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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Dec 29. 2020

고백이 아무 소용 없는 사회

넷플릭스 <아메리칸 사이코> 리뷰


고급 풀코스 요리 플레이팅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그리고는 패트릭의 일과가 나온다. 그는 철저하게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으로 몸매를 단련한다. 심지어 태닝으로 피부색까지 관리한다. 발렌티노 정장과 넥타이를 하고, 한 끼 밥값으로 570달러를 지불하고, 맨해튼에 있는 고급 사무실과 아파트를 소유한 금수저이다. 그는 명품 브랜드의 미묘한 차이를 꿰차고 있는 취향을 보여준다. 그는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 자본을 소유한 사람이다. 그는 물질적, 문화적으로 자본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 층을 차지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그에게 하나 빠진 것이 있다. 바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충족감이다.  


    

그는 아버지가 CEO인 회사에서 일한다. 그가 이룬 것은 없어 보이고 아버지의 후광으로 모든 것을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멋진 사무실에서 그가 하는 일은 약속을 잡는 일이고, 집에서는 슬래셔 무비나 포르노를 항상 틀어 놓고 운동만 한다. 화려한 겉모습의 패트릭은 과시적 소비의 아이콘이다. 그는 소비 자체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눈에 띄는 두 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vice president란 직급을 새긴 명함을 친구들에게 건네자, 그들 모두 같은 직급이 새겨진 명함을 꺼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때 그가 집착하는 것은 명함에 사용된 글자체와 질감이다. 명함에 사용된 글자체와 질감이 자신의 것보다 더 품위 있고 우아하다는 비교 하면서 질투한다.    


  

또 한 에피소드는 ‘도시아’란 고급식당 예약 건이다. 그는 도시아 식당을 예약할 때마다 번번이 실패한다. 그가 도시아에 예약 전화를 하면 듣는 대답은 예약이 모두 찼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가 경쟁자로 생각하는 폴은 도시아 예약을 너무도 쉽게 한다. 그것도 매번 그가 보는 앞에서. 그때마다 그의 분노 게이지가 상승한다.     


 

패트릭의 정체성은 분열하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풍족한 물질 속에서 살고 있지만 정신세계는 공허하다. 그는 어느 날 밤 분노에 가득 차서 밤 골목을 헤매다 마주친 노숙자를 죽인다. 그 후 그는 살인 충동에 사로잡힌다. 도시아 식당을 마음대로 드나들고, 그보다 더 좋은 아파트에 사는 폴을 죽인다. 그는 특히 여성 혐오에 빠져서 연쇄살인을 저지른다.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말을 한 사람은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패트릭을 괴롭힌 사람은 현실에서 실제로 아무도 없다.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다. 그는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한다. 자신이 소유한 물건보다 더 좋은 물건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적개심을 갖는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은 소유물이다. 소유물은 곧 그 자신이란 등식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누구에게도 명령받지 않고, 숭배받기를 원하는 심리는 반사회적 행동으로 표출된다.      


패트릭이 사이코패스가 된 것은 패트릭 혼자의 문제일까. 패트릭이 만나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약혼녀조차도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가 폴의 아파트에서 폴을 죽이고 시체를 가방에 넣어 핏자국을 남기며 로비를 나올 때도 경비원은 그를 주시하지 않는다. 그는 제어할 수 없는 살인 충동으로 고통받으면서 자신의 변호사에게 고백한다. 사람을 20명쯤 죽이고 폴을 죽인 사람이 자기라고. 변호사는 그의 말을 헛소리 취급한다. 변호사는 전 주에 폴과 두 번이나 식사했다고 말한다. “고백이 아무 소용이 없다.”가 패트릭의 마지막 대사이다. 패트릭이 원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무슨 말을 하든 아무도 그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 세계에 사는 형벌을 받는다.      


고도의 소비사회에서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가 소유한 브랜드에 머문다. 정신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철저히 소외되어 한 개인이 파괴되어도 대수롭지 않게 본다. 하지만 패트릭의 경우에서 보듯이, 소유한 물건은 흔들리는 영혼에 결코 충족감을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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