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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Apr 06. 2021

진정한 용기는 경험을 지혜로 만드는 것

<아주르와 아스마르>


개봉했을 때 보고, 다시 봤는데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 스페인 그라다나의 알람브라궁전이 배경이었다고 기억하는데 다시 보니 모로코의 페즈, 카사블랑카 등 이슬람 문화권에 있는 여러 도시의 특징이 섞여 배경으로 사용된다. 집 내부는 화려한 알람브라궁전, 거리와 구시가인 메디나는 페즈, 문은 카사블랑카....


내용은 간단하다. 어린 두 소년이 자라서 바다 건너 요정 진을 찾아 모험을 떠나 요정을 구출해서 배우자를 얻는 해피 엔딩이다. 두 소년의 관계는 특별하다. 아주르는 파란 눈의 백인 귀족이고 아스마르는 사라센인이고 아스마르의 엄마는 아주르에게 젖 먹여 키운 유모 제난이다. 제난은 두 아이를 똑같이 사랑으로 키우는 모성의 포용력을 상징한다. 귀족인 아주르의 아버지는 부성 혹은 1세계를 상징하는데 권위적이고 인간에 대한 몰이해로 효용성과 당위성을 추구한다. 그는 아주르가 크자 기숙학교로 보내고 제난과 아스마르를 더 이상 필요 없다며 쫓아낸다. 제난은 고향인 사라센에서 상인으로 부를 축적한다. 그녀가 부를 일굴 수 있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나라는 두 개고, 2개 국어를 말하고, 종교도 2개지." 사라센인이 파란 눈은 불행을 가져온다는 미신을 맹신할 때 제난은 미신을 믿지 않고 1세계의 합리성과 이성을 사용해서 부자가 되었다. 타문화에 대한 수용력을 지니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더구나 그 문화에서 상처를 받았다면 더더욱.


제난의 아들 아스마르는 아주르의 아버지 때문에 인종과 계급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똑같이 둘을 대했는데 어느 날, 아주르는 귀족이 받는 사교육을 받고 아스마르는 주변인으로 전락한다. 아스마르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집에 찾아온 아주르를 적대시한다. 그는 요정 진을 찾아 떠나는 모험에서 경쟁심으로 불타 아주르를 경계한다. 아주르를 이기고 싶어 하지만 목숨이 위태로울 때 아주르의 도움을 받아 화해한다. 평등했던(실은 평등했다고 믿었던) 어린아이들이 계급을 의식하게 되는 계기는 어른 세계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아스마르는 사라센 거부의 아들로 살고 있지만 아주르 앞에서 베푸는 마음을 미처 갖지 못한다. 반면에 아주르는 특별한 인물이다. 사라센인 유모 손에서 길러졌기 때문일까? 아주르는 사람과 사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다른 사람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습득한 지혜로 상황을 헤쳐나간다. 두 문화권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이랄까.


사라센에 떠돌이로 살아가는 아주르와 같은 파란 눈의 백인은 아주르의 아버지와 함께 1세계 시선을 대표한다. 사라센의 모든 것을 더럽게 본다. 야자나무숲, 거리... 음식도 맛없다고 불평하고. 사라센인의 도움으로 살아가면서도 사라센의 모든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노력을 가로채는 술수를 부린다. 기회주의자로 현대인과 가장 닮은 사람이라 애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요정 진을 구하러 가는 모험에서 떠돌이는 우리처럼 자신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아주르와 아스마르가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떠돌이는 겁 많고, 신변에 위협을 느끼면 잽싸게 목표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선다.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세상은 각기 개성이 다른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누군가는 학문에 힘쓰고, 어린 공주는 성에 갇혀 공주 수업을 받고, 상인은 사람을 부리고, 용감한 이는 사랑을 찾아 나선다. 오디세이 형 이야기에서 영웅은 행동하는 사람이다. 지혜를 갖추고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조력자일 뿐이다. 그들은 용감한 이에게 행운의 무기를 준다. 적의 무리를 따돌릴 안개가 담긴 병, 먹으면 맹수와 대화할 수 있는 사탕, 날아갈 수 있는 깃털. 이 행운의 물건은 일시적이다. 안개는 사라지고, 사탕은 녹아버리며 깃털은 날아간다. 행운은 위기를 모면하게 도와주긴 하지만 목표까지 이르게 하진 못 한다. 상황을 모면하고 집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목표(요정 구출)를 향해 전진할지는 용기와 타고난 기질에 달려있다. 이 영화는 영웅담이다. 그러므로 주인공 아주르와 아스마르는 힘을 합해 요정을 구하는 테스트를 다 통과한다.


요정은 하나이고 왕자는 두 사람. 사랑의 작대기는 하나씩만 허용이 되는 터라 요정의 사촌 요정이 소환되어 결국 해피 엔딩이 된다. 사라센 요정과 백인 왕자, 백인 요정과 사라센인의 사랑의 작대기가 완성되어 인종과 계급 화합을 나타낸다. 성인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인간의 다양성 존중을 말한다. 단순히 선이 악을 이기는 게 아니다. 선과 악의 개념은 모호하다. 문화가 다르면 선과 악의 개념도 달라진다. 파란 눈이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는 것처럼. 어떤 문화에 속해 있든 경험을 진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지혜를 발휘할 때 세상을 얻는다. 누구나 경험을 하지만 떠돌이처럼 자신의 문화에 갇혀 배타적이 되어 근근이 살아갈지, 아주르처럼 진취적으로 살아갈지는,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다. 운명론이 지배하는 모험 영화의 세계에서 이 영화는 개인의 의지와 선택을 강조해서 색다른 결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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