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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Aug 16. 2021

우동 소믈리에가 되다

멀고도 가까운 나라, 일본 여행에서 처음 갔던 도시는 교토였다. 교토 관광 중심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호텔을 잡았다. 관광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자리 잡은 호텔이 있는 동네에서는 말도 잘 안 통하고, 교통도 조금 불편하지만, 현지인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관광지에 있는 호텔은 편리하지만, 호텔 주변에는 관광객들만 주로 마주치고, 식당이나 카페도 관광객들로 붐빈다. 무엇보다 현지인 맛집에 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현지인 맛집은 여행자 정보에서 찾을 수 없고, 현지에서만 찾을 수 있다.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에 식당 안에 현지인이 북적거리면 그 집은 가성비 좋은 맛집일 확률이 높다.     

 

교토 여행 마지막 날 공항버스를 타기 전에 호텔 근처에서 점심 먹을 곳을 찾았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현지인 넥타이 부대가 문밖까지 줄을 선 식당을 발견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우동집이었다. 내 ‘촉’을 믿고 넥타이 부대 행렬에 섞였다. 내 차례가 다가오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붐비는 동네 식당에서 주문을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일본어는 한마디도 몰라서 ‘눈치’ 작전이 필요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다행인지 불행인지 셀프 식당이었다. 뷔페처럼 쟁반을 들고, 우동을 고르고, 고명을 골라 담은 후 마지막에 계산대로 가서 주문하는 방식이었다. 익숙한 주문 방법이었지만, 뜻밖에도 까다로웠다.      




한국 식당에서는 우동을 주문하면 고민할 까닭이 없다. 유부 우동, 튀김 우동, 어묵 우동, 김치 우동 등 고명에 따라 이름 붙인 우동을 고르면 된다. 뜨거운 국물, 뜨거운 면, 고명도 주방장이 알아서 척 올려서 나온다. 말하자면 ‘규격 우동’이었다. 우동은 단출한 음식인데 작은 우동 가게에서 뜻밖에 선택 지옥에 던져졌다. 당황스러웠다.  


 먼저 우동 면부터 선택해야 했다. 뜨거운 물에 끓인 면을 차가운 물로 헹구는 냉(冷)면, 뜨거운 물에서 건져서 안 헹구는 온(溫)면인지를 골라야 했다. 우동은 뜨겁게 먹는 나라 출신이라 냉면과 온면 중에서 골라야 할 때부터 동공이 흔들렸다. 육수도 냉온이 있었다. 거창한 음식이 아닌 고작 우동 한 그릇에 고객 맞춤을 선사하는 식문화가 당황스러웠다. 그 순간, 내 입맛을 찾는 선택 결정권자가 되어 즐거움에 빠질 수 없었다. 선택이 오롯이 나에게 맡겨지자 헤쳐 나가야 할 장애물이었다. 이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진짜 일본식 우동을 먹을 수 있었다. 일단 익숙한 뜨거운 면과 뜨거운 국물을 선택했다. 


 그다음 우동 위에 얹을 고명을 골랐다. 체감 난이도가 높았다. 열 종류도 넘는 고명이 펼쳐진 구역에서 나는 무엇을 고를지 몰라서 내적 갈등에 빠졌다. 커다란 테이블 위에 놓인 고명을 빠르게 본 후에 ‘그래, 결심했어.’ 

 주저하지 않고 유부 튀김 하나를 골랐다. 유부가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여서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았다. 하지만 유부 하나만 얹은 우동은 어묵이 빠진 떡볶이처럼 허전했다. 어묵 두 개를 집어서 올렸다. 우동 위로 올라온 고명이 수북해서 그릇이 작아 보였다. 마음은 다른 고명에 가 있었지만, 아련한 눈길을 거두고 뒤로 돌아섰다. 세상에나! 


