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 May 13. 2021

기억을 붙잡는 방법

<노매드랜드> 리뷰

사람의 기억은 유통기한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희미해지고 그때 느꼈던 감정만 남는다. 기억 보존은 사건 자체와 사건을 겪었을 때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사건이든 감정이든 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과거 를 보존하려는 욕구는 사람의 기본 욕구이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 사람들은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렸고, 문자 발명 이후에는 글로 기록했다. 내가 장수 블로거로 사는(?) 이유도 휘발되는 느낌과 기억을 잡아두기 위해서이다. 동굴인들이 주된 일상을 벽에 그림으로 남겼듯이 나는 보고, 읽고, 경험한 일부를 블로그에 남긴다.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밴에서 사는 방랑자가 된다. 떠도는 삶은 정주하는 삶보다 몇 배는 고단하다. 펀은 왜 이 고단한 삶을 택했나? 대체 기억하고 싶은 게 무엇이길래.



영화 전반부에는 밴이나 트레일러에 사는 사람, 즉 방랑자의 일상을, 주인공 펀의 시선을 통해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펀은 한겨울에 난방 시설 없는 밴에서 몸을 한껏 웅크리고, 이가 덜덜 떨리는 한기 속에 산다. 밤이면 어둡고 좁은 밴에서 무표정하게 샌드위치를 먹거나 커피를 마신다. 낮에는 닥치는 대로 일한다. 엠파이어란 예쁜 이름의 마을이 석회 탄광의 폐쇄로 없어지기 전, 펀은 다르게 살았다. 지붕이 있는 집에서 남편과 살았고, 인사과에서 일했으니 사무실에서 일했을 것이다. 탄광 폐쇄로 남편은 죽고, 일자리는 없어졌고, 사람들이 떠나니 마을 자체가 없어졌다. 그 후 펀은 운이 좋으면 아마존 택배 일도 했고, 캠핑장 도우미가 되기도 했고, 청소며 몸을 쓰는 일은 무슨 일이든 한다. 그래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 밖에 못 번다. 낡은 밴의 수리비가 없어서 언니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 이런 일상을 아주 클로즈업해서 건조하게 보여준다. 어떤 감정도, 가치 판단도 들어가지 않은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서 입안이 까끌까끌한 느낌이 들 정도다.



왜 이렇게까지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줄까? 감독 인터뷰를 찾아보았다. 감독은 방랑자들의 문제를 영화에서 이슈화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감독은 베이징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혼자 중학교 때 미국에 가서 자랐다. 십 대 후반에 이민자가 되어 느꼈을 외로움과 척박한 마음을 무채색의 사막 풍경과 펀의 무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펀은 왜 길 위에서 살기를 '선택'했을까. 언니는 자기 집에서 살기를 제안했고, 펀에게 호감을 느낀, 길 위에서 만난 남자도 아들 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펀은 닫힌 공간에서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열린 자연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며 사는 것이 죽은 남편, 마을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가까운 이를 하늘로 보낸 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과 사물에서 그 사람의 파편을 찾아내는 정신은 동양적이다. 사막 위를 스치는 바람에서, 태양에서, 스치는 사람들에서 사랑하는 이의 존재를 포착한다. 죽음이 닫힌 세계가 아니라 생의 다른 모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펀을, 영화 후반에서야 이해하게 된다. 길 위에서의 삶은, 남편에 대한 애도이며 자신이 터를 잡고 살았던 사라진 마을에 대한 애도이다. 펀은 밴을 타고 광활한 자연을 떠돌며 죽음도 삶의 거대한 여정의 일부라고 믿는다.



영화 보면서 잭 케루악의 소설이 계속 연상되었다. 집에 와서 무려 11년 전에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On the Road>을 읽고 기록했던 감정이 무엇인지 뒤적였다. 블로그에서 내 감정의 파편을 찾는 게 가능하다. <길 위에서>는 비트 세대, 호보 이야기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영화 속 펀과 책 속 화자인 딘은 영혼이 닮은 노매드다. 잭 케루악의 딘이 대도시 LA로 가서 느낀 감정은 이렇다.



"Sobbing came from within. I could hear everything, together with the hum of my hotel neon.I never felt sadder in my life. LA is the loneliest and most brutal of American cities; (...) LA is a jungle."(86)


딘의 마음과 펀의 마음이 겹친다. 펀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는 도시나 지붕이 있는 집으로 가지 않는 이유를 딘에게서 읽는다.



덧. 나중에 기회 닿으면 네브래스카에 가 보고 싶다. <대부 2>에서 알 파치노가 잔인한 짓 많이 하고(형도 죽이고) 별채 거실에 앉아있는 모습이 있다. 거실 창은 사방이 유리고, 유리 너머로 보이는 건 하얀 눈이다. 알 파치노가 넘버 원의 위치를 공고히 했지만 넘버 원의 고립을 강조하는 장면이다. 여기 배경이 네브래스카이다. 그 외에도 <네브래스카>란 제목의 영화도 있고, 프란시스 맥도먼드가 주연한 영화들 중 네브래스카 배경이 몇 편 있다. 영화에서 네브래스카는 전체 서사에서 독립해서 네브래스카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된다. 네브래스카의 스산한 풍경 자체에 정서적 매혹이 있다. 우리로 치면 한적하고 폭설이 내리는 강원도 산간 마을 같다고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진정한 용기는 경험을 지혜로 만드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