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17. 토
정신차리고 보니 산에 다니고 있다. 내가 어쩌다 등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산을 싫어했다. 몸을 움직여 땀 흘리는 것도 질색했다. 학교 다닐 때 단체(?)로 산에 갈 경우에는 '막걸리파'였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막걸리와 파전을 앞에 두고 산에 올라갔다 오는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노닥거렸다. 직장 다닐 때 워크숍으로 원치 않는 산행을 하곤 했다. 워크숍 일정에 산행이 있을 때마다 분노를 터트렸지만, 조직 내에서 힘없는 '을'이라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산에 오르곤 했다. 이렇게 비자발적 산행을 한 거 외에는 산은 '내게 너무 먼 당신'이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걸어서 여행하는 걸 좋아했다. 호기심 대마왕이라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면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보다 두 발로 걸어서 구석구석 보는 게 더 좋다. 그 덕분에 저녁에 호텔로 돌아오면 발바닥에 불이 나고 발가락에 물집이 생기는 일이 빈번하다. 서울에서는 일부러 걸을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안 걷게 되어서 걷기에 대한 충동은 잠잠했다가 여행만 가면 나타난다. 이제 도시뿐 아니라 멀게만 느껴졌던 대자연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일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새록새록 알아가고 있다.
여행 작가이면서 소설가인 폴 서루가 쓴 <<여행자의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풍경은 거기 있는 사물의 이름을 알 때 다르게 보인다. 반면에 이름이 없어 보이는 동경은 지극히 황량하고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34)
산과 바다, 특히 산은 지도에서나 찾아보고,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었다. 나는 멀리서 보는 산을 모두 비슷한 특징으로 분류했다. 높고, 거칠고, 가기 힘든 곳, 때때로 커피 한 잔 마시며 바라보면 좋은 곳 정도의 의미를 부여했다. 고소공포증과 운동 신경 제로인 내 신체 디폴트 값이 한몫하기도 했고, 산은 그저 하나의 고유명사일 뿐이어서 폴 서루가 썼듯이, 내 세계에서 산은 황량하고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과거 시제가 되었다. 현재 관점이 180도 달라졌다.
이제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등린이가 겨울 남덕유산에 갔다. 첫 겨울 산행이다. 출발 전에 가파른 계단 사진을 보고 과연 오를 수 있을지 고민했다. 자신이 없으니 남덕유산 겨울 산행에 대해 폭풍 검색을 했다. 난이도 상. 길이 돌덩이들로 이루어진 너덜길과 가파른 바위 위에 나 있는 계단을 확대해서 보고 또 보았다. 게다가 겨울산이라 아이젠을 착용하고 걸어야 하고, 해발 1507미터라 바람이 세게 불면 계단이 흔들린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을 읽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출발 전까지 걱정 인형이 되었다. 산에서 걸을 때는 땀이 나지만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1분만 서 있어도 땀이 식으며 순식간에 으슬거린다. 저체온증에 안 걸리려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보온 장비를 다 챙겨가야 한다. 비록 안 쓸지라도 말이다. 나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함께 가는 동행들을 위한 배려가 바로 내 몸은 내가 챙기는 것이다.
새벽어둠을 가르고 달려서 영각탐방지원센터에 도착. 600미터에서 시작해서 정상까지는 무려 900미터나 올라야 한다. 거리는 겨우 3.5km. 거리는 짧고 고도가 높다는 말은 경사도가 가파르다는 말이다. 사실 아무리 블로그와 유튜브를 봐도 가파른 경사를 오르는 느낌이 어떤 건지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추상적으로 다가온다.
1km는 무난한 길이지만 조금씩 고도가 높아질수록 길이 얼었다. 등산화가 바닥에 닿으면 뒤에서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발이 미끄러졌다. 중간에 아이젠을 착용했다. 발은 무거웠지만 미끄럽지 않아 배짱이 두둑해졌다. 남은 2.5km는 가파른 험난한 등산로였다. 하봉, 중봉,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인데 하봉까지 오르는 길은 무지막지한 높이의 돌계단이었다. 이따금 두 손을 이용해서 사족 보행을 했다. 하봉에 오르면서 심장은 수축되었다. 바위 주름들 사이에 눈이 쌓여 있고, 저 멀리 덕유평전 능선이 구름을 이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도 감상할 여력이 별로 없었다. 친구가 인증숏을 찍어주겠다고 난간 밖에 있는 널찍한 바위에 서라고 했지만 무섭다는 말만 반복했다. 두 다리는 후들거렸고 심장은 계속 오그라든 상태였다.
