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살아있다, 무등산
2021. 2. 28. 일요일
산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같은 자리에 우뚝 솟아있어서 움직이지 않는 정물처럼 보인다. 이는 우리가 인간의 입장에서 산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산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살아있는 생명체다. 우리가 루틴을 만들고 똑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하루도 같은 날이 없고, 우리 모습이 변하지 않는 날이 없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매일 노화하고(엉엉), 매 순간 마음에서 나오는 진동의 파장이 다르다. 미세하게 다른 마음의 파장이 현재의 나를 형성하고 매일 조금씩 다듬는다. 무등산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연상시키는 산이다.
SRT 첫 차를 타고 광주로 향했다. 기차 안에서 일출을 맞이했다. 차창 밖 풍경은 산악지형인 강원도와 아주 달랐다. 너른 평야 지대를 계속 지나면서 해가 지평선에서 올라오더니 하늘에 붉은빛을 쏘아댔다.
기차 여행은 언제나 옳다. 스위스 작가 페터 빅셀이 <나는 시간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에서 기차 여행을 "사치스러운 구금"이라고 표현했다. 하루쯤 사치스러운 구금 시간을 보내며 보기 힘든 일출을 새벽 잠과 바꿀만 하다.
광주에 도착해서 '나주 곰탕' 한 그릇으로 꽉 찬 하루를 시작했다. 곰탕이 고기 맛이 별로 안 나서 일행의 의견이 분분했다. 일행은 맛없음 평가였지만 고기 맛이 안 나서 나는 흡족했고 저녁까지 속이 든든했다. 코스는 증심사-중머리재-장불재-입석대-서석대-중봉-증심사로 원점 회귀. 백악기에 만들어진 주상절리라는 데 '백악기'란 말은 화성을 지구 다음에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으로 개발한다는 말보다 더 안 와닿는다. -.-
증심사에서 중머리재까지는 은근한 오르막이다. 은근해서 별로 안 어려워 보이지만 가장 땀을 많이 흘리고 힘들었던 구간이다. 등산할 때 가장 힘들 때가 오르기 시작한 1시간이다. 관절과 근육의 RPM이 치솟기 때문이다. 이때는 오르느라 정신없다. 땀 한번 쏙 빼면 그다음부터 몸이 적응해서 바닥까지 내려간 에너지가 갑자기 회복되는 기분이다. 바닥을 치면 올라올 일만 남는다는 삶의 원리가 등산에도 적용된다. 그러니 바닥에 있는 거 같으면 조급해하지 말고 바닥에 있는 걸 받아들여야지. 중머리재에 도착할 때까지 정신도 없고 풍경도 닫혀있다.
중머리재에 닿으면 이때부터 격하게 애정하는 풍경이 펼쳐진다. 갑자기 광활한 평원과 능선을 사방에서 볼 수 있다. 몸을 360도 돌려서 이리 보고 저리 본다. 무등산은 무척 독특한 지형이다. 올라가는 구간은 다 너덜 바위(전문용어도 '너덜겅'이라고)이다. 다행히 돌은 얌전한 생김새이다. 넓적하고 평평한 돌들이 보폭에 맞게 이어진 계단이 등산로이다. 등산객과 산의 흙 유실을 막기 위해서 인공적으로 만든 것인지 원래 이렇게 생긴 건지 잘 모르겠지만 흙산이면서도 바위산이다. 이런 복합적 특성이 신기해서 검색을 했더니 풍화 작용이 한몫했다. 원래 화산이었단다. 용암이 분출해서 지금과 같은 지형을 만들었다. 입석대와 서석대가 화산산이라는 증거이고, 장불재와 중머리재의 평원은 풍화 작용의 증거이다. 무등산은 태어난 이래로 계절과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변했다. 신기해라. 죽은 억새들이 바람에 흔들흔들. 이때부터 가는 빗방울이 내리더니 하산 때까지 비가 제법 왔다.
중머리재부터 장불재까지 다시 오솔길 같은 계단 오르막이 펼쳐진다. 조릿대를 중간중간 볼 수 있다. 조릿대만 보면 제주도 생각이 난다. 조릿대를 처음 인식한 게(본 건 그전이지만 머릿속에 박힌 건) 11월에 갔던 제주도에서이다. 이때 본 조릿대 밭이 강렬해서 내 기억 회로에는 조릿대=제주도로 입력되어 있다. 조릿대는 제주도 한라산 영실과 녹고뫼오름을 자동 재생한다. 기억은 참 일관되고 집요하고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어떤 매개체만 보면 자동으로 플래시백이 된다. 사람의 무의식은 기억에 지배를 받고, 기억은 현재를 지배하는 것 같기도.
이런 돌계단 길을 한참 올라가면 중머리재를 넘고 장불재가 나온다. 재를 넘을 때마다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연이 궁금하다. 운동 삼아 레포츠로, 재를 넘는 현대인에게 '재'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대상이고 이국적 풍경에 대한 동경 대상이다. 과거에는 교통수단이 변변하지 않아서 두 발로 재를 넘고, 하루에 다 못 넘으면 자고 넘기도 했다. 이들에게 재를 넘는 일은 단순한 여흥이 아니라 볼 일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비도 안 됐을 길을 누군가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다른 마을에 볼 일이 있어서, 등등의 이유로 넘었을 텐데. 그 시절 그들은 원치 않아도 전문 트레커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많은 사연이 늘 궁금하다. 나는 왜 '재'만 보면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장불재에서 바라본 서석대로 가는 방향. 이런 평원만 보면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한다. 멀리 서석대가 안개에 싸여있다. 맑은 날도 좋겠지만 흐리고 안개 낀 산도, 참 좋다. 안개가 산을 감싸면 신비하고 따스하게 느껴진다. 물론 현실은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바람의 위력은 사람의 말소리도 묻히게 하고, 걸을 때 두 다리도 휘청거리게 할 정도였다. 바람은 전속력으로 온몸에 달라붙어 보이지 않는 이로 거칠게 묻고 잡아 뜯는 것 같았지만, 바야흐로 봄이다. 아무리 거칠어도 바람에 실린 기온은 추위가 아니라 따뜻함이었다. 풍경을 바라보는 마음이 안온했다. 모자도 벗겨져 머리칼이 갈라져 허공에 날리는데도 심신의 불일치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바람, 비, 안개의 콜라보로 중심을 잡고 안 넘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도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맑은 하늘 아래서 모든 게 선명할 때는 느낄 수 없는 포근함이 기억 세포에 저장되었다. 이제 무등산을 연상하면 푸근함이 따라다닐 것이다.
장불재에는 지붕을 덮은 큰 쉼터가 있다. 비바람이 불고 있어서 정말 고마운 공간이었다. 쉼터 안에 벤치에서 이런 호사스러운 풍경을 바라하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트레킹의 참맛이기도 하다. 고단한 육체 활동 후에 받는 시각적, 정신적 보상 덕분에 등린이도 자꾸 산에 가고 있다.
등린이에서 산악인(?)이 되어 가고 있는 중이 아닐까. 무등산이 오랜 시간에 걸친 풍화 작용으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듯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산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아지면서 내가 지니고 있는 선천성 겁도 풍화 작용을 거치고 있다. 근육과 관절도 어려움을 버텨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가까이서 본 무등산이 살아서 변하는 것처럼 나도 매일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다. 육체도 마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