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법칙, 청계산

2021. 2. 11. 목

by 김남금


1만 시간의 법칙이 있다. 1만 시간은 하루에 3시간씩 10년이 걸려야 채울 수 있는 시간이다. 무언가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어느새 전문가로 불리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어떤 것을 잊지 않고, 잘하든 못하든 매일 3시간씩 하는 동안10년이 흐르면 잘 알고 잘 하게 된다. 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믿는다. 믿는 것과 별개로 중간에 그만두는 일이 더 적성에 맞아서 그렇지-.-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성과 없이는 지속할 동기를 찾기 힘들다. 조급해 하지 않기도 힘들고, 주변의 반응을 무시하기도 힘들다. 진정으로 즐기지 않으면 무언가에 1만 시간을 투자할 수 없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즐기는 사람이 고수가 되고 전문가가 된다. 즐기려면 천천히 자신만의 속도로 가야 한다. 1만 시간에 이르는 길은 즐기지 않으면 이를 수 없는 길이다.



겨우 다섯 번 청계산에 다녀오고 1만 시간의 법칙을 들먹이고 있는 이유는 내 등력 발전을 말하고 싶어서다. 타고나길 운동 신경이 좋은 사람은 이해 못 하고, 등산 전문가 반열 문턱에도 가지 못했지만 나만 아는 내적, 외적 변화가 있다. 청계산은 흙산이지만 중간중간에 돌로 된 구간이 조금 있다. 3년 전 이맘 때쯤 친구들과 처음 청계산에 갔다. 남들은 운동화 신고도 오르는 봉우리인 옥녀봉까지도 못 갔다. 돌길에서 발과 다리에 힘을 주는 법을 몰라서 두 다리가 흔들거렸다. 흔들리는 다리로 속도를 낼 수 없어서 친구들과 속도를 맞출 수 없었다. 친구들을 옥녀봉으로 올려 보내고 나는 올라가던 길에서 등을 돌려 등산로 입구로 다시 내려왔다. 등산로 입구에 있는 벤치에 혼자 앉아서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친구들을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두 번째 갔을 때는 무서움을 참고 열심히 걸었다. 세 번째 갔을 때도 모두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으려고 의연한 척했지만 살짝 무서웠다. 산에만 가면 두려움이 디폴트 값이였고, 여전히 변함없다. 산에서 늘 몸과 마음이 살짝 긴장 상태에 놓인다. 사진을 보면 즐거운 표정이 아니라 긴장이 묻어나서 언제나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다. 웃긴 웃어야 하는데 내가 웃는 게 아니야...



네 번째 갔을 때 드디어 안 무서웠다. 디폴트 값이 바뀐 내가 낯설었다. 어제 청계산 산행은 일종의 변곡점이었다. 다섯 번이나 갔더니 길도 외울 정도였다. 산길을 구별하는 일이 가능하다니 신기하기만 했다. 몸과 마음이 익숙한 긴장에서 해방되어 낯선 자유로운 상태였다. 그렇다고 산을 좋아한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아직은 산을 알기 위해, 친구 따라, 산에 간다. 즉 가장 하수 레벨이다. 좋아하고, 즐기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어제 내가 걷는 걸 보더니 산책하는 것처럼 걷는다고 말했다. 청계산은 어려운 산은 아니지만 옥녀봉까지는 계속 오르막이고, 옥녀봉에서 매봉까지 1400개가 넘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트레킹을 시작했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르막이 약간만 있어도 RPM이 치솟았다. 얼굴로 열이 올라와서 빨개지고 어지럼증이 찾아와서 하늘에서 별이 보이곤 했다. 이러다 심장이 터지는 건 아닌가, 했다. 이제 심장이 터질 것 같지도 않고, 김밥의 힘이 필요하긴 하지만 어지럼증도 조절할 수 있다. 숨이 조금 가빴을 뿐이고, 돌무더기 구간도 안 무서웠다. 반복의 힘이다. 같은 상황에 반복적인 노출로 앞에 어떤 상태의 길이 펼쳐질지 정보 축적을 하게 된다. 두려움은 경험적 무지에서 나온다는 말이 등산에도 해당한다. 이런 거 보면 세상의 모든 이치는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



청계산을 정복(?)하고 의기양양하게 내려와서 '고씨네 국수'에서 이른 저녁을 먹었다. 어제 청계산 산행의 하이라이트는 고씨네 국수였다. 미나리전, 들깨수제비, 도토리묵과 어울리는 막걸리 두 잔으로 마무리했다. 미나리전은 처음 보는 요리법이었다. 미나리에 쌀가루를 묻혀 쑥 범벅처럼 채반에 나왔다. 몸을 쓴 후에 맛있는 음식과 달달한 막걸리 한두 잔이 주는 극히 단순한 즐거움에는 옹졸한 마음을 너그럽게 바꾸는 마법이 있다. 음식 앞에서 한없이 너그러워진 우리는 식당 사장님의 음식 솜씨를 치켜세웠다. 사장님은 우리 테이블에 와서 잠시 앉았다. 사장님은 손님들이 일부러 찾아오고, 조금 더 늦은 시간에는 앉을 자리가 없다고 우리에게 운 좋다고 했다. 우리는 테이블을 차지해서 횡재한 것 같았다. 산에서 우연히 내려온 시간이 고씨네 국수가 덜 바쁜 시간이라니. 진짜 새해가 시작하는 다음 날부터 한 해 운이 상승할 것만 같았다. 벽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진지하게 일독하고 다음에 와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 계획을 세웠다. 사장님의 눈과 입은 진심으로 웃고 있었다.



고씨네 국수 사장님은 미나리전에 1만 시간 중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미나리전에 우리가 보낸 감탄은 사장님이 보낸 1만 시간의 한 부분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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