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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Aug 27. 2021

축의금 대신 책값 받아요

결혼식은 주변에 있는 지인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의식이자 의례이다. 그런데 비혼식은 없다. 비혼은 혼자 사는 삶을 공개적 선언을 할 기회가 없고, 축하 받을 기회는 더욱 없다. 비혼은 혼자라는 이유로 공식적 '축하 문화'에서 소외되곤 한다. 이를 인식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축하 의식을 선사하는 이벤트를 기획하는 흐름이 있다는 뉴스 기사를 읽곤 한다. 


자신을 위한 선물로 풀 메이크업하고, 옷을 골라 입고, 프로필 사진을 찍는 이벤트를 열곤 한다. 결혼식이 둘이 사는 것을 공개적 응원받는 행사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벤트를 열어도 '축하 구실'을 스스로 기획해야 한다. 이는 적극적이어야만 하는데 나는 덤덤한 성정이라 나를 위한 이벤트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대신에 틈나면 여행을 떠나고, 여행이 나를 위한 의식이었다. 여행을 떠나며 공개적으로 말하기 곤란할 때가 많다. 여행은 미묘한 주제로 축하 받을 이벤트로는 적절하지 않다. 여행에는 시간과 비용이 들고, 여행을 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소외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내 여행 이야기가 아니면 지루해서 여행의 흥을 가진 사람들과만 공유할 수 있다. 물리적, 심리적 여유를 가진 사람이 아니면 귀 귀울여줄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다. 이 '여유'는 물론 만들기 나름이고, 꼭 만들어야 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지난 해 여행 에세이를 출간한 후 예상치 못한 감정을 겪었다. 

"책 냈다며?"

원래도 연락을 자주 하진 않았지만 코로나19로 더 뜸했던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카톡 프로필 사진에 <어서 와, 혼자 여행은 처음이지?>  책 앞표지를 걸고, '책 출간했어요!'란 상태 메시지를 썼다. 간접적으로 모든 카톡 친구에게 출간을 알린 셈이다. 연락 뜸했던 지인들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 지인은 통 크게 10권을 주문하고, 인증 사진까지 찍어서 보냈다. 


"이게 다 빚인데 언제 갚아."라고 카톡을 보냈다.

"나 결혼할 때 축의금 많이 내."란 답이 왔다. 

"당연하지! 결혼이나 하셔!"

우리는 안다. 축의금으로 빚 갚을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 술값으로 갚을 거라는 것을.


지인들이 보내 온 관심에 갑자기 내가 주인공이 된 거 같았다. 특히 연락 뜸한 지인들까지 설렌다고 메시지를 보내오고, 책을 주문하고 주변에 홍보하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예약판매를 시작한 이틀 동안 나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이 기분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좋았다. 


지금까지 계속 들러리로 불려 다녔다. 어릴 때는 결혼식, 집들이, 돌잔치, 조금 더 나이 들면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입학 선물, 졸업 선물 등을 챙긴다. 가까운 친구들이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겪는 대소사에 축의금으로 마음을 표시를 했다. 나는 혼자인데 친구는 적어도 3인 이상의 가족이으로 세트라 챙길 일이 적어도 두 배라는 말이다. 한때 은근히 심술이 난 적도 있다. '돌려받지도 못할 이 많은 축의금을 왜 내고 있는 거야.' 지금은 연락도 안 하는 안면만 있는 직장 동료까지 합하면 들러리로 보낸 시간과 돈은 꽤 많다. 단순히 축의금이 아깝기보다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계속 박수만 쳐야 하는 사실에 심통이 났던 거 같다. 


마음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 가까운 이의 인생에서 의미 있는 한 페이지를 곁에서 힘껏 박수치는구경꾼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다. 결혼식이나 집들이에 가면 커플의 연애사는 단골 메뉴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쇼에 호스트가 된다고 선언하는 일이 의식이다. 그러면 우리는 기꺼이 시간을 내서 참석해서 호스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비혼의 삶은 단출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면 끝이다. 승진이 있으려나? 하지만 승진했다고 승진식을 여는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다. 공식 축하 문화에서 배제되어 지인들과 연락도 점점 줄어드는지  모르겠다. 나이 들수록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된다. 일로 만나는 사람, 유유상종이라 비혼 또는 비혼의 마음을 지닌 기혼자들이 주로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다. 안면만 있거나 최소한의 관계를 유지하는 지인들 한가운데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공개 행사 따위는 거의 없는 편이다. 


책을 출간하고 축하를 받으니 결혼식 청첩장을 돌릴 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었다.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 판매를 시작했을 때 많은 지인들이 주문했다. 고맙고 빚을 진 것 같아서 마음이라 편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자기 합리화의 귀재이다. 마음이 편해질 궁리를 했다. "그래, 축의금 대신 책값을 받는 거야." 축의금이 당사자들이 쓰는 게 아니라 의식 비용으로 충당했듯이, 책값 역시 나에게 오지 않는다. 나는 인세로 새의 눈물만큼 받지만, 내가 만든 책이 사람들의 응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오래 전에 친구가 아이를 낳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에게 누군가 칭찬을 하면 내가 칭찬을 받는 것처럼 기뻐. 아이 낳기 전에는 잘 몰랐어."

친구가 이 말을 했을 때 기분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덧. 깨알 홍보로 책 링크 남깁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875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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