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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Jul 09. 2021

어머님도 사모님도 아닙니다


여자가 일정한(?) 나이를 넘으면 원치 않아도 ‘어머님’ 또는 ‘사모님’으로 살게 된다.

 

어느 날 은행에 갔을 때였다. 삼십대로 보이는 직원이 나를 계속 사모님으로 불렀다. 직원은 사모님이란 단어에 고객에 대한 존중을 담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내가 왜 사모님인가요?’라고 따지고 싶었었다. 목까지 올라오는 말을 꿀꺽 삼켰다. 볼일을 보고 나왔다. 은행 본사에 전화할까, 생각했다. 직원이 ‘나이 든 여성’ 고객에게 사모님 대신 ‘고객님’이란 말을 사용하도록 시정했으면 좋겠다고.      


몇 년 전 다녔던 요가원에서 강사는 다정하게 말끝마다 ‘어머님’이라고 붙였다. 마치 연인에게 ‘자기’라고 부르는 것처럼.

“일찍 오셨네요, 어머님.”

“지난번에는 왜 안 오셨어요, 어머님?”


어머님이란 호칭에 다정함을 담는 것도 불편했지만 정정하기도 불편했다. 하루는 어머님이라는 말에 불쑥 “저 어머니 아니에요”라고 말해버렸다. 강사는 뜻밖의 내 말에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음, 내가 어머님이 아닌 것을 밝힌 후 강사는 나를 회원님이라고 불렀고, 사근사근한 말투도 거두어갔다.      


어머님이라고 처음 불렸을 때, ‘저 어머님 아니에요.’라고 또박또박 말해서 상대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매번 호칭에 대해 반론을 제기할 수 없 노릇이다. 은행 같은 일회성 방문지에서는 이제는 그냥 어머님이나 사모님이 되는 게 편하다. 요가원 같은 곳, 즉 규칙적으로 가는 곳이지만 거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얼굴만 아는 사람이다. 이런 경우에는 굳이 비혼이라는 정체성을 밝히지 않는다. 매번 비혼이라고 ‘정정’하는데도 열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 의지와 무관하게 어머님이나 사모님으로 살고 있다. 내 정체성을 다른 사람들이 규정해주는 일이 해가 바뀔수록 늘어난다.     


친근함과 다정함을 표현할 때는 어머님을, 존중을 담은 마음을 사모님이라는 호칭에 담게 되었을까?   


한국 사회에서 졸업, 취직, 결혼, 출산의 생애주기 모범 답안이 있는 탓이다. 이 주기에서 벗어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모범 답안은 여전히 힘이 세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해서 아이가 있을 거라는 대전제는 곳곳에서 고개를 든다. 비혼도 있고 결혼했어도 아이가 없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인생 주기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다. 먼저 결혼했는지, 아이가 있는지를 물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얼마 전 집 리모델링 때문에 한 업체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만났다. 상담하면서 예산보다 비용이 훨씬 초과하는 바람에 내 예산을 말했다. 디자이너는 “아저씨한테 (비용이) 더 필요하니 더 달라고 하세요.”라고 말했다. ‘아저씨라뇨? 비용은 내가 낼 건데’라고 속으로 말했다. 이 업체와 계약을 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 내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이 업체 이외에 다른 업체 직원과 상담할 때도 비슷했다.

“자녀 방에도 붙박이장 하실 건가요?”

“아이들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네 군데 업체 대표나 직원과 상담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주부이고, 아내이고, 엄마여야 했다.     


어머님이나 사모님 호칭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말에는 한 사회가 주요 가치로 여기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람들의 언어 습관에는 사회를 지배하는 의식과 문화가 스며있기 마련이다. 중년 여자는 어머님이나 사모님이라는 등식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바로 우리 사회 뿌리 깊은 가치관이 있다. 정해진 생애주기를 따라야 한다는 거대한, 그러나 보이지 않는 압력을 에둘러 말한다.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이성애를 기반으로 하는 ‘정상 가족 신화’ 울타리에 갇혀있다. 비혼도 있고, 동거 커플도 있고, 동성 커플도 있고, 이혼이나 사별 등의 이유로 1인 가구도 있는데 말이다.      


비혼이나 이혼 또는 사별로 혼자가 되면 가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1인 가구’로 부른다. 2인은 가정이라고 부르지만, 1인 가정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가구와 가정을 구별하는 말은 홀로 사는 것은 그 자체로 온전한 삶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일상 언어에서 구별 짓는 언어를 계속 쓰는 한 정상 가족에 대한 모범 답안이 계속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 힘이 이어지는 한 나는 계속 어머니가 되길 강요받아 ‘가짜 어머니’로 살아야 할 것이다.     


중년 여자를 무조건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 연봉은 얼마인가요?’란 말만큼 무례하다. 어머니라는 말이 친절함과 다정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무례한 태도이다. 선의에서 나오는 ‘순진한 무례함’ 속에 던져질 때마다 다르게 사는 것을 지적당하는 기분이 들곤한다.




덧. 브런치 태그 키워드에 비혼을 달 수 있을 때가 있고, 달 수 없을 때가 있다. 이유가 뭘까? 비혼이란 키워드 대신 미혼, 싱글, '노처녀'란 키워드만 사용 가능할 때가 종종 있다. '노처녀'란 키워드를 보고 새삼 놀랐다. 태그에 비혼이란 키워드가 없으면 키워드 검색으로 안 뜨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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