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알 Jan 30. 2021

의심과 불신은 편견을 먹고 자란다

모로코 


2010년 모로코 여행을 준비할 때였다. 키워드는 불안과 의심이었다. 이슬람 문화권에 가는 것은 테러의 현장으로 가는 것을 상징했다. 이슬람은 테러와 밀접한 연관어로 따라다녔는데 안타깝게도 지금도 이런 이미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주변에서 왜 그 험한 데를 가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주변인들의 시선을 의연한 척 받아넘겼지만 밤마다 인터넷에서 가능한 위험을 검색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큰 위험은 여행자가 길을 잃기 쉬운 골목길과 소위 '삐끼'였다. '삐끼'는 역이나 골목에서 기다리다가 캐리어를 낚아채고 돈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캐리어를 낚아채는 것도 불쾌한데 돈까지 요구하다니. 이렇게만 본다면 강탈이나 다름없었다. 


혼자 미지의 세계에 들어갈 자신이 없어서 한 인터넷 여행 카페에서 동행을 구했다. 동행을 구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혼자보다는 둘이라면 의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동행 역시 일면식도 없는 낯선 사람이었다. 가상의 사건과 사고를 설정하고 낯선 곳에서 생판 남과 두 주 동안 같은 방을 쓰면서 24시간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이러니한 선택이었다. 안전을 위한 안전장치(?)가 오히려 출발 전에 불안과 의심의 싹을 더 키웠다. 어떤 취향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인지 모르는 터라 내 경계심은 하늘을 찔렀다. 불안과 의심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출발 날짜가 다가왔고, 동행과 인천공항에서 만났다. 서로 조심하고 낯선 곳에서 의지할 사람이니 믿기로 했고, 믿어야 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주로 오후에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일정이어서 낯선 도시에 도착하면 대부분 밤이었다. 택시를 이용해서 호텔로 갔고, 삐끼를 만나는 것은 상상처럼 위험하지 않았다. 여행을 하면서 그들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다. 농업이 주요 산업이라 젊은이들이 일할 만한 곳이 없었다. 교육 수준도 안 높아서 젊은이들에게 시간이 많았다. 그들은 낮에 골목에 나와서 시간을 보내면서 마주치는 여행객들에게 그들만의 방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 택시가 들어갈 수 없는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 내가 끌어야 하는 캐리어를 대신 끌어주고,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가격은 고작 1-2유로였다. 물론 처음에는 터무니없는 액수를 요구하지만 내가 거리를 가늠하고 합당한 가격을 제시하면 흥정이 성사되었다. 상상처럼 돈을 강탈하는 사람은 못 만났다. 물론 항상 잔돈을 준비했다. 거스름돈을 못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이 돌았기 때문인데 그들이 거스름돈을 챙겨서 다니지 않는 일은 당연하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또 하나의 난관은 흥정 문화였다. 나는 정찰제에 익숙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정찰제라는 게 뭔가. 공급자 입장에서 정하는 시장 가격이다. 수요자의 개입이 배제된 채, 공급자가 상품을 만드는데 드는 비용과 수익금을 일방적으로 책정해서 수요자에게 통보하는 방식이 정찰제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가. 


동행이 내게 자신의 '흥정관'을 피력한 덕분에 나는 흥정 문화에 대해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동행은 흥정을 즐겼다. 여행자가 현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는데 흥정을 통해 현지인을 접하고, 그 상황을 즐기면 된다고 말했다. 내가 제시한 가격을 상인이 받아들이면 물건을 사는 것이고, 협상이 결렬되면 재미있는 경험으로 남을 텐데 뭐가 피곤한지, 물었다. 이럴 수가!


나는 흥정을 일종의 사기라고 생각했던 같다. 정가보다 몇 배는 높은 가격을 부르는 걸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이라고 여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 흥정도 모로코 문화의 일부인데 나는 정찰제에 길 들여져 있어서 물건 가격에 대한 감각 기르기를 포기하고 피곤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길이 네모 반듯해서 도로 체계가 한눈에 들어고 교통 시스템이 편한 도시에서는 그 도시가 처음인 사람도 한 번에 목적지에 찾아갈 수 있다. 이런 계획도시에서는 현지인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 사람이 별로 고마운 존재가 아니다. 여행 인프라가 덜 정비된 도시일수록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고, 집에 돌아오면 여행에 대한 기억은 사람에 대한 기억이 된다. 의심과 불신을 품고 떠났던 여행에서 의심과 불신은 모두 내 편견을 먹고 자란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시가인 메디나의 미로는 혼잡해서 시선을 방황하게 만든다. 고도시 페즈의 메디나와 재래시장 수크 골목을 헤매면서 불안과 경계심 게이지가 낮아졌다. 내가 알고 있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삶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자리가 많지 않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골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이야기와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나는 내가 가진 고정된 렌즈를 통해 그들을 하나의 덩어리로 바라보았다.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니다. 우리는 극히 일부의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미디어에서 접할 뿐이다. 이는 코끼리 다리만 보고 코끼리를 다 안다고 단정하는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치스러운 구금 생활, 기차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