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 Jul 03. 2021

보호자 없으세요?

"내가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병원비 결제할 사람도 난데 왜 보호자가 필요하죠?"


몇 년 전 일이다. 밤에 자다가 갑자기 흉통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자고 있던 동생을 깨워서 함께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 의사는 심전도, 엑스레이 등 내가 봐도 도움 안 될 것 같은 검사 몇 가지를 하고, 수액을 놓은 후 이틀 뒤에 외래로 오라고 했다. 난데없는 소동을 부린 후 흉통은 사라졌지만, 식도 통증 탓에 물도 마시지 못하고 이틀을 보내고 병원에 갔다. 담당 의사는 탈수증이 심하니 즉시 입원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원인은 모르고 입원하라니 어리둥절해서 입원 절차를 밟으러 원무과에 갔다. 원무과 직원은 입원하려면 보호자를 부르라고 했다. 보호자가 없으면 입원이 안 된다고.      


원무과 직원은 “규정상 보호자가 없으면 입원할 수 없습니다.”란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비논리적인 규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조건부 타협을 얻어냈다. 일단 입원하고, 보호자가 나중에 와서 서류에 사인하는 수속 절차를 마치라고. 병실을 배정 받은 후 집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했다. 입원하는데 보호자가 필요하니 슬리퍼와 수건 등을 챙겨서 와 달라고 부탁드렸다. 엄마는 입원이란 말에 놀라서 병원에 오셨다. 환자복을 입은 나는 엄마와 함께 원무과에 갔다. 엄마가 한 일은 원무과 직원에게 얼굴을 보여준 것이 전부였다. 입원서류에 보호자 사인을, 즉 엄마 사인을, 내가 했다.      


내가 거동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의식이 없는 것도 아니라 노모가 곁에 있는 게 불편했다. 수술받는 것도 아닌데 검사실 밖 벤치에 엄마가 힘들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엄마를 집에 보내드리고, 혼자 이런저런 검사를 받을 작정이었다. 혼자 하룻밤을 가입원실에서 보낸 후 아침 회진 시간에 주치의와 레지던트들에게 들은 말은 “보호자는요?”였다. 나는 “보호자가 있어야 하나요?” 반문했다.      


오전부터 몇 가지 검사를 해야 했다. 이때 10번도 넘게 들은 말이 바로 "보호자 없으세요?"였다. 그때마다 나는 "검사하는데 보호자가 있어야 하나요?"하고 되묻곤 했다. 간호사나 검사실 선생님들은 "아니요."라고 답했다. 아, 내 보호자는 나란 말이다! 이 진실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또 한 번은 알 수 없는 위통 때문에 수면 위내시경과 위산도를 측정하는 검사를 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역시나 보호자와 함께 와야 한다고 했다. 엄마를 빌려야 했다. 나이 들어서 등이 잔뜩 굽고, 키도 줄고, 눈도 어두운 엄마. 엄마는 보호자로 대기실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딸이 부실해서 보호자로 병원에 자꾸 호출되는 엄마. 엄마가 하는 일은 간호사에게 보호자로 얼굴을 보여주고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겁부터 먹는 엄마, 이제는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말이다. 엄마는 병원 대기실에, 종종 앉아 계시곤 한다.    


보호자란 말은 ‘어떤 사람을 보호하고 책임질 사람’이란 뜻이다. 오십이 넘은 사람을, 나 아닌 누가 보호하고 책임진단 말인가? 특히 비혼에게 보호자는 나 자신이다. 수면내시경 할 때 보호자가 직계 가족이 아니라 친구여도 된다고 했다. 아니, 내가 검사받는데 친구에게 보호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기 쉽지 않다. 각자 다 자신의 일상으로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부탁하면 와 줄 친구가 없진 않지만, 이 카드는 더 긴급한(?) 상황을 위해 아껴두어야 한다. 단순히 검사를 위해 쓰는 건 무리수다. 비혼은 모두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내가 병원에 있는 시간에 친구들은 모두 일터에 있다. 이럴 때 선뜻 병원에 같이 가 달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 한 사람 정도는 만들면 좋겠지만, 이건 환상이 아닐까?     


몇 년 전에 흑심(?)을 품고 연애를 했다. 어릴 때는 데이트가 재미있어야 했다. 일부러 프로그램(?)도 짜고 맛집을 가거나 여행 가곤 하는 계획을 세운다. 웃프지만 이제 나에게 이상적인 연애 상대는 함께 병원에 갈 수 있는 사람이다. 더 늙으면 병원에 엄마 대신 손 잡고 갈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환상이었는지 깨달았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였다. 양발가락 뼈 골절과 오른쪽 발목 인대 파열로 수술해야 했다. 친구들은 사고 소식을 듣고는 수술한 다음 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고, 시간 날 때 보러 왔다. 남자 친구란 사람은, 오랜 시간 만난 친구들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고, 정말 달랐다. 다른 의미에서.      


