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당역 찾아 삼만 리, 관악산

by 김남금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산은 크지만 등산로가 정해져 있어서 등산로만 벗어나지 않으면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동네 산은 작지만 길을 잃기 쉽다. 동네 산은 주로 주거 밀집 지역인 동네 몇 개에 걸쳐 있다. 이는 진입로가 무수히 많다는 말이다. 우리 동네에서도 올라갈 수 있지만 다른 동네에서도 올라갈 수 있다. 우리 동네에서도 진입로가 여러 곳에 있다. 내가 아는 길은 고작 하나나 두 개 밖에 되지 않아서 조금만 방향을 틀면 다른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말이다.


어제 오전에 과천 향교에서 진입하는 계곡길을 택해 연주대까지 갔다. 이 길은 친구랑 몇 번 갔던 길이라 바위의 생김새와 높이도 가늠할 수 있어서 나름 자신(?) 있었다. 계곡을 감싸고 양쪽에 봉우리들이 버티고 있어서 영하 12도였지만 바람 한 점 없고, 햇살도 눈부시고, 바위에 등산로에 소복이 눈이 내려앉아 달력 사진 속에서 걷고 있는 것 같았다. 한파라지만 오르막을 오르면 추위는 느낄 수 없다. 오히려 노천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몸은 발열 상태지만 대기에 노출된 얼굴에 닿은 바람은 차가워서 시원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꼭 아재 같네-.- 아무튼 여름에는 조금만 걸어도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서 빨리 지친다. 상대적으로 겨울에는 추위를 이기며 걷는 건 덜 지쳐서 애정 한다. 두꺼운 옷과 여러 가지 장비 장착 때문에 불편하지만 상쾌함이 그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기분 좋은 상쾌함을 즐기며 연주대까지 올랐다. 연주대 정상석은 기울어진 커다란 바위 위에 있다. 정상석까지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힘으로! 올라갔다. 뿌듯함 가득 안고 연주암에서 내려오는 사당역방향으로 난 길을 택했다. 관악산에서 사당역으로 내려오는 길은 여러 가지다. 사당역을 찾아 헤매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분명히 사당역 이정표를 따라 내려왔지만 갈림길을 여러 번 만났고, 어찌어찌, 실은 길을 안내해 준 지인의 발자취를 뒤쫓아서 열심히 걸었다. 그는 장신이라 다리가 길어서 그런지 성큼성큼 앞서갔다. 눈을 들면 그가 멘 가방만 나뭇가지들 사이로 살짝 보이곤 했다. 그는 산행이 서툰 일행 친구들과 나의 살아있는 나침반이었다. 나침반을 잃어버리면 안 되니 그의 발자국을 보고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관악산은 각종 모양의 바위들로 가득한 산이다. 저마다 존재감 뿜뿜하는 비정형의 바위들을 딛고, 또 딛고 가는데 어느 순간 눈 위에 난 발자국이 우리 일행 발자국 밖에 보이질 않았다. 내려가는 길은 점점 가팔라지고 험해졌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널 때 경사도 때문에 두 발로 내려가기 힘든 곳에서는 온몸 스킬(?)을 이용해서 건넜다. 온몸 스킬은 이렇다. 일단 엉덩이를 바위에 살포시 얹고 앉는다. 그다음 한쪽 다리를 먼저 최대한 뻗고, 발을 다른 바위에 먼저 착지한다. 그다음에는 엉덩이를 들어야 하는데 고소공포증이 작동하면 몸이 마비되어 엉덩이를 들 수 없다. 하지만 바위에 계속 앉아있을 수 없는 노릇. 먼저 내려간 친구가 바라보면 양손에 든 스틱을 친구에게 건네주고, 두 손으로 양옆 바위를 짚고, 내 에너지원인 김밥 먹은 힘을 다해서 엉덩이를 떼어 나머지 발도 바위에 착지하곤 했다. 내게 관악산은 이런 작업(?) 과정이 계속 이어지는 산이다.