튀김 고명의 바다가 펼쳐졌다. 여러 가지 튀김이 누워서 나를 유혹했다. 이미 담은 어묵과 유부를 취소하고 바삭하고, 맛있어 보이는 야채튀김과 새우튀김을 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뒤를 돌아보았다. 내 등 뒤로 차례를 기다리며 쟁반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서 있었다. 스미마셍을 외친 후 고명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감히 민폐를 끼칠 용기가 안 났다. 말도 안 통하는데 붐비는 식당 안에서 내가 우왕좌왕하면 줄은 더 길어질 테니. 아쉬워서 입맛만 쩝쩝 다시며 찬찬하지 못한 선택을 자책하며 계산대로 향했다.      


두 번째 우동 주문은 사누키 우동 본고장인 다카마쓰에서였다. 다카마쓰에 도착하자마자 유서 깊은 사누키 우동집에 갔다. 테이블과 의자에 오랜 세월이 새겨진 소박한 식당이었지만, 역시나 섬세한 선택의 장이었다. 교토에서 이미 우동이 섬세한 선택 음식이라는 것을 경험한 터라 조금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많은 고명중에 또 대왕 유부와 두부튀김을 골랐다. 나는 왜 자꾸 유부 튀김을 고르는지 모르겠다. 튀김류를 다 맛보고 싶었지만, 일본식 우동에 올리는 고명 튀김은 하나만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컸다. 욕심을 버릴 수 없어서 세 개를 담았지만, 위대(胃大)하지 않으면 다 못 먹는다. 이번에도 맛이 궁금한 고명에게 다음을 기약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다음 날 우동투어버스에 올랐다. 까막눈이라 예약하는데 조금 고생했지만, 어쨌든 우동투어버스에 무사히 탑승했다. 버스는 오전 10시에 기차역에서 출발했다. 유서 깊은 우동 가게 세 곳에 간다. 우동 투어니 물론 우동을 먹어야 한다. 반나절 만에 세 곳을 방문한다는 말은 우동을 세 그릇이나 먹어야 하는 것을 뜻했다. 위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세 곳 모두 같은 자리에서 몇십 년 동안 우동만을 팔고 있는 가게였다. 우동 투어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칠 정도로 출입문도 평범했고, 내부도 다른 가게들과 비슷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져도 주인장의 욕심 주머니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사누키 우동은 칼국수처럼 꾸밈이 별로 없는 면발이 주인공인 음식이다. 면발이 탱글탱글하고 쫄깃한 것이 본고장 맛이었다. 육수와 고명은 조연일 뿐이다. 세 곳 모두 본질에 진심인 식당이었다. 내가 고명에 아련함을 느끼는 것은 옳지 않았다. 우동의 맛은 면발에 달려있는 것이므로. 내가 본질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투어였다.      


일본의 우동집에서 별것 아닌 사소한, 하지만 그 순간에는 가장 중요한 선택에 던져질 때마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선택지에 수많은 것들이 있지만, 결국 선택에는 한계가 있다. 선택지에 있는 모든 것을 고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택한 한두 개 외에는 버릴 수밖에 없고, 내 손안에 쥐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 탓에 감정 에너지 과잉이 되곤 한다. 버린 것에 대한 호기심이 잦아들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할 때도 있다. 선택하지 않는 것에 대한 애착(?)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자꾸 상상한다. 지나친 상상 탓에 마음에 좀이 슬 때도 있지만, 애착 탓에 다음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미련과 상상이 행동으로 이끌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탐구로 이끈다.     

 

인생 소믈리에는 어떤 면에서 우동 주문과 비슷하다. 무수한 선택의 기회에 던져지지만, 모든 고명을 먹어볼 수 없다. 위의 용량은 정해져 있으니까. 내 입에 들어온 고명 맛에 만족할 때도 있고, 다른 걸 선택할 걸, 후회할 때도 있다. 선택 전후에 찾아오는 감정은, 어떤 것이든 격렬하고 생생하다. 이 격렬함은 살아 있음을 강하게 상기시킨다. 선택이 꼭 만족스러워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살아 숨 쉬는 것은 끊임없이 감정 자극의 스펙트럼에 노출되는 게 아닐까. 그 자극이 후회와 아쉬움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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