그는 병원에 입원한 날에 전화로 수술 소식을 듣고, 수술 잘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럴 수 있다고 나를 다독였다. 문제는 수술 다음 날이었다. 전화도 아니고 카톡으로 일주일 후에나 보러 올 수 있다고 했다. “바쁘면 꼭 안 와도 되는데 여자 친구가 수술하고 누워있는데 궁금하지 않은 게 섭섭해.”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연애는 내가 꿈꾸는 연애가 아니었다. 나는 아플 때 서로 위로가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를 원했다. 좋을 때만 만나서 웃다가 헤어지는 관계는, 나에게는 사랑이 아니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만나는 관계를 위해 내 감정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괜찮다고 했지만,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둥둥 떠다녔다.      


내가 있는 병실에 척추 시술을 받은 여자 환자가 입원했다. 토요일 오전에 시술받고 월요일 오전에 퇴원하는 환자였다. 다행히도 2차 병원이라 보호자 없이도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었다. 2박 3일 같은 병실을 쓰는 동안 전화하는 소리도 못 듣고, 침대 사방으로 커튼을 치고 자신의 침상만 지켰다. 나처럼 딱히 어디에 알릴 데 없는 비혼이라고 추측했다. 퇴원하는 월요일 아침, 그녀는 전화를 받으며 울화를 큰 소리로 터트렸다. "너는 와이프가 죽어도 친구들이 중요하지. 블라블라" 그러니까 그녀는 나와 상황이 다르지만 어쨌든 스스로가 보호자였어야 했다.      


보호자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특히 병원에서 말하는 보호자란 누구일까? 만약에 있을 수 있는 의료 사고에 대비해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서류에 서명하는 사람?     

 

나는 혼자 '잘' 살고 있다. 경제 활동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일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안다. 같이 늙어가는 비혼 친구들과 느슨한 연대도 있다. 미래를 대비해 이런저런 궁리를 하며 설계도 거의 혼자 결정한다. 완벽한 인생은 없듯이, 부족한 게 많아도 그럭저럭 혼자 닥친 일을 해내는 편이다. 평소에는 보호자의 ㅂ자도 아쉬운 게 없는데 병원에만 가면 병원이 보호자 타령을 하는 바람에 갑자기 무언가 크게 결핍된 사람이 되곤 한다. 이럴 때마다 마음이 쭈그러들곤 해서 노화하는 육체에 겁을 먹는다.     

 

미래가 불안한 청년, 양육과 가사 노동의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에 대한 담론은 활발한데 상대적으로 비혼, 특히 중년 비혼 여성은 사회적 담론에서 배제되어 있다. 밥벌이 걱정만이 아니라 노화하는 육체로 늘어나는 기대수명을 살아내는 게 두렵다. 집에서는 부모님이 늙어가시는 터라 병원에 보호자로 따라갈 일이 잦다. 결혼해서 출가한 형제들은 자신의 가족사로 정신없다. 늙은 부모를 챙기는 일은 자연스럽게 비혼의 몫으로 돌아온다. 귀가 어두운 부친은 상대가 하는 말을 얼른 못 알아들어서 병원에 혼자 가실 수 있어도 첫 진료나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모시고 가야 한다. 특별히 지병이 없어도 일정한 나이를 넘어 육체에 한 살씩 더해지면, 안과, 치과, 정형외과 등에 일상적으로 드나들게 된다.       


내가 우리 부모님 나이가 되면 어떡하지? 내가 못 알아들은 의사나 간호사 말을 누가 옆에서 다시 설명해주지? 


가족이나 친구가 아니라 시스템이 해주길 바란다. 비혼 친구들과 하는 말이 있다. 간병인이 최고라고. 두 달 동안 입원했을 때 내 손과 발이 되어준 사람은 간병인이었다. 내가 어디가 불편한지 편하게 말하고, 필요한 바를 요청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보살핌받는 것이 미안해서 빚진 마음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간병인이 답이라는 것을 알지만, 간병인에게 드는 비용이 적지 않다. 내가 우리 부모님 나이가 되면, 자식이 없어도, 배우자가 없어도, 친구가 없어도, 돈이 없어도, 마음 편히 돌봄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또 병원에 동행만 해주는 간병인 제도가 생기길 꿈꾼다. 현재 1인 가구 병원 동행 서비스가 시행 중이라는 반가운 뉴스를 보았다. 아직 초기 단계이고, 노인 인구는 늘어나서 비용이 많이 드는 제도라 잘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잘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 간병인 시스템으로 쇠락하는 육체에 대한 두려움과 돌봄 부재 불안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꿈꾼다.      



덧. 

서울시에서 2021년부터 '1인가구 병원 안심동행서비스'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강해서 서비스를 이용할 일 없는 게 좋겠지만, 서비스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다. 2022년에는 중장년이면 다인가구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https://blog.naver.com/haechiseoul/22268613448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