하봉에서 바라본 중봉 풍경. 남덕유산의 시그니처이다. 바위를 직접 오르는 게 아니라 바위에 설치한 계단을 올라가서 남덕유산행을 결심했지만 이 계단은 우리가 건물에서 보는 그런 계단이 절대 아니다. 사방이 뚫려있어서 고소공포증이 있는 내게는 허공에 있는 밧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층계참 폭이 좁아서 별로 크지 않은 내 발이 안전하게 디딜 공간조차 확보가 안 된 계단이었다. 말이 계단이지 허공을 걷는 것 같아서 무섭다는 말을 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다.
하봉에서 중봉으로 가는 길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돌로 된 가파른 내리막을 내려간다. 물론 사족보행으로-.-; 그다음에 다시 가파른 계단으로 진입한다.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몸이 휘청거려 떨어질 것만 같았다. 360도 둘러봐도 하늘에 떠 있는 거 같았고, 의지할 거라고는 계단에 만들어진 난간뿐이었다. 난간을 두 손으로 꼭 잡고 더디게 올랐다. 팔다리의 힘을 이용해야 하지만 어쩐지 팔다리는 점점 더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이게 다 오그라든 심장 탓이다. 심장 입장에서 보면 내가 너무 심장을 혹사시키는 중일테고.
다행히 바람도 세지 않고, 눈도 너무 많이 쌓이지 않아서 등린이에게는 좋은 날씨였다. 사진 속에 보이는 중봉 계단을 오른 후에 다시 만난 건 정상으로 이어진 계단 시리즈. 긴장해서 심장이 과부하였고, 아이젠을 신은 발은 점점 무거웠고, 다리 힘은 점점 빠졌다. 등산로는 하나여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서 나는 정상까지 안 가고 먼저 하산하겠다고 했다. 정상까지 0.6km를 남겨둔 지점이었다. 정상까지 얼마 안 남았는데 왜 여기서 돌아가는지, 의아해했지만 0.6km나 허공에 걸린 가파른 계단을 오를 자신이 없었다. 산에서 600미터는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등산객들은 주당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주당들은 술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곧 갈게, 하고는 오밤중까지 마시는데 등산객들도 '이제 다 왔다'는 하얀 거짓말을 많이 한다. 다 갈 때까지는 절대 다 간 게 아니다. 용기와 기운을 북돋으려고 하는 말이지만 내게는 위안이 전혀 되지 않는 무의미한 말이다. 내 몸과 심장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설정했다.
산에서는 해가 일찍 산 뒤로 넘어간다. 해가 산 뒤로 자취를 감추면 춥고 어두워져서 초조해진다. 겨울에 해가 산 뒤로 가버리는 시간은 오후 2시쯤. 아침에 늦게 오르기 시작해서 중봉에 도착하니 오후 1시 40분. 정상에 다녀오면 두 시가 훨씬 넘어서 하산 시작을 해야 해서 돌아가겠다는 내 말에 일행이 함께 하산했다. 정상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사람은 딱 한 사람. 그 친구만 정상에 다녀왔다. 한 번 하기로 했으면 해야 하는 친구는 나와 정반대이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정상이 뭐 대단한 건 아니지만 계획한 것을 미련 없이 버리면서 융통성과 유연성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나. 이런 것도 일종의 성취욕인데 나는 본래 성취욕이 없어서 정상을 꼭 찍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을 보면 눈을 끔벅끔벅하곤 한다. 산꼭대기에 닿고자 하는 성취욕이 다른 일에 대한 성취욕과 함수 관계가 있을까?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하는 당연한 등산의 이치. 올라가서 황홀한 풍경을 보는 시간은 아주 짧은 순간이고, 대부분은 모든 에너지를 길을 헤치고 나아가는데 집중해야 하는 등산. 이런 면에서 사는 것과 비슷하다. 가끔 기분 좋은 일에 행복을 느끼고, 보통 날에는 하루하루 살아가느라 갖은 애를 쓰는 인생. 이번 생은 흥했어도 망했어도, 삶이 계속되는 한 살아야 한다. 산에서 내려올 때 체력이 급속히 방전되어 급 피곤해지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참고 내려와야 홈 스윗 홈에 돌아올 수 있듯이.
고소공포증이라 올라가는 시간보다 내려오는데 2.5배 정도 더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올라가면서 내심 걱정했다. 어떻게 내려오나... 가파른 구간은 앉아서 내려오느라 엉덩이에 진흙을 좀 묻히진 했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리지는 않았다. 남산 오르는 것도 무서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렵다는 남덕유산에, 그것도 겨울에, 무탈하게 다녀왔으니, 셀프 쓰담쓰담으로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