 오르면 내가 좋아하는 너른 평원이 펼쳐진다. 조릿대가 한라산을 거의 뒤덮고 있는데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기사를 읽었다. 조릿대의 번식력이 강해서 다른 식물이 자라는 걸 막아서 조릿대가 골칫거리라고. 뭐든 넘치면 문제가 생긴다. 조릿대가 모여서 군락지를 이루는 것도 제주의 독특한 풍경이다. 하지만 개체수가 너무 빨리, 많이 자라면서 다양성을 해친다. 자연의 원리와 인간 사회의 원리는 똑같다. 사람도 적절한 거리를 두고 각 개인의 개성을 인정해야지, 너무 친밀하게 굴어서 타인을 나에게 맞추거나 내가 타인에게 맞추면 탈이 난다.
윗세오름에서 바람은 세지만 햇볕은 강해서 계절이 혼동스러웠다. 늦가을 색을 보고 있으니, 푸를 때 어떨지 궁금. 초록 풀로 덮인 윗세오름을 걷는 기분은 어떨까. 내려오는 길은 살짝 돌길이라 좀 더뎠지만 어렵지 않았고 얻은 것이 많다. 배려심 많은 친구들의 배려심을 배우고, 걸어도 걸어도 펼쳐지는 평원도 보고 바삭한 가을날 햇볕과 바람도 맞았다. 이제 나는 한라산에 가본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