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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Sep 26. 2022

고독과 친구가 되는 법

‘고립은 고독과 사악한 쌍둥이나 못된 친척이다.’

미국인 작가 캐럴라인 냅이 <명랑한 은둔자>에서 말한 것처럼 고독과 고립의 경계는 명징하지 않다. 우리말에서는 고립과 고독을 거의 비슷하게 받아들인다. 고립은 다른 사람을 사귀지 못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톨이로 지내는 것이고, 고독은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몹시 외롭고 쓸쓸한 상태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이에 반해 영어의 사전적 정의는 조금 다르다. 고독solitude은 혼자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즐거운 상태이고, 고립loneliness은 말할 친구나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상태이다. 이 미묘한 차이는 문화적 차이에서 나온 게 아닐까?


집단 문화가 발한 한국 사회에서는 소속감을 중요하게 여기고 혼자인 상태를 부정적으로 본다. 반면에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한 사회는 혼자 있는 상태를 즐거움이라고 여긴다.      


대학 졸업 후 한 학기 동안 취업 준비를 하면서 보냈다. 매일 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저녁 먹기 전에 집에 왔다. 대학 4년 내내 공부와 담쌓고 열심히 놀다가 갑자기 다시 입시생이 되어 하게 된 금욕(?) 생활은 힘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들었던 이유는 바로 소속이 사라진 것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16년 동안 어느 학교에 소속되어 학생이라는 신분이 나를 설명해 주었다. 학교를 졸업하자 나를 설명할 말이 없어졌다. 소속이 없는 ‘취준생’이 되자 숨은 쉬지만 삶 자체는 멈춘 것 같았다. 시간은 앞으로 흘러 다른 사람들은 그 흐름에 올라타 나아가는데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과거 시간에 정지된 기분이었다. 밖은 변함없이 햇살이 눈부시고 활기로 넘치는데 나만 제자리를 맴돌았다. 유령이 되어 안개가 짙은 새벽에 바람 부는 영종대교를 혼자 걸어서 건너는 것 같았다.      


몇 개월 동안 소속감에 대한 짙은 그리움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향수병을 이기지 못했다. 취업 준비를 미루고 졸업한 해 가을 학기에 대학원에 진학했다. 공부가 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이 절실했기에 다시 학교에 소속되었다. 이때 나는 고독의 다리를 즐겁게 건널 준비가 전혀 안 된 터라 고립감을 더 크게 느꼈다.


혼자 시간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마주한 고독은 고립이 되어 버린다. 둘의 경계는 모호해도 구별할 수 없진 않다.


고립은 비자발적 감정으로 고립감을 느끼면 힘들다. 가령 친구를 예로 들어보면 친구가 많아야 정서적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마음을 터 놓을 친구 한 명만 있어도 괜찮은 사람이 있다. 친구의 숫자보다 단 한 명이라도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다면 친구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고독은 자발적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원하다면 고독은 두렵지 않다. 오히려 고독은 친해지면 달콤하다. 휴일에 가족이 모두 외출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떠올려보자. 고립감이 아니라 자유를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있지만 항상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혼자 있는 시간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 비율이 적절해야 한다. 사람들과 지나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 혼자 있는 시간을 가꿀 기회를 놓친다. 그렇게 되면 고독은 고립과 동의어가 되기 쉽다.


고독을 고립을 다르게 보려면 타인과 어울리는 시간과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50대 50 혹은 40대 60이라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황금 비율이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모두를 위한 표준 황금 비율은 없다.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


나는 어릴 때는 지독한 내향인이었지만 사회생활에서 외향적 기질이 필요했고 많이 계발되었다. 다윈의 진화이론대로 환경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탓이다. 지금은 처음 만난 사람과도 대화를 나눌 정도로 넉살이 있지만, 어릴 때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는 입을 꾹 다물 정도였다. 어릴 때는 혼자 지내는 게 편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즐겁고 혼자 있는 시간도 즐겁다. 단 적절할 때만.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거침없이 주장하는 목소리 큰 외향인들과 만난 후에는 3일 정도는 혼자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혼자 3일 정도 지내면 기분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그럴 때는 밖으로 나가서 나와 같은 동족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코로나19에 걸려서 일주일 동안 자가격리를 했을 때였다. 모든 일을 멈추고 생각도 멈추었다. 3일까지는 그럭저럭 좋았지만 5일쯤 되자 집이 좁게 느껴지고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고립감이 나를 압도했다. 이럴 때는 밖으로 나가든, 사람들과 어울리든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이 데이터는 내 에너지의 흐름을 오랫동안 관찰한 후에 얻어낸 나만의 경험값이다. 자신의 에너지 흐름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나만의 황금 비율을 찾아내는 연습을 하면 혼자 지내는 시간이 외롭기는 커녕 달콤하다. 게다가 사람들과 관계를 가꾸는 것은 중요하고 분명히 삶의 활력이지만, 사람들과만 시간을 보내면 자아가 취약해질 위험이 있다. 다른 사람과 어울릴 때 본연의 자아가 아니라 사회적 자아가 나서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아와만 지나치게 함께 지내면 혼자 있는 상태를 불안정한 상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고독과 친구가 되는 연습을 하면 관계에서 꼭 필요한 기술인 거리 두기를 익힐 수 있다. 거리 두기를 습득하면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힘이 덜 든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타인과도 잘 지내는 인생이야말로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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