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거대한 힘, 북한산

2020. 8. 22. 토

by 김남금


북한산 둘레길은 여러 번 가 보았지만 등산은 처음이었다. 강남에 관악산이 있다면 강북에는 북한산이 버티고 있다. 산에 오르는 길은 무척 많다. 어떤 코스를 선택하는지에 따라 풍경도 달라지고 난이도도 결정된다. 산에 오르는 일은 살아가는 모습과 비슷하다.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듯이, 어떤 등산로를 택하는지에 따라 같은 산이어도 달라진다. 등산 초보에 바위 포비아. 고소공포증이 심해서 바위와 바위 사이에 있는 높이감은 발을 옮길 때마다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방출하게 만든다. 옆에 있는 사람의 도움이 없으면 한 걸음도 못 나갈 때도 있다. 이런 디폴트값을 가지고 족두리봉으로 호기롭게 향했다.


숲이 우거지고 오르막 내리막이 교차하는 둘레길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족두리봉까지 오르는 길 전체가 커다란 바윗길로 경사도는 체감 60도쯤 되는 것 같았다. 즉 다리에 힘이 없으면 몸이 앞으로 휘어져서 때때로 사족보행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친구는 등산화의 접지력을 믿으라고 했지만 미끄러움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윗길에서 위아래로 펼쳐지는 높이감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올라가도 비슷한 바위 경사는 계속 이어졌다. 아, 어쩌나, 난감했다. 열심히 사족보행으로 오르는 수밖에.


두려움과 과도한 운동량으로 반쯤 올라온 지점에서 혈당이 곤두박질쳐서 하늘이 노랬다. 내 당 보충제는 탄수화물이다. 사람들이 보건 말건 어정쩡하게 앉아서 다급하게 김밥 한 줄을 흡입한 후에야 두 다리에 힘을 찾았다. 배가 부르면 몸이 무거워서 올라가기 힘들다고들 하는데 나는 배가 고프면 당이 떨어져서 힘을 쓸 수 없어서 못 올라간다. 산에서 김밥 한 줄은 산삼과 같은 효험이 있다. 기력을 되찾고 나서 눈을 들어 둘러본 풍경은 산수화같았다. 멀리서 보는 것과는 다르게 웅장해서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산수화가 그려진 커다란 병풍 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두려움이 조금 진정되었고, 이따금씩 친구의 손을 잡고 무서운 구간을 올랐다. 족두리봉이 바로 눈앞에 있을 때,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기는 했지만 강수량이 얼마 안 돼서 보슬보슬 올 줄 알았다. 예보는 완전히 빗나가서 빗줄기는 우산을 휘게 할 정도로 강하고 맹렬했다. 천둥과 번개가 사납게 소리쳤다. 빗줄기가 너무 굵어서 족두리봉 바로 아래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북한산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은평구가 먹구름에 완전히 장악당해서 흔적도 없어지는 순간이 왔다.


멀리서 맑은 하늘의 빛줄기와 먹구름이 세를 겨루고 있었다. 거대한 자연의 힘이 느껴지는 순간이었고,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십 분쯤 지났을까? 우산을 썼는데도 옆으로 비가 오는 바람에 옷이 젖기 시작했고, 한기가 올라왔다. 이래서 산행할 때는 필요 없는 것 같아도 바람막이가 필수라고 했나 보다. 하지만 우비도, 바람막이도 안 가져와서 우산 아래서 머리만 안 젖게 하는 수밖에.



계속되는 비 때문에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하산하는 길은 액션 영화 촬영 같았다.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했다. 세차게 내린 빗물은 중력의 법칙을 맹렬히 보여주었다. 어디서 모였는지 굵은 물줄기가 아래로 서둘러 내려갔다. 어디서 이 많은 물이 나오는지 의아할 정도로 급류들이 바위와 바위 사이에 틈이 있는 곳에서 흘렀다. 급박하게 모여 흐르는 작은 소용돌이를 만드는 물살에 작은 돌들이 굴러 떨어졌다. 내딛는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고, 사족보행이 필요한 구간에서 우산은 방해물이었다. 움직이는 웅덩이에 발을 계속 담가서 등산화 안으로 물이 옴팡 들어가고, 옷은 다 젖어서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둥과 번개가 존재감을 계속 알렸다. 떨어질 위험이 있는 구간에 쇠로 만든 줄과 난간이 있었는데 젖은 손으로 만져도 되는지 불안해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람은 직접 상황에 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산에 가서 조난당하거나 계곡물이 불어 떠내려간 사람들의 뉴스를 보고 왜 궂은 날씨에 굳이...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이런 악조건의 기상에 처해지니 알겠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으면 절대로 산이나 계곡에 가면 안 되는 것을. 구조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무사히 산을 내려오긴 했지만 하마터면 뉴스에 나올 뻔했다. 고작 왕복 3km 길이였는데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다. 무사히 내려온 후 친구들이 한 마디씩 한다. 무서웠다고. 아무도 무섭다는 말을 안 하고 꾹 참았는데 다들 비슷한 마음이었다. 별일 없어서 하나의 추억으로 남았지만 저녁에 북한산 만경대에서 여성 등산객 두 명이 낙뢰에 맞아 한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중상이라는 기사를 봤다. 기사는 비가 올 때 산에서 대처법으로 마무리했는데 우리는 하지 말라는 거 다 했던 등산 바보였다. 아찔한 순간을 떠올리며 모공으로 바람이 슝슝 들어가는 것 같다.


거대한 자연에서 일어나는 기상은 인간의 영역 밖이다. 적당한 햇볕과 비는 축복이지만 지나치면 재앙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흔치 않은 소나기 역시 기상이변 때문이라니, 자연이 우리에게 화 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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