산행이 서툰 일행들과 발을 디딜 때 조심할 곳을 서로 알려주며 두 발로 내려가기 힘든 곳은 온몸을 던져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갈 때, 고소공포증이 훨씬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 이런 일련의 강도 높은 도전을 하는데 어느 순간 등산로 폐쇄라는 푯말과 함께 전진 금지를 의미하는 밧줄이 쳐진 곳에 다다랐다. 군부대 길이며 낙상사고 다발 구간이라 폐쇄되었고, 좌측으로 가면 사당역, 우측으로 가면 관양능선이라는 안내가 쓰여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걸어 다니는 나침반은, 지도 따위는 보지 않고 동물적 본능만을 믿어 이 푯말을 무시하고 전진했다. 온몸 쓰기 기술로 하산을 시도했지만 계속 길이 아닌 가파른 바위 구간만 나타났다.


내가 아는 관악산에는 등산로 표시가 잘 되어있는데. 그리고 시가지가 보여야 사당역으로 가고 있는 건데...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계곡에 오를 때 양편에 봉우리들이 버티고 있었는데 바로 오른쪽 봉우리 뒤편에 있는 것 같았다. 산에 오면 인지능력 3세가 되지만 산은 몰라도 산 주변 동네는 잘 안다. 인지력 3세 아기일지라도 이 순간 만큼은 이 길은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길을 잃었을 때는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돌아가서 아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잘못 온 길에서도 배운 게 있다. 비정형의 바위들 틈에서 온몸 스킬로 겪었던 걸음이 입력되어 새로운 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바탕이 될 것이다. 결국 온몸을 이용해 내려갔던 가파른 바위들을 이번에는 온몸을 이용해 올라갔다. 올라가는 건 내려가는 것보다 다행히도 수월했다. 드디어 등산로라는 것을 알 수 있는 펜스가 둘러진 길이 나타났다.


눈에 익은 길을 걷고, 이렇게만 가면 사당역에 닿겠거니 했는데, 웬걸, 다시 시가지가 안 보이고 걷는 사이사이에 나타난 이정표에는 사당역은 사라지고 낙성대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바위들이 버티고 있고 걸을 수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위 때문에 시야가 좁아져서 길을 놓쳤는지 모른다. 다행히 가파르고 험한 바위 구간은 아니었지만 일행 모두 사당역에 이르는 길인지는 확신하지 못 했다. 산에 올라오는 등산객들에게 길을 묻자 사당역이 나온다고 답했다. 길을 잃었을 때 지도가 아니라 행인의 말에 의지하는 건, 경험상 더 길을 헤매게 되지만 이 순간에 지도가 아니라 행인의 대답에 의지했다. 사당역이 아니어도 일단 내려가야 하니까. 내려가면 사당역 뿐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아래로 아래로 가다가 '서울둘레길(사당역)' 이정표를 발견하고 우리의 살아있는 나침반은 방향을 틀어 이정표 쪽으로 올라갔다.


우리의 살아있는 나침반은 오작동했지만, 일단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나로 말하면 같은 산에 몇 번 가도 산에 난 길을 전혀 기억도 못 하는 길치 중에 길치이다. 산에 난 길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산을 벗어나면 말이 달라진다. 사당역은 내 나와바리다. 사당역은 관악산 훨씬 밑에 있지 산자락에 있지 않다! 서울둘레길(사당역) 이정표는 사당역방향이라는 뜻이지 사당역이란 뜻이 아니다.그 지점에서 다시 올라가는 길을 택하면 다시 산자락으로 진입해서 사당역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이정표를 무시하고 무조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사당역과는 영영 상봉 못 하고 계획에 없던 둘레길을 걸을 것만 같았다. 둘레길에 난 사당역을 보고 계속 걸으려는, 오작동하는 나침반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다시 걸어다니는 나침반으로 작동했다. 마침내 우리는 산자락에서 벗어나서 사당역 6번 출구로 갈 수 있는 지면에 도착했다. 바위를 건너 '사당역 찾아 삼만 리'가 막을 내렸다.

허허 웃음이 나왔다. 관악산, 너는 나에게 있는 새의 눈물만한 자신감을 비웃고, 매번 내 기대를 배반하며 참 일관되게 나를 단련시키는구나. 곁을 잘 안 내주는 너의 까칠한 모습이 이제 낯설지 않아. 다음번에는 어떤 까칠한 모습을 보여줄지 은근 기대를 품게 되니, 바위 공포증과 고소공포증 극복 프로젝트는 잘 되어가고 있는 거겠지...?

덧. 걷느라 정신이 없어 